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령
-
미륵리사지를 돌아보면 사지와 구분지어 야트막한 담장을 두른 곳을 볼 수 있다. 정원석 몇 개를 배치한 평탄한 정원을 연상시킨다. 미륵대원 터이다. 고대부터 전략적 요충지에 사원을 설치하여 불교의 이상세계를 널리 확산시켜 민중의 평안을 꾀하는 한편 유사시에는 사원 세력을 동원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전략을 써왔다. 자연스럽게 사찰 내에 보급을 위한 병참기지도 설치되었다....
-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충주와 개신교와의 만남은 서울에서 충청도에 이르는 길목과 무관하지가 않다. 길은 곧 사람과 문물, 그 모든 것의 흐름이자 통로이기 때문이다. 경부선 철도가 놓이기 전 충청도는 남도와 경상도 그리고 서울을 잇는 길목으로 세 갈래 길이 있었다. 서울에서 한강을 건너 경기도 과천~시흥~수원~성환을 거쳐...
-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산줄기를 이루는 봉우리들 사이의 낮은 능선부. 한반도는 오랜 기간 동안 변성을 받거나 마그마의 관입으로 더욱 단단한 지각으로 구성된 안정 지괴에 속한다. 게다가 남동에서 북서로 미는 태평양판을 비롯하여 남쪽에서 밀려오는 필리핀판, 동쪽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온 동해 지각의 확장 등 다양한 방향의 횡압력을 직간접적으로 받아 왔다. 이...
-
충주사고는 1390년(공양왕 2)부터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1592년까지 약 200년 동안 고려의 중요 전적과 조선 전기의 역대 실록 그리고 중요한 서책과 문서를 보관하던 창고의 하나였다. 그러나 1592년 4월 28일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이 패하여 충주시가지가 불탈 때 시가지 내에 있던 충주사고와 그에 보관된 서책들도 사라졌다.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역사를 기록하여...
-
1592년 임진왜란 때 탄금대 전투에서 활약하다 순절한 무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사수(士秀), 호는 피구자(披裘子) 또는 외암(畏菴). 아버지는 찰방을 지낸 김훈(金壎)이며, 아들은 영의정을 지낸 김류(金瑬)이다. 김여물은 어려서부터 호방하고 의협심이 강하고 구속받지 않는 성품으로, 활쏘기와 말 타기를 잘했으며 장수의 재략도 있어 문무를 겸비했다. 1567년(선...
-
충주는 남한강의 중류에 위치하여 삼국시대부터 수로 운송을 이용한 교통의 요지로 중시되어 온 지방이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의 세곡을 저장하는 12조창을 설치하였는데 충주에 설치한 조창이 덕흥창이었다.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는 덕흥창 이외에 경원창이 설치되어 경상도의 세곡을 받아 경창으로 수송하였다. 1465년(세조 11)에는 금천(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던 덕흥창...
-
충청북도 충주시에 서식, 분포하고 있는 동물의 종류. 국제자연보호연맹에서는 ‘보호대상 생물 자료집 범주(red data book category)’로서 (1) 절멸종(Ex)은 야생적으로 이미 사라진 종, (2) 절멸 위기종(E)은 절멸의 위험에 빠져 있고 그 근원적인 요인이 계속 작용할 경우 생존이 어려운 종, (3) 위협받는 종(T)은 근원적인 원인이 계속된...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사문리에 있는 폭포. 높이 약 30m로서 화강암 절벽에서 수직으로 시원스럽게 떨어지는 폭포이다. 백두대간 바로 옆의 신선봉[967m] 북쪽 비탈면에 있다. 노은면의 수룡폭포, 살미면의 팔봉폭포와 함께 충주시에서 몇 안 되는 폭포 중 하나이다. 신선봉 일대는 화강암 산지로서 수평의 판상절리가 잘 발달하여 곳곳에 층층이 쌓인 암반들을 관찰할 수 있다...
-
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에 분포하는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수단과 시설. 봉수는 가락국의 수로왕 설화에서 보이듯이 삼국시대부터 실시되었으며, 고려시대 1149년(의종 3) 조진약(曺晋若)의 건의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정비되었다. 조선시대 세종대에는 봉수대 시설, 봉군(烽軍)의 신분, 봉화 홰(炬)의 수를 다시 정하고, 봉수의 노선을 구분하여 봉수제도의 근간을 마련하였다. 1894년...
-
미륵리는 월악산 국립공원의 들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월악산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산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칠하고 백두대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대체적으로 산이 험악하고 골산(骨山)이라 밋밋함이 없다. 그만치 절경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안에는 골짜기도 많다. 송계계곡, 만수계곡, 하늘재계곡 등… 골짜기! 왠지 모르게 사람들에게 안온함을 주는 공간이 된다....
-
국원성은 고구려가 평양 천도 후 남진을 계속하여 5세기 전반 충주 지역을 점령하고 설치한 수도 다음 가는 부도(副都)였다. 고구려의 남방 경영 책원지이자 신라 공격의 전초기지였다. 충주 고구려비는 이러한 고구려 남진 정책의 성공을 기념하는 비로, 한반도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구려비이기도 하다. 고구려가 충주에 국원성을 설치하여 고구려 영역으로 편입한 것은 충주...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화천리와 괴산군 연풍면을 연결하는 고개. 말 그대로 ‘작은 새재’이다. 새재의 한자 표기인 조령(鳥嶺)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나오는데,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험한 고개여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신선봉[967m]과 586.5m 고지 사이의 낮은 능선에 자리 잡고 있다. 동쪽에 소백산지 본줄기에 해당하는 마역봉[9...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화천리와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사이에 있는 터널. 소조령(일명 작은 새재)은 조령(일명 큰 새재)의 서쪽에 있는 고개인데, 소조령터널은 소조령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길이 1,234m, 폭원 7m, 높이 6.7m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양쪽의 터널은 NATM공법으로 건립되었다. 소조령터널이 개통되기 이...
-
1896년 3월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에서 제천 의병과 일본군 사이에 있었던 전투. 1895년 8월 20일 일본이 을미사변을 저지른 데 이어 친일내각에 의해 1895년 말 단발령이 공포되자 의병 봉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갔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전기 의병을 대표하는 제천 의병의 항쟁도 이루어졌다. 수안보로 이동한 이강년 부대는 3월 19일 첫 교전을 벌여 일본...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에서 온천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주시에서 동남쪽으로 조령을 향해 가다 보면 21㎞ 지점에 수안보면 온천리가 있다. 조선시대 피부병 환자가 이곳 논바닥에 볏짚을 깔고 침식을 하다 온천수를 발견하였다. 「수안보온천 전설」은 온천수가 나오는 마을이라고 해서 ‘온천리’로 부르게 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1982년 충청북도에...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탄금대 전투에서 전사한 무신. 본적은 평산(平山). 자는 입지(立之).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을 지낸 신말평(申末平)이며, 할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신상(申鏛)이다. 아버지 생원 신화국(申華國)과 어머니 파평윤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녀로는 영의정을 지낸 첫째 아들 신경진(申景禛), 훈련도정을 지낸 둘째 아들 신경유(申景裕), 지돈녕부사를 지...
-
임진왜란 중 충주는 가장 희생이 많았던 싸움터였다. 임진왜란 초기에 신립 장군은 탄금대 앞에서 달천과 남한강을 뒤로 하여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는 8,000여 명의 조선군 중 두서너 명만이 살아남았다고 할 만큼 희생이 큰 전투였다. 또한 충주읍성에 있던 많은 사람들, 즉 사민(士民)과 관속(官屬)들이 당대의 명장인 신립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음을 믿고 피난을...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사문리와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에 걸쳐 있는 산. 수안보온천에서 동남쪽으로 5㎞ 지점에 우뚝 솟아 있으며, 기암절벽과 암괴들이 수려한 경관을 이루는 산이다. 미륵리의 포암산[961.7m], 북쪽의 월악산[1094m]과 함께 백악기에 암석을 뚫고 들어간 흑운모화강암 지대로, 석산(石山)으로 발달하는 전형적인 화강암 산지 경관을 보인다. 예...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안보(大安保)는 조선시대 안부역(安富驛)이 위치한 곳으로 안보리는 역의 명칭에서 연유하였다고 할 수 있다. 복계는 뒤에 넓은 들이 있고, 큰 보가 있어 보거리, 보고리라고 부르다가 보계(洑溪)로 바뀌었고 보계가 복계로 변형되었다. 선권은 신선이 등천하는 형국의 지형이어서 선곤(仙坤)이라 하다가 현재는 선권이라 부른다...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 음지말에 있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역터. 안부역(安富驛)은 『고려사(高麗史)』 참역(站驛)조에 처음 기록이 나오며, 조선시대에는 연원도(連原道)에 속한 14개 역 중 하나였다. 안부역에는 대마 3필, 기마 6필, 복마 6필, 노(奴) 106명, 비(婢) 28명, 역리(驛吏) 25명이 속해 있었다. 안부역은 고려시대...
-
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설치된 교통·통신제도. 역은 공문서의 전달, 관리의 왕래와 숙박, 관물의 수송을 돕기 위해 중요 교통로에 설치하였다. 삼국시대 이래로 설치하여 고려 성종 대에 이르러 전국 525개소의 역을 22개의 역도(驛道)로 편성하여 역참을 조직했으며, 역의 중요도에 따라 역정호(驛丁戶)의 수와 공문서 전달 방식을 정하였다. 각 역에는 역마(驛馬)·역장(驛長)·역...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에 속하는 법정리. 온천리라는 지명은 온천에 소재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볼 수 있다. 본래 온정동(溫井洞)으로 불리던 것이 온천리로 개명되었고, 물탕거리를 중심으로 온천 산업이 발달하여 인구가 증가하자 오산·관동·탑동과 분리되면서 온천리도 1, 2, 3, 4구로 나뉘었다. 관동(官洞)은 고구려 때부터 상모현(上芼縣)의 현청...
-
충주를 포함한 중원 지방에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 많은 산성이 분포하고 있다. 이처럼 중원 지방에 산성이 많이 축조된 것은 중원 지방이 한반도의 허리부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리적인 중요성에 기인한다. 고대의 고구려·백제·신라는 중원 지방을 장악하기 위해 쟁투를 벌였는데, 중원 지방의 장악은 한반도 지배권의 장악을 의미하고 있었다. 또한 중원 지방은 고대 국가의 가장 중요한...
-
1612년 신분 차별에 불만을 품은 충청북도 충주 출신 서얼 박응서 등이 주도하여 역모를 꾀했다가 발각되면서 계축옥사로 확대된 사건. 조선은 서얼을 차별하는 정책을 시행하여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도 서얼들은 출세하는 데 제한을 받았으므로 서얼 출신의 불만은 날이 갈수록 커져 갔다. 박응서(朴應犀)·서양갑(徐羊甲)·심우영(沈友英)·이준경(李俊耕)·박치인(朴致仁)·...
-
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홍주(洪州). 자는 문경(文卿). 아버지는 첨사 이한(李漢)이다. 이종장은 1569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에 제수되었고 1589년에 윤탁연(尹卓然)의 천거를 받았다. 1591년에는 신천군수를 지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주목사겸조방장(忠州牧使兼助防將)에 제수되어 도순변사 신립(申砬)을 따라 출정하였다....
-
조선 중기 조선을 침입한 왜군과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의 전쟁 1592년 4월 13일에 일본군이 부산포에 상륙함으로써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부산포에 이어 동래를 점령한 일본군은 세 길로 나누어 진격하여, 상주 전투에서 이일(李鎰)을 격파하고 충주에서 신립(申砬)을 깨뜨린 뒤 이렇다 할 전투도 치르지 않고 서울을 점령하였다. 이에 선조는 의주로 피난가고, 조선은 7년 동안 일본군과...
-
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과 경상도를 잇는 주요 교통로였던 고개.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경상북도 문경 사이에 있는 고개로서,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서울과 동래(부산) 사이를 연결하는 교통로였고, 군사적으로도 요충지였다. 조령은 제1관문, 제2관문, 제3관문이 있으며, 이들 관문과 성벽은 1708년(숙종 34)에 축조되었다. 이 중 제3관문을 지나면 경상북도이다. 추풍...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충주 지역 역사. 조선시대 충주는 1395년(태조 4) 지방제도가 개편된 후 충청감영의 소재지이면서 목(牧)으로서 대원(大原)·예성(蘂城)으로 불렸다. 관내의 호수는 1,871호이며, 인구는 7,452명에 이르고, 시위군 440명과 선군(船軍) 465명이 있는 대읍이었다. 1458년(세조 4)에 충주진(忠州鎭)이 설...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 사문리에서 미륵리로 넘어가는 고개. 1891년에 편찬된 『연풍현읍지(延豊縣邑誌)』에서는 마골산[640m]의 마골점 봉수(麻骨岾 烽燧)[일명 마골봉수]는 연풍현 북쪽 40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지릅재 남쪽에 마골산 봉수가 있어 마골점(麻骨岾)이라고도 불렸고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 계립령(鷄立嶺)의 별칭으로 지릅재라는 명칭이...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와 경상북도 문경읍 관음리를 연결하는 고개.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하늘재는 156년(아달라이사금 3)에 길이 열림으로써 백두대간을 넘는 최초의 통행로가 되었다. 신라의 마의태자와 덕주공주, 고구려 온달장군 등의 전설에도 등장하는 유서 깊은 고개이다. 고려 말기 왜구가 창궐하면서 조운(漕運)이 육운(陸運)으로 바뀔 무...
-
충청북도 충주시 목벌동과 안림동의 경계인 남산 정상부에 축조된 고대 산성. 충주 남산성은 해발 636m의 남산 정상부에서 동쪽으로 두 개의 계곡 상단을 에워싼 전형적인 신라 양식의 석축 산성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보이는 ‘동악성(桐岳城)’으로 추정된다. 1980년 1월 9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31호로 지정되었다. 충주 남산성은 동악성(桐...
-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대림산봉수는 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과 살미면 향산리에 걸쳐 있는 봉화뚝 정상부에 남아 있는 봉수대이다. 조선시대 제2거 노선에 소속된 간봉으로 계립령을 넘어와 연풍현의 마골재 봉수 거쳐 온 봉화를 충주 주정산 봉수로부터 받아 마산봉수에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봉수대에는 별장 1명, 감관 5명, 군인 10...
-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에 있는 고려시대 산성. 충주 대림산성은 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과 살미면 향산리의 경계를 이루는 대림산[487.5m]의 정상부를 포함하는 능선과 계곡부를 가로지르며 축조된 둘레 4,906m의 토석혼축 포곡식 산성으로, 고려 1253년(고종 40) 몽고의 침략에서 최대의 승전을 거둔 충주 남산성 전투의 현장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당시...
-
조선 후기 문신 김수항이 충주 지역을 유람하던 중 지은 한시. 김수항(金壽恒)[1629~1689]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구지(久之), 호는 문곡(文谷)이다. 서인으로서 두 차례의 예송(禮訟) 때 남인과 대립했으며, 뒤에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리자 노론의 영수가 되었다. 저서에 『문곡집(文谷集)』과 「송강행장(松江行狀)」 등이 있다. 시문에 뛰어났고, 변려문(...
-
충주 지역은 우리나라 3대 철산지의 하나로 고대부터 철광산이 개발되어 철광석을 캐고, 쇠를 뽑고 녹이고 두드려 각종 무기나 농구 등의 연모를 만들던 쇠부리업이 발달했던 곳이다. 고대 국가의 힘의 상징인 철을 확보하기 위해 삼국은 공히 충주 지역에 공을 들였으며 충주 지역을 확보한 국가가 항상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다. 충주는 질 좋은 철을 생산하던 자원의 보고였...
-
충청북도 충주시 교현동에 있는 조선 전기 유학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된 관학 교육기관. 향교는 기본적으로 봉사와 교육의 기능이 있다. 따라서 향교는 사당에 해당하는 대성전과 동·서무, 그리고 강당인 명륜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와 맹자를 비롯한 중국의 성현 72인, 우리나라의 명현 18인의 위패가 있으며, 정기적으로 제사를 올리도록 되어 있어 선현 봉사의 사당...
-
음양오행설을 기초로 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풍수지리란 산의 배치와 물의 흐름, 지형과 방위, 하늘과 땅의 기운 등을 고려하여 인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일을 하는 것이다. 풍수지리는 과거 역사 속에서 삶의 터전을 만들어 가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으로 활용되었다. 충주 지역의 풍수지리는 삼국시대부터 언급되고 있으나 자연과 사람을 연결시켜 비교적 자세히...
-
계립령(鷄立嶺), 겨릅산, 대원령(大院嶺), 한훤령(寒喧嶺) 등으로 불리는 하늘재는 영남과 기호를 연결하는 최초의 교통로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 권2 신라본기에 의하면 제8대 아달라(阿達羅)이사금 3년(156)에 개통시킨 교통로임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통로인 죽령(竹嶺)보다 2년 앞서 개통된 길이다. 이 길을 발판으로 한강 유역 진출이 가능하였고 고구려의 남하도...
-
충청북도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에 축조된 고대 산성. 산성의 축성과 관련한 문헌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신라 북진 거점과 전초기지로서 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훤령 산성이 위치한 곳은 행정구역상 충청북도 충주시 미륵리와 경상북도 문경시 관음리의 경계로, 소백산맥의 포암산[961m]과 부봉[925m] 사이의 안부(鞍部)에 형성된 교통로인 하늘재[530m]에...
-
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행해진 향촌 자치 규약. 충주 지역에서는 일찍이 향약이 실시되었으나, 전란의 피해가 심해 다른 지방과 같은 향약절목(鄕約節目)이 남아 있는 것이 드물다. 그러나 『중종실록(中宗實錄)』에 기록된 한충(韓忠)의 말에 “충청도의 향약 거행이 다른 도보다 낫고 충주가 도내에서도 제일”이라고 한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충주는 향약을 보급하기 시...
-
조선시대 호적대장에 기재된 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호와 인구 수. 호구는 사전적 의미로 호적대장에 기재된 집과 식구의 수를 말한다. 호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국역 복무자와 공부(貢賦) 부담자를 확정짓고 대민정책을 수립하는 데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조선 정부에서는 정확한 호적대장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조선시대의 호적대장은 조선 정부가 국가정책 수행이라는 특정한 목...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발화(發花)의 ‘화’와 냉천(冷泉)의 ‘천’자를 합하여 화천리라 하였다. 은행정(銀杏亭)의 윗말에는 충주시 보호수인 수령 500년 된 은행나무가 있어 은행정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발화동은 윗바라골 앞산에 화봉(花峰)이라 불리는 봉우리가 있어 꽃이 피는 마을이라 하여 이 같이 이름 지어졌다. 사시동(沙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