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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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도에 경비반장을 했기 때문에 경비정 가지고 독도에 내(자주) 들어갔지. 한 5톤짜리 조그마한 목선, 그때는 경비선이죠. 그거 작은 거 타고 가보니, 독도에 어민들이 가서 미역채취하고 고기도 잡고 하는데, 일본 사람들이 와서 자기 나라 꺼다고 말목을 박아 놨어요. 일본 사람이 들어와 상륙해서, 시마네현 오끼군 고리무라 다케시마라고 적혀있고, 일본 나라 수령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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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이 북위 38°선 이남을 침공함으로써 일어난 한국에서의 전쟁. 6·25사변이라고도 하며, 국제적으로는 한국전쟁(韓國戰爭, Korean War)[일부에서는 Korean Civil War라고 주장하기도 함]이라고들 한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었고, 현재까지 휴전선에 의해 남분 분단 상태로 있다. 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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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과 관련하여 1945년 이전에 제작된 문서와 책·기록 등 현존하는 모든 서책류. 1.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년(인종 23) 김부식(金富軾) 등이 삼국시대 문헌과 사서(史書)에 의거하여 편찬한 사서이다. 권4 신라본기(新羅本紀) 4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 13년조 등에 울릉 지역과 관련한 기록이 보인다. 2. 『고려사(高麗史)』 독도와 관련한 기록은 「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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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연대가 오래 되어 현대지도와 구별되는 지도 중 경상북도 울릉군과 관련이 있는 지도의 총칭. 고지도는 근대적인 투영법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의 회화적인 지도를 말한다. 지도는 주로 행정적·군사적 목적에서 제작되었으나 실학(實學)이 일어나면서 산업·경제·문화에 대한 관심이 반영되어 산맥과 하천·항만·도로망 등의 표시가 정밀해졌다. 고지도는 지도에 수록되는 지역의 규모에 따라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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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 있는 오락과 휴식을 위해 따로 조성된 넓은 장소와 시설. 1967년 3월 3일 국민의 보건과 휴양과 정서 생활의 향상을 위해 자연 풍경지를 효과적으로 이용·보호하기 위한 목적의 「공원법」이 법률 제 1909호로 제정·공포되었으며, 1967년 12월 29일 지리산 일대 438.92㎢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 이어 「자연공원법」과 「도시공원법」이 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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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지역에 있는 풍광이나 풍습 등을 보기 위한 여가 활동. 2005년 한국해운조합에서 실시한 전국 여객선 터미널에서 섬을 다녀온 여행객을 대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섬과 가장 가보고 싶은 섬을 조사한 결과 울릉도는 가장 기억에 남는 섬으로 20%가 응답해 제주도에 이어 2위를 했으며, 가장 가보고 싶은 섬으로는 34%로 1위를 하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섬으로 울릉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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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나리와 울릉읍 저동리에 있는 봉우리. 나리(羅里)의 한자의 의미에서 ‘비단처럼 아름다운 마을’이라 풀이하기도 하지만, 처음 이 섬에 온 개척민들이 먹을 것이 없어 허덕이다가 봄이 되면 이곳의 나리를 캐어 5월과 6월까지 연명하였다고 하여 ‘나리’라 불리고 있다. 실제로 이 지역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나리가 아주 많이 자라고 있다. 나리봉[813m]은 울릉도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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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이 환경상품을 판매할 수밖에 없는 그런 섬입니다. 최고의 상품은 환경입니다. 환경상품이 최고의 상품이라고 저희들이 생각하고 있는 범위 내에서는 지금 북면이 가장 좋은 상품을 가지고 있다라고 봐도 좋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일단 원시적으로 남아있는 죽도, 관음도, 강원도가 보이는 태하, 그리고 독도를 바로 조망할 수 있는 석포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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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조선 후기 문신으로서 정치·경제·행정·군정·인재 등용 등 국정 전반에 걸쳐 경륜을 펼쳤으며, 문장에서도 뛰어나 책문·반교문·묘지명 등을 많이 썼다. 또한 국내외 기행문과 우리 역사에 대한 고증도 많이 남겼다.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미재(美齋). 개국공신 남재(南在)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현령 남일성(南一星)이다. 남구만은 송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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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고종 5) 일본의 태정관에서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결정한 문서. 1868년 일본 메이지 정권이 수립된 이후, 1869년(고종 6) 일본 메이지 정부 총리대신과 외무대신은 외무성 고관들을 조선에 보내 정세를 몰래 살펴보도록 했는데, 그때 조사 항목 중에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로 되어 있는 전말’을 조사해 오도록 지시하였다. 그 지시 사항과 조사 복명서(復命書)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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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에 있는 일출 전망대. 내수전일출전망대로 가는 길은 동백나무와 마가목, 소나무 등이 터널을 이룬 가운데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정도 넓이의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경상북도 울릉군의 남쪽과 동쪽 지역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해돋이를 조망하기에 좋은 곳이라 내수전일출전망대라는 이름까지 갖게 되었지만, 일출이나 낮 동안의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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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북부 말잔등과 간두령·나리령 등에서 발원하여 저동3리로 흐르는 하천. ‘내수전’이란 1917년 「조선지형도(朝鮮地形圖)」상에 기록된 내수전(內水田)에서 유래한다. 김내수(金內水)라는 자가 이곳에 화전을 일구어 살았다고 해서 ‘김내수가 화전하던 곳’이란 뜻에서 내수전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내수전은 닥나무가 많아 저전포(楮田浦)라고도 하였다. 주변 동쪽 지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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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대마도사정관으로 활동한 일본인. 1693년(숙종 19) 안용복 등의 40여 명의 어부가 울릉도 해역에서 돗토리현의 어부들과 시비가 벌어졌고, 안용복 등은 일본의 오오야가[大谷家] 어부들에 의해 오키시마[隱岐島]로 납치되어 갔다. 이때 안용복은 그곳에서 울릉도와 자산도(子山島)[독도]가 조선의 땅임을 들어 구금 납치의 부당성을 도주(島主)에게 따졌다. 안용복의 항의를 받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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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 대나무가 천지였다 카데예. 지금도 보만 대나무가 많다 아임니꺼. 지금은 절벽 같은데 만으예” 대섬은 울릉도 본섬과 약 2k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울릉도 주변 도서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이곳은 개척 당시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던 곳이었다. ‘대나무가 많이 자라는 섬’이란 뜻으로 대섬이라 불렀고, 한자로는 ‘죽도(竹島)’라고 표기했다. 약 6만여 평 남짓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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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섬(죽도)에는 샘물이 없다. 빗물을 받아서 생활한다. 지금은 1가구뿐이지만 최근까지 3가구가 살았었다고 한다. 경작지의 면적은 약 1만 5천여 평. 대부분에 더덕을 재배하고 있으며, 다른 먹거리는 대개 반찬을 만들 채소나 양념재료가 대부분이다. 때로는 수박이나 토마토, 참외와 같은 과일을 재배하기도 하지만 바람이나 비가 자주 오기에 안정된 수확이 어려워 가능하면 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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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동에서 배를 타면 내수전과 섬목, 관음도 등을 거쳐 대섬(죽도)에 도착한다. 저동항에서 대섬까지는 10분 남짓한 시간이지만, 주변지역의 관광을 곁들이면 3, 40분은 소요된다. 대섬 선착장에 내려 365개의 나선형 계단을 걸어야 비로소 섬에 오르게 된다. 약 6만 평에 달하는 대섬에는 오직 1가구만이 살고 있다. 68세의 아버지와 38살의 아들이 가족의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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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어선들이 드나드는 다목적 어항(漁港)인 저동항은 망망대해 동해에 떠 있는 섬 울릉도의 울릉읍 저동1리·저동2리와 도동3리에 위치해 있다. 1967년 어업전진기지로 지정되면서 개발되고, 1971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어항 공사 기간 중 태풍과 해일 등으로 공사에 애로를 겪었다고 하는데, 물양장 980m·돌제 85m·선양장 7m 등 기본 시설은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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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울릉도 도감을 울도군 군수(郡守)로 격상한 관제 개정. 1900년(고종 37) 10월 25일 반포된 칙령으로 이에 의거하여 울릉도는 독립된 군(郡)으로 격상되어 울릉도·죽도·독도를 관장하는 지방행정기관이 되었다. 이와 더불어 울릉도 도감(島監)은 울릉군 군수(郡守)로 격상되었으며, 울도군 초대 군수로는 배계주(裵季周)가 임명되었다. 1899년 울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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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대섬(죽도)에는 더덕주와 더불어 부침개, 닭백숙 등이 유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몇 해 전에 식당을 경영하시던 어머니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는 바람에, 식당은 문을 닫았다. 더덕주는 남아있는 이들에 의해 이어졌지만, 부침개나 닭백숙 등은 맛보기가 어려워졌다. “땅이 넓어가지고, 5년 상간으로 릴레이식으로 돌아가거든요. 간격으로 돌아가면서 짓거든요. 예전에는 천궁, 마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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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산막 가는 길은 산책로는 지금 하거든요. 그 입구에다가. 터가 8미터인데. 죽도 들어가는 것처럼 위에 달팽이 계단식으로 해가지고 위에 삼각형이라. 그래가 그 중간까지 가서, 거서 바로 계단 만들어서 넘어가고, 넘어서면 구름다리 놓고 산에 정자, 산책로 하기로 했거든요. 지금 착공해야 돼요. 용역회사가 측량하고 그러더라고요. 개인택시를 몰고 지금 영업을 한 몇 년 하고 있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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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전 전망대 는 울릉도의 동쪽 해발 450m 가량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 올라서서 내려다 보면, 저동항은 물론 대섬(죽도)·관음도·섬목 등 주변의 크고 작은 섬들과 광활하게 펼쳐진 청정한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내수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동해의 일출과 독도 조망도 빼놓을 수 없는 비경이다. 최근에는 트래킹코스까지 완비되어 자연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더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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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섬(죽도)에는 불편한 것이 없어요. 물도 쓰기에 부족함이 없고, 전기도 충분해요. 따로 저수조를 만들어, 쓰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항상 대비합니다. 풍력발전기와 태양광발전시설이 있어 전기로 난방을 합니다. 다만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1년 내내 이곳에서 살지는 않는다. 그는 뭍으로 나가 주로 부족한 공부를 하기도 하고 외국여행을 가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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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섬(죽도)은 울릉도의 부속도서들 가운데 가장 큰 섬이다. 저동항에서 북동쪽으로 약 4㎞, 도동항에서는 약 7㎞ 가량 떨어져 있다. 섬 둘레는 절벽으로 우뚝 솟아 있으나, 섬 내부는 거의 평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섬은 본섬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사람이 사는 섬이라 하지만 1가구 2인만이 살고 있다. 항상 조용한 분위기라서, 자연과 더불어 산책하면서 한적함을 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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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공들이 가장 선호하는 바다낚시터의 하나는 울릉도이다. 육지와는 조금 멀기는 하지만, 바다낚시터로 울릉도만한 곳도 없다. 그러나 웬만한 여유를 갖지 못하면 울릉도에서 낚시를 즐기기란 쉽지가 않다. 울릉도는 섬 전체가 낚시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낚시하기가 좋은 곳이다. 특히 저동에서는 촛대바위 인근, 내수전 등지에서 많은 강태공을 만날 수 있으며, 죽도나 관음도와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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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조선의 어획고 조사 보고서. 1937년 조선총독부가 어획고 향상을 위해 조선의 동근해 지역을 측량하고, 어장과 바다 깊이 등을 조사하여 발간하였다. 1967년 부산시 사상구에 거주하는 황구화가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우연히 구입한 도서이다. 일본 도쿄에서 인쇄되었으며, 4×6배판의 1권 1책의 44쪽 분량이다. 『수산시험장보고책자』에는 독도를 죽도(竹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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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말, 대섬(죽도)의 작은 주인인 김유곤 씨는 본섬(울릉도)에 나올 준비로 분주하다. 지난 3월 대섬에 들어온 이후 첫나들이이다. 서둘러야 관광객이 타고 들어온 배를 얻어 탈 수가 있다. “오늘같이 이렇게 손님들 들어오면 돈을 안 주는데, 그렇지 않으면 돈을 주어야 합니다. 5만원입니다. 왕복 10만원입니다.” 김유곤 씨가 본섬에 나가려는 목적은, 그날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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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군은 동해상에 격리된 울릉도와 그 부속도인 관음도와 죽도·독도 및 삼선암·공암·죽암·청도·북저암·촉대암 등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졌다. 주도인 울릉도는 지질학적으로 제3~4기 초에 걸쳐 동해에 솟아난 거대한 화산의 정상부에 해당하며, 현무암과 조면암 등으로 이루어진 알칼리성 화산암 지역으로, 섬의 중앙부에는 울릉도 최고봉인 성인봉[984m]이 솟아 있다. 나리분지를 제외하면 평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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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어부이자 민간외교가. 안용복은 동래부 출신으로 동래 수군으로 들어가 능로군(能櫓軍)으로 복무하면서 왜관에 자주 출입하여 일본 말을 잘하였다. 1693년(숙종 19) 울릉도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이곳을 침입한 일본 어민을 힐책하다가 일본으로 잡혀갔다. 일본에서 울릉도가 조선의 땅임을 강력히 주장하여 막부로부터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하는 서계(書契)를 받아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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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상북도 울릉군의 역사. 울릉도의 경우 일제강점기인 1917년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에 의해 처음 유물의 채집이 있은 이후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 등의 조사가 있었다. 해방 후 국립박물관에 의해 울릉도의 고고학적 조사가 실시되었다. 1947년과 1957년에 김원룡 등에 의해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졌고, 1963년에 김정기에 의해 보충 조사가 실시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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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4리 석포동 동쪽 해변에 있는 폭포. 문헌 자료는 찾을 수 없으나, 염소굴폭포 일대는 염소가 도망할 수 없는 절벽과 해안선으로 형성되고 있어 예로부터 염소를 방목해온 연유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폭포는 섬 일주도로 미개설 구간으로 해안선이 수직 암벽으로 형성되어 있는 곳에 해당한다. 이곳은 근본적으로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곳이며, 폭포와 해안을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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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읍사무소 는 옛(일제강점기) 울릉군청사가 있던 곳에 자리잡고 있다. 1882년(고종19년)에 울릉도개척령이 반포됨에 따라 울릉도에서는 도장제(道場制)가 실시되었는데, 그 후 9년만인 1900년부터 군제(郡制)가 실시되면서 울릉도를 2개 구역으로 나누는 행정을 실시하였다. 저동 와달리의 북쪽 산등성이를 타고 남서쪽으로 올라가서 성인봉을 거쳐 산줄기를 타고 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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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와달리 동굴에 관한 이야기. 2007년에 울릉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릉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동쪽으로는 죽도[댓섬]가 보이고, 동북쪽으로는 깍새섬이 보이는 울릉도 동쪽 절벽 밑에 와달리라는 마을이 있다. 몇 집밖에 살지 않는 마을인데, 이 와달리의 남쪽 바닷가 절벽 밑에는 큰 굴이 있다. 이 굴의 앞에는 큰 바위가 있어서 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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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울릉도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파견된 시찰위원. 1899년 조정은 울릉도 정황을 파악할 목적으로 내부관리 우용정을 시찰위원으로 임명하였다. 1900년 우용정의 지휘 아래 부산항 감리서 직원 영국인 라포트(E. Raporte, 羅保得) 등이 울릉도에 들어가 일본인 불법 입도 실태를 조사한 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로서 강원도 울진군에 속했던 울릉도를 울도군(鬱島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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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의해 개칭된 경상북도 울릉군의 이름. 1899년 8월 울릉도에 대한 삼림 채벌권을 갖고 있었던 러시아는 일본과 대한제국에게 일본인들의 삼림 채벌에 대해 항의하였다. 그 처리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일본인들의 울릉도 침어와 삼림 채벌에 대한 항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일본인의 철수를 요구하였다. 그 해 12월 15일 우용정(禹用鼎)을 시찰 위원에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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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이 독도가 일본 영토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국왕에게 올린 보고서. 1906년 3월 28일 독도가 일본 영토로 편입되었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울릉군수 심흥택은 다음 날 바로 강원도관찰사에게 보고하였고, 그 내용은 강원도관찰사 서리 춘천군수 이명래가 1906년 4월 29일자로 의정부 참정대신에게 올린 ‘보고서 호외’에 수록되어 있다. 심흥택은 강원도관찰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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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에 있는 기초 자치 단체의 사무를 심의·의결하는 기관. 울릉군의회는 의원들의 의정 활동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는 구실을 하며, 주민 대표로서의 역할·입법과 의결 기관으로서의 역할·자치 단체 집행부에 대한 견제 또는 통제의 역할 등을 수행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90년 12월 31일 「지방자치법」이 개정되어 1991년 3월 26일 제1대 울릉군의회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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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하는 섬. 512년(지증왕 13) 하슬라주 군주인 이사부가 우산국(宇山國)을 정벌하였다는 기사가 울릉도의 지명에 관한 최초의 언급이다. 그 후 930년(태조 13)에 우릉도(芋陵島)에서 방물을 보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후 고려 현종 때까지 우산국이란 지명 만이 보인다. 현종 때를 마지막으로 우산국이란 지명은 보이지 않고, 덕종 때 우릉성(羽陵城), 인종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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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 지역을 음악 창작의 소재로 활용하여 만든 노래. 경상북도 동쪽의 동해상에 있는 울릉군은 신생대 제3~4기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섬이다. 주도인 울릉도를 비롯하여 관음도[깍새섬]와 죽도(竹島), 독도(獨島) 등의 부속도와 삼선암, 공암[구멍바위], 죽암단바위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천혜의 자연 환경으로 인하여 예부터 예술 작품의 소재로 즐겨 등장하였다. 울릉도를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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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전 지역을 대상으로 환경부가 인증한 국가 지질 공원. 울릉도·독도 국가 지질 공원은 환경부가 「자연 공원법」 제36조 3에 따라 인증한 국가 지질 공원이다. 지질 공원이란 지구 과학적으로 중요하고 경관이 우수한 지역으로서 지질 관광과 교육이 활발히 이루어져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지역, 아름다운 지질 및 지형을 비롯하여 그곳에 서식하는 동식물에서부터 사람들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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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에 있는 관광 회사. 울릉도관광유람선주식회사는 2004년 5월 6일 양병환씨가 설립하였고, 선박을 이용하여 울릉도를 일주하는 울릉도 유람선을 운항하고 있으며, 울릉읍 도동항에서 북면 죽도 간 유람선을 운항하고 있다. 현재 울릉도관광유람선주식회사에는 5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유람선 및 도선 포함 모두 4척의 선박을 보유하고 있다. 천혜의 비경인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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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해 있는 행정구역. 1882년(고종 19)에 울릉도 개척령이 반포되면서 도장제(島長制)를 실시하였고, 1900년 10월 25일에는 군제(郡制)를 실시하였다. 저동 와다리[臥達里] 북쪽 산등성이를 타고 남면 쪽으로 올라가서 최고봉인 성인봉을 거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타고 내려가서 태하령을 지나 태하동[현 태하리]의 말바위와 남서동[현 남서리]의 물칭칭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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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7년(현종 8)에 사이토 호센이 간행한 독도에 관한 일본 최초의 문헌. 1667년 일본 운주(雲州) 지방 번사(藩士)였던 사이토 호센[齋藤豊仙]이 편찬한 것으로, 일본의 은주(隱州)[온슈]를 관찰하고 들은 내용을 기록한 보고서이다. 일본인에 의해 기록된 최초의 기록으로 당시 바다를 표류하던 중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기록이 상세하게 담겨져 있다. 일본어로 된 필사본으로 5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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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3년과 1696년에 오카지마가 저술한 안용복의 도일에 대한 일본 측 자료. 매해마다 기술된 『인부연표』 기록에 따르면 당시 일본인들은 일본까지 찾아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안용복을 ‘안핀샤’로 불렀으며, 얼굴이 검고 고향은 ‘동래부 부산 좌천1리’라 하며 상세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1693년(숙종 19) 6월 4일의 기록에는 안용복이 일본에 온 이유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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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을 빼고서는 통영을 말할 수 없듯이, 안용복을 빼놓고서는 울릉도의 역사를 말할 수 없다. 숙종 23년(1697) 일본인이 우리의 울릉도를 일본의 영토인 죽도라 하여 불법으로 고기잡이와 도벌을 일삼고 있을 당시, 안용복은 평민의 신분으로 두 차례나 일본에 들어가 에도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땅임을 확약한다"는 서계를 받아냈다. 민간인으로서 일본에 건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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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서 1945년까지 일본에 의한 식민 통치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울릉도 역사. 1910년 일본의 식민지가 된 우리나라에는 조선총독부가 설치되고, 헌병경찰제도가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울릉도의 경우 일본인 나카가와[中川]가 울도군주사로 와서 도민을 다스렸다. 1913년 4월 1일에 울릉도의 하부 행정 단위로 3개면[남면·서면·북면] 9개동[저동·도동·사동·남양동·남서동·태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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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순조 1) 야다 다카마사가 저술한 안용복의 이야기가 실린 일본 문헌. 울릉도를 오가며 어업 행위를 하는 어부들의 이야기와 안용복(安龍福)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된 책이다. ○ 독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오키도오고로부터 송도는 서쪽으로 바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2박 2일 가야 되며, 도법 36정 1리[약 3.3㎞]로서 해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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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저동은 울릉의 개척 당시 이곳 갯벌에 모시가 많이 자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시가 많이 나는 갯벌’이라는 뜻으로 모시개라 부르다가 지명을 한자로 표기할 때 모시 저(苧)자를 써서 저동이라 하였다. 내수전(內水田)이라고 일컫는 지역은 과거 김내수(金內水)라는 자가 화전을 일구고 살았다고 하여, 김내수가 화전하던 곳이란 의미에서 내수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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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컴퓨터와 통신이 결합하여 형성된 각종 장치 및 소프트웨어의 총칭. 정보와 통신 두 용어는 원래 별개의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사회 경제 활동의 신속·복잡·광역화 등으로 특징 지워지는 고도로 발전된 신사회의 핵심 기반으로서 정보와 통신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두드러지게 증가하게 되면서 양자는 상호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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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울릉도 역사. 울릉도는 고려 말 왜구 때문에 무인도가 되었으나, 조선 초 이래 육지의 백성들이 계속 건너가 살았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울진현(蔚珍縣)에 소속되었지만, 이곳이 왜구의 거점이 된다고 하여 조선 전기에는 쇄환정책(刷還政策), 조선 후기에는 수토정책(搜討政策)을 시행하였다. 그리하여 본토로부터 울릉도에 들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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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마네현[島根縣] 의회는 1905년 고시 제40호를 통해 독도를 시마네현 오키군[隱岐郡] 오키노시마[隱岐の島]에 편입한 지 백 주년이 되는 2005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竹島]의 날’로 정하는 조례안 제정을 강행하여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그후 “독도를 돌려 달라”는 내용의 텔레비전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지금으로부터 3백여 년 전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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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마도도주를 역임한 일본인. 대마도도주인 형 종의륜(宗義倫)이 죽자, 동생 종의진(宗義眞)이 대마도주가 되었으며, 종의진의 아들 종의방(宗義方)은 대를 이어 대마도도주가 되었다. 역대 대마도도주들은 조선과 일본 간의 외교를 담당하였는데, 종의진의 전대(前代) 도주인 종의륜은 죽도(竹島)[울릉도]의 영유권을 두고 조선에 강경한 외교정책을 견지하였다. 그러나 에도의 도쿠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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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저동2리에 있는 무인도. 섬 모양이 마치 뽁지(복어)같이 생겼다고 해서 뽁지바우 혹은 뽁지바위[北苧岩]라 하고, 또한 바위 주변에는 복어가 많이 잡힌다고 해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그리고 저동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여 북저바위라고도 하며, 또한 섬의 모양이 투구와도 같다고 해서 주도라고도 한다. 드문드문 나무도 자생하고 있으나 대부분 돌로 형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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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에 있는 섬. 죽도는 울릉도 저동항에서 북동쪽으로 4㎞, 도동항에서 7㎞ 떨어진 해상에 있는 섬으로 면적은 208㎢이며, 높이는 106m이다. 울릉도 부속 섬 중 가장 큰 섬이다. 죽도에는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대섬·대나무섬·댓섬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일제시대 모조리 벌목하여 농토로 바뀌었고 20여 호가 거주하였다. 전화가 개설되기 전에는 울릉도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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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 일본 역사가 오카지마 마사요시가 저술한 안용복의 이야기가 실린 일본 문헌. 『죽도고』의 「오오야가(家) 선인(船人)에 의한 조선인 연행」이란 항목에는 안용복과 그의 일행이 일본인에게 잡혀 일본으로 가서 있었던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안용복은 부산 좌자천일리(佐自川一里) 14통 3호[현 부산시 동구 좌천동]에 주소를 둔 외거노비(外居奴婢)였고 일본 선원들에게 나이를 4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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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1년부터 1763년에 기타조노 미치안이 저술한 독도 기록이 있는 일본 문헌. 독도가 일본령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일본 문헌 중 하나로서 이후 쓰여진 『죽도잡지』가 인용한 문헌이다. 기타조노 미치안[北園通葊]이 오키시마[隱岐島] 어부들의 구술을 모아 편찬한 것이다. 당시 울릉도와 송도를 오가며 어업 행위를 하던 어부들의 이야기를 모은 것으로 저자가 직접 울릉도와 독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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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6년 일본 어민이 죽도(竹島)[울릉도]로 출어하는 것을 금지한 일본 막부의 명령. 임진왜란 이후 울릉도에 대한 조선 정부의 정기적인 순심 정책이 이루어지지 못한 틈을 타서, 조선의 본토로부터 삶의 터전을 찾아 울릉도에 들어가는 사람이 늘어나고 일본인들의 불법적 울릉도 출어도 늘어나게 되었다. 그 와중에 일본의 오오야[大谷], 무라카와[村川] 두 가문은 일본 막부로부터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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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년 오오야 가문에서 발행한 안용복을 납치하여 에도 막부로 보낸 내용을 적은 문헌. 「죽도도해유래기발서공」에는 “당인(唐人)[조선인]을 에도 막부에 인도하고, 에도 막부는 즉시 심문하였다. 조사가 끝나 순차적으로 무엇인가를 내려 주고 귀국시켰다(唐人江府江御引渡 則江戶表御穿鑿 相濟順 御贈歸)”는 기록이 있다. 이외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내용이 광해군과 효종 시절의 일이 3번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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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3월 1일 일본 태정대신이 발급한 일본인의 울릉도 도항을 금지하는 문서. 일본에서 송도(松島)[竹島]라 부르고, 조선에서 울릉도(蔚陵島, 鬱陵島)라 부르는 곳에 일본인들의 도항(渡航)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각 지방관에게 하달(下達)하여 이를 준수토록 한 지령이다. 문서의 크기는 19.5×29.5㎝이다. 1882년 4월 조선 정부는 울릉도검찰사(鬱陵島檢察使) 이규원(李圭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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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간행된 울릉도 연작시 6편이 실려 있는 박영교의 시조집. 「우리 시대 현대시조 100인선」 86호인 박영교(朴永敎) 시조집 『징[鉦]』은 108편의 현대 시조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 「징」 25편, 제2부 「겨울 허수아비」 17편, 제3부 「고향」 21편, 제4부 「한판 탈춤을 추다가」 17편, 제5부 「아버님께」 28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울릉도.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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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일본에서 제작된 것으로 독도가 조선 영토로 표기된 고지도. 지도의 전체 크기는 92.5×71㎝이고, 독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부분 복사본은 36.5×26㎝이다. 「청국여지전도」에서는 조선과 일본의 영토를 색으로 구분하여 조선은 흰색으로, 일본은 붉은색으로 표시하였다. 문제가 되고 있는 죽도(竹島)[지금 울릉도]와 송도(松島)[지금 독도]는 조선과 같은 흰색으로 그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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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 부두의 좌측해안을 따라 개설된 산책로(좌안산책로)는 행남이라는 마을로 이어진다. 원래, 행남에는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었다고 해서 살구남[杏南]으로 전해지고 있다고도 하며, 도동에서 저동으로 이어진 산줄기의 형세가 마치 커다란 뱀이 산을 타고 넘는 듯하여 ‘뱀 아귀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뜻의 사구내미(蛇口南)가 살구남[杏南]으로 와전되었다고도 한다. ‘도동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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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에 있는 해안 산책로. 행남마을이라는 이름은 마을 입구에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이 살구나무 때문에 울릉도에서는 이 마을을 살구남이라 부르기도 한다. 행남해안산책로는 울릉도를 찾는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찾는 첫번째 코스로, 울릉도의 신비로움이 다채롭게 펼쳐져 있다. 태고의 화산 암벽을 따라, 자연이 빚어낸 천연 동굴과 인간이 만들어낸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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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공권력을 배경으로 공공 정책의 합리적인 형성과 집행을 구체화하는 과정. 일반적으로 근대 국가 성립 이후 190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행정의 주된 역할과 기능은 국가의 질서 유지에 있었다. 그러나 19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국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질서 유지 기능뿐만 아니라 수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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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에 있는 통신 회사 KT의 지점. 울릉도와 독도 지역의 통신을 담당하고 있는 통신 회사로 KT 대구본부 포항지사에 소속되어 있다. 정보통신 서비스의 전문화 및 사업의 효율적 경영과 울릉도·독도 지역의 통신 제공을 위해 설립되었다. KT 울릉지점의 전신은 1939년 1월 1일에 설립된 울릉도 무선전신국으로 고정 무선 전신 업무와 기상 통신을 취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