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0002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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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典文學 |
영어의미역 | Classic Literatur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논산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병찬 |
[정의]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만들어진 개화기 이전의 문학.
[개설]
논산 고전문학의 대상 범위는 논산 지역에서 출생하거나 활동한 인물들의 문학과 타 지역 출신이면서도 논산 지역을 대상으로 묘사한 작가와 문학작품이다. 논산 지역 관련 고전문학에서 한문으로 쓴 것들은 주로 이 지역 인물들의 문집에 수록되어 있다. 문집은 문학, 역사, 철학 등의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대부분 시와 같은 문학작품을 포함하고 있다.
논산 지역 인물들은 문학사에 있어 많은 훌륭한 한글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한글로 쓴 고전문학은 주로 시조나 가사 등이다. 논산 지역의 고전문학은 그 양과 질에 있어 한국문학사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으며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한문학]
1. 논산 출신
논산에서 태어난 인물의 문집은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의 『사계전서(沙溪全書)』, 김집(金集, 1574~1656)의 『신독재유고(愼獨齋遺稿)』, 윤증(尹拯, 1629~1711)의 『명재유고(明齋遺稿)』, 윤선거(尹宣擧, 1610~1669)의 『노서유고(魯西遺稿)』, 윤원거(尹元擧, 1602~1672)의 『용서집(龍西集)』, 윤순거(尹舜擧, 1596~1668)의 『동토집(童土集)』, 서익(徐益, 1542~1587)의 『만죽헌집(萬竹軒集)』, 서필원(徐必遠, 1614~1671)의 『육곡집(六谷集)』 등이 있다.
조선 후기 김영운(1867~1932)과 김정수(1899~1969) 부자의 『서운유고반곡실기합편(瑞雲遺稿盤谷實記合編)』, 김영철(金永轍, 1853~1931)의 『경재유고(經齋遺稿)』, 손제영(孫濟英, 1899~1966)의 『수운거사문집(水雲居士文集)』, 박주철(朴柱哲, 1913~2004)의 『성암집(省菴集)』 등이 남아 있다.
2. 타 지역 출신
논산 지역 인물의 작품뿐만 아니라 유명한 문인들이 논산을 소재로 한 한문학 작품들도 상당수 있다. 대상은 주로 제영들인데, 이 지역의 유명 사찰인 연산면 천호리의 개태사, 양촌면 중산리의 쌍계사, 논산읍 관촉리의 관촉사, 그리고 김장생이 학문 활동을 한 연산의 양성당과 양성당의 옛 터에 있었던 아한정이다. 이러한 제영들은 당대의 유명한 문인들인 이색·서거정·성현·이정구·신흠 등에 의해 지어져 옛 논산의 모습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시조문학]
1. 서익의 시조
논산 가야곡에서 세거한 만죽헌(萬竹軒) 서익(徐益, 1542~1587)은 한문 문집 외에 다음과 같은 시조 2수를 남겼다.
이 뫼흘 허러내여 져 바다흘 메오며는/봉래산(蓬萊山) 고온 님을 거러가도 보련마는/ 이 몸이 정위조(精衛鳥)야 바자닐만 노라.
녹초 청강 상(綠草 淸江上)에 구레 버슨 이 되야/ 로 머리 드러 북향(北向)여 우 은/ 석양(夕陽)이 재 너머 가매 님자 그려 우노라.
2. 김장생의 시조
대 심거 울흘 삼고 솔 갓고니 정자(亭子)로다/ 백운(白雲) 깁픈 골의 날 잇는 줄 제 뉘 알니/ 정반(庭畔)의 학 배회(徘徊)하니 긔 벗인가 하노라.
십년(十年)을 경영(經營)야 초려 삼간(草廬 三間) 지어니/ 나 간 간에 청풍(淸風) 간 맛져 두고/ 강산(江山)은 드릴 듸 업스니 둘너 두고 보리라.
3. 강복중의 시조
강복중(姜復中, 1563~1639)은 논산 가야곡에서 출생한 시조 문학의 대가이다. 일생을 시골에 묻혀 지내면서도 나라의 움직임에 대한 관심을 시조에 직접적으로 나타냈다. 자는 재기(載起), 호는 청계(淸溪), 벼슬은 참봉(參奉)에 그쳤다. 61세 때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계해반정가(癸亥反正歌)」 6수를 지어 거사를 찬양했다. 일생 동안 선산(先山)의 산변(山變)으로 송사(訟事)에 시달렸는데, 72세 때 이안눌(李安訥)의 도움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가사 「선산회복가(先山恢復歌)」에 이때의 감격이 잘 나타나 있다. 병자호란 때에는 가사 「위군위친통곡가(爲君爲親痛哭歌)」를 지어 직접 싸우지 못하는 원통한 마음을 표현했다. 노년에는 전원에 은거하는 흥취를 자랑하는 「수월정청흥가(水月亭淸興歌)」 21수를 지었다. 「청계공가사(淸溪公歌詞)」와 『수월정청흥가첩』이 전한다. 그의 시조 한 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강호(江湖)에 벗이 없어 백구(白鷗)만 벗을 하니/ 자네 세고 저도 세니 웃을 일은 전혀 없다/ 세상(世上)의 막흑비오(莫黑匪烏)는 웃는 법도 있느니라.
[가사문학]
1. 송씨 부인의 가사
논산 지역의 대표적인 여류문인 송씨 부인이 지은 『금행일기』와 「휵양가」가 있다. 송씨 부인은 송규렴(宋奎濂)의 고손인 목사 송기정(宋基鼎)의 딸로 1803년(순조 3) 충청도 회덕에서 태어나 숙덕(淑德)을 갖추고, 문장에 재주가 있었으며, 모든 일에 출중하였다. 권근(權近)의 후손으로 충청도 연산 반곡에 사는 권형규(權亨圭)에게 시집가니, 헌종대의 공주판관 권영규(權永圭)의 계수요 필사자 연일정씨의 시숙모가 된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하여 조카를 양자로 들이고 고적한 규중생활을 하면서 침선과 독서, 그리고 작문에도 힘써 그 재능을 발휘하였다.
송씨 부인은 시숙 권영규가 공주판관으로 있을 때, 시어머니를 직접 가서 뵙고 손윗동서의 생일을 축하하려고 금아(錦衙)를 방문하였다. 그 뒤에, 달포간의 일정과 가문의 영광, 그간의 정회를 적어서 후손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이 일기를 지었는데 바로 『금행일기』이다. 덧붙여 송씨 부인은 시종매 이교관댁의 아들을 대상으로 「휵양가」를 짓기도 하였다.
1)『금행일기』
19세기 중반 일반가사의 말류(末流)를 타고 내방가사이다. 『금행일기』는 작자가 1845년 3월 초순에 논산 반곡을 출발하여 공주감영에 도달한 뒤, 그곳에서 4월 초순까지 약 한 달간 생활하고 돌아오던 과정을 회상·기술한 전형적인 가사이다. 그 내용을 단계별로 요약해 보면, 친가·시가의 애환과 함께 시숙이 공주판관이 되어 임지에 이른 것을 송축하고, 동서의 초청을 받아 발행을 준비하는 심정을 서술하였다. 이어 반곡에서 금아까지의 노정에 따라 자연 경관과 그때그때의 심회를 적고, 관아에 도착해서는 환영받고 인사하는 광경을 기술하였다.
그 뒤, 관사 내외의 생활습속과 각종 행사에 대해 듣고 본 일과 그에 대한 느낌을 적고, 동서의 생일잔치와 금강선유의 장관에 따른 여러 연회와 풍류의 정경을 묘사하고, 그곳을 떠나 귀가하는 과정과 이제까지의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였다. 『금행일기』는 충남 지역(기호 지방)에서 자생한 사친가·한별가·선유가·기행가 등의 종합적 면모를 갖춘 전형적인 내방가사로서, 19세기 중반에 양반가사의 전통을 이어받아 후대 작품에 영향을 끼침으로써 시가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2)「휵양가(畜養歌)」
「휵양가」에서는 그 아자(兒子)의 가계환경, 출생과정, 용모재기(容貌才氣), 성장전망 등에 관하여 흥미롭고 희망차게 노래하였다.
2. 윤우병의 가사
「농부가」는 1881년(고종 18) 윤우병(尹禹炳)이 지은 노동가사이다. 1책(16장)의 필사본인 이 작품은 중농사상(重農思想)을 고취하고자 지은 것이다. 2음보 1구로 계산하여 전체 549구이다. 음수율은 4·4조와 3·4조가 주조를 이루며, 처음에만 2·4조로 되어 있다.
내용은 4단으로 나누어지는데, 제1단에서는 백성의 생활처인 밭을 구경가자고 전하고서 옛 성현들이 농사를 지은 사실을 열거하고, 지금의 농부들이 그 사실을 아는가를 반문하였다. 제2단에서는 농부들의 곤궁한 형상을 서술하였다. 제3단에서는 농부의 곤궁한 형상을 보고 느낀 바와 부지런히 농사를 지을 것을 백성들에게 거듭 강조하였다. 제4단에서는 농부 없는 나라는 그 종묘가 위태로움을 강조하면서, 시속(時俗)의 천농사상을 경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