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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0807
영어의미역 Sutgol Farmers' Cooperative Work in the 7th Lunar Month
이칭/별칭 두레풍장,합두레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승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공동 노동 조직
시작연도/일시 조선 후기
행사시기/일시 칠월 칠석~백중
행사장소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숯골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숯골에서 칠월 칠석과 백중을 전후하여 행하던 7개 마을의 연합 두레.

[개설]

과거에는 농민들이 농번기에 농사를 공동으로 하기 위해 각 마을에서 두레를 조직하였다. 논산 지역에서도 대부분의 마을에 두레 조직이 있었다. 마을 별로 모내기를 마치면 두레를 총괄하는 좌상이 마을 총회를 소집하여 두레회의를 연다. 이때 좌상과 총각좌상을 비롯한 두레의 임원과 품값, 논을 맬 날짜와 순서 등을 정한다. 두레가 처음 나는 날은 각 마을별로 정자나무 밑에 농기를 세워놓고 그 좌우에 영기를 꽂은 후 기 고사를 지냈다.

기 고사는 마을의 신과 농신에게 두레가 났음을 알리고 풍년을 축원하는 의식이다. 농기 밑에 돼지머리와 떡시루, 삼색 실과, 포 등을 차려놓고 재배한다. 기 고사를 마치고 나면 한바탕 풍장을 치고 나서 영기와 농기를 앞세우고 김을 매러 간다. 이들 두레패는 칠석과 백중을 전후하여 세벌매기가 끝날 무렵에 큰 농기를 들고 다니면서 두레먹기를 했다.

[연원 및 개최경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숯골을 중심으로 하는 일곱 마을은 모두 노성천(魯城川) 하류 주변에 위치한 마을들로서 속칭 ‘물 아래 일곱 동네’라고도 불렸다. 이 일대는 개잣들로 불리는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어서 예부터 곡창지대를 형성하였다. 따라서 개잣들과 인접한 마을 사이에는 일찍부터 혈연과 지연을 바탕으로 하나의 두레 공동체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칠형제 두레메기에 직접 참석했던 촌로들의 말을 종합하면, 주곡리 숯골이 선생두레로 인정받은 연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노성면 동쪽에서 가장 먼저 농기를 만든 곳이 숯골 두레라는 것이다. 둘째, 옛날에 숯골과 교촌이 선생 자리를 놓고 서로 다투었다는 말이 전한다. 주곡리 숯골영조 때 훈련대장으로서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이삼(二森) 장군의 고택과 재실이 있는 마을이고, 교촌은 공자의 영정을 모신 노성 궐리사(闕里祠)노성향교(魯城鄕校)가 있는 마을이다. 그래서 두 마을의 두레는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위세가 대단하였으나 결국 이삼 장군이 있는 숯골이 선생두레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행사내용]

논산시 상월면노성면 일대의 7개 마을은 오래전부터 의형제를 맺고 연합두레를 결성했었다. 주로 칠석에 김매기가 끝날 무렵이 되면 7개 마을이 모여서 행사를 벌였는데, 상월면 주곡리 숯골을 비롯해서 노성면 교촌리 향교골, 읍내리 고랭이, 둥둥골, 옥거리, 상월면 한천리 들말, 안골이 그 일곱 마을이다. 이러한 연합두레는 ‘제자마을이 스승마을에 와서 문안드리고 한판 노는 것’이라고도 했다. 연합두레를 할 때 스승 두레 격이 되는 마을이 바로 상월면 주곡리 숯골이다.

숯골에서는 두레먹기 전인 백중을 전후하여 마을 우물 청소를 비롯하여 마을 전체적인 청소를 했다. 또 마을 우물이 마르지 않도록 기원하는 풍물굿을 하고, 이어서 집집마다 돌면서 지신밟기를 하여 집안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해 주었다. 연합두레 당일, 주곡리 입구에 농기를 세우면 인근의 제자마을이 차례로 와서 절을 한다. 그리고 7개 마을의 두레 풍장패가 풍물을 치고 술을 마시면서 하루 종일 한바탕 놀이를 한다.

[현황]

1982년 주곡리 숯골을 비롯한 7개 마을의 합두레를 복원·재연하기 위해 노성두레풍장전승보존회가 결성되었다. 2005년 노성두레풍장전승보존회에서는 제46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 「노성 칠형제 두레메기」를 재연하여 아리랑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연합두레를 하던 장소는 숯골 입구 앞 넓은 공터였으나 경지 정리로 인하여 현재는 사라져 버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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