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4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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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지석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손정미 |
[정의]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개설]
고인돌[지석묘(支石墓)]은 청동기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무덤으로, 돌널 무덤[석관묘(石棺墓)], 독무덤[옹관묘(甕棺墓)]와 함께 사용되었으며,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무덤은 주거 지역과 좀 떨어진 별도의 공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며, 정착 생활과 함께 사용된 무덤 양식이므로, 하천가의 구릉 지대나 평야 지대에 주로 존재한다. 규모와 부장품을 통해 이전 시기와 달리 상당한 힘을 가진 지배자가 등장했음을 알려 주는 유물이기도 하다.
[고인돌의 형태]
고인돌은 크게 북방식과 남방식의 두 종류로 구분된다. 북방식은 탁자식(卓子式)이라고도 하며, 땅 위에 얇고 큰 돌을 상자 모양으로 세워 무덤 방을 만들고, 그 위에 넓고 큰 돌을 올려 덮는 형태의 무덤이다. 남부 지방에서도 일부 있지만 주로 중부 이북 지방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남방식은 기반식(基盤式)이라고도 하는데, 지하에 구덩이를 크게 파고 돌로 네 벽을 쌓아 무덤방을 만든 다음 여러 개의 뚜껑돌로 덮고, 다시 그 위에 큰 바위를 올려놓은 형태의 무덤이다. 이때 큰 바위의 아랫면이 들리도록 몇 개의 굄돌을 놓은 것도 있지만 없는 것도 있다. 상석(上石)의 무게는 100톤이 훨씬 넘는 거대한 것도 있지만 대개 10톤 내외의 돌을 사용한다. 남부 지방에 주로 분포하며 특히 호남 지역에 많다. 최근에는 남방식을 기반식과 개석식으로 세분한다. 기반식 중 굄돌이 없는 고인돌을 개석식, 즉 무지석식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의성 지역의 고인돌]
의성 지역에 흐르는 하천은 모두 낙동강 수계로 대부분 발원지가 군내에 있어 하천의 길이가 짧고 유량도 적은 편이다. 의성군 내에는 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에서 발원하여 의성군 비안면 옥연리로 들어오는 위천, 춘산면 신흥리에서 발원하여 비안면 쌍계리로 흐르는 쌍계천, 사곡면 공정리에서 발원하여 봉양면 구미리에서 쌍계천과 합류하는 남대천, 옥산면의 황학산에서 발원하여 경상북도 안동시로 들어가는 미천이 대표적인 하천이다. 하천의 양안에는 대체로 비교적 넓은 평야지가 있다.
의성 지역에 존재하는 180여 기의 고인돌은 대개 하천을 따라 자리하고 있다. 도로 공사, 경지 정리 등으로 인해 많은 부분 유실되고, 위치도 옮겨졌으나 마을 뒤의 낮은 구릉이나 들판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대개 하천 방향으로 고인돌이 위치한다. 의성 지역의 고인돌은 대부분 개석식이며, 일부 기반식도 확인된다.
서북부 위천 유역에 해당하는 구천면·다인면·단밀면·비안면 일대에는 70여 기의 고인돌이 남아 있고, 미천 유역의 점곡면 일대에도 30여 기가 있다. 그리고 동남부의 쌍계천 유역에 해당하는 금성면·봉양면 일대에 40여 기, 남대천 유역에 해당하는 사곡면·봉양면 일대에 30여 기가 남아 있어, 모두 180여 기가 넘는 고인돌이 분포한다. 특히 금성면·봉양면 일대는 쌍계천과 남대천이 합류하여 위천을 끼고 있는 지역으로 집단 간 결합의 가능성이 있어 이곳의 고인돌 조성 집단 일부가 조문국 성립의 주도 집단으로 성장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또한 이 일대의 고인돌은 수 십 기가 길게 줄지어 분포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의 매장 의례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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