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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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도에 경비반장을 했기 때문에 경비정 가지고 독도에 내(자주) 들어갔지. 한 5톤짜리 조그마한 목선, 그때는 경비선이죠. 그거 작은 거 타고 가보니, 독도에 어민들이 가서 미역채취하고 고기도 잡고 하는데, 일본 사람들이 와서 자기 나라 꺼다고 말목을 박아 놨어요. 일본 사람이 들어와 상륙해서, 시마네현 오끼군 고리무라 다케시마라고 적혀있고, 일본 나라 수령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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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고종 20)의 개척 당시 나리 분지에는 93세대 5백여 명의 사람들이 정착하였다. 당시 이주민의 규모로서는 최대였다. 이들 이주민들 중에는 경상도 지방보다 전라도와 강원도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개척 초기 이들은 각각 본인들이 살다가 온 지역의 말을 주로 사용하며 생활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울릉군의 지리학적인 측면이나 환경적인 측면을 고려해 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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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교파. 개신교는 종교개혁의 결과로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되었으며 로마 가톨릭, 동방정교[그리스정교]와 더불어 기독교 3대 교파 중 하나로 장로교, 성결교, 감리교, 침례교, 성공회 등의 여러 기독교 종파를 총칭하는 말이다.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개신교의 주요 분파로는 침례교, 장로교, 감리교, 순복음교, 안식교, 여호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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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 2리 학포마을 남단에 산왕각으로 가기 전 해변 암벽면에 새겨진 각석문(임오명각석문)으로 문화재자료 제41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들 각석문은 고종 19년(1882) 5월 검찰사 이규원이 조정의 명을 받아 울릉도 내 경작이 가능한 지역을 답사하고, 무단으로 왕래하는 일본인들의 실태를 파악하도록 파견되어 체류하고 있을 때 새긴 것이다. 그의 '울릉도검찰일기계본초(鬱陵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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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 태하 1리 큰 황토구미에 있는 천제당은 광서명각석문에서 서쪽으로 30m 떨어져 있는 밭 가장자리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당집은 없고, 뽕나무 밑에 시멘트 제단이 설치되어 있는 형태이다. 이 시멘트 제단은 1974년 갑인년 2월 24일에 설치하였고, 그때의 유사는 김은우(金銀雨) 씨였음을 알리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 제단은 강원도 평해 검찰사가 년 1회 순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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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교지와 칙령. 역사 자료의 하나인 고문서는 공(公)·사(私)의 문서로서 오래된 것을 말한다. 한국 고문서의 하한(下限)은 1910년까지로 볼 수 있는데, 다만 1894년의 갑오개혁 후 관제가 개혁되고 문서식도 신식으로 바뀌어 그 이전의 문서와 구별되므로 1894년까지로 한정하기도 한다. 울릉 지역에서 현재까지 발견된 고문서는 조선 말기인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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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근이 갖고 있는 고문서는 유학 김진탁이 1775(32세) 때 과거시험을 본 답안지(시권) 1, 호적단자와 준호구 14장, 김해김씨 삼현파보 등 다음과 같다. 試券 1775년 유학 金振鐸 32세(1775년) 본 김해 거경주 〈호적단자와 준호구〉 무자(1768)정월 안강현 강동면 단구리 유학 김진탁 25세 갑오(1774)정월 안강현 강동면 단구리 유학 김진탁 30세 정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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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과 관련하여 1945년 이전에 제작된 문서와 책·기록 등 현존하는 모든 서책류. 1. 『삼국사기(三國史記)』 1145년(인종 23) 김부식(金富軾) 등이 삼국시대 문헌과 사서(史書)에 의거하여 편찬한 사서이다. 권4 신라본기(新羅本紀) 4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 13년조 등에 울릉 지역과 관련한 기록이 보인다. 2. 『고려사(高麗史)』 독도와 관련한 기록은 「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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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연대가 오래 되어 현대지도와 구별되는 지도 중 경상북도 울릉군과 관련이 있는 지도의 총칭. 고지도는 근대적인 투영법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의 회화적인 지도를 말한다. 지도는 주로 행정적·군사적 목적에서 제작되었으나 실학(實學)이 일어나면서 산업·경제·문화에 대한 관심이 반영되어 산맥과 하천·항만·도로망 등의 표시가 정밀해졌다. 고지도는 지도에 수록되는 지역의 규모에 따라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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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 있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의 신앙 공동체. 교회라는 말은 본래 넓은 의미로 같은 종교를 믿는 신자의 집단 또는 집회소를 말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교회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개신교인들의 가시적인 단체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된다. 현재 전 세계에는 수백 개의 개신교 교파가 존재하고 있다. 경상북도 울릉군에는 감리교회, 장로교회, 침례교회, 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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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울릉도로 도망하여 거주하였던 유민.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는 강원도 지역에서 울릉도로 도망가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 김을지 역시 그러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조선 중앙 정부는 이러한 사람들이 군역(軍役)을 피해 국가의 통제가 잘 미치지 않는 먼 섬으로 도망하였다는 것과, 가짜 왜구 행세를 하며 본토의 연해 마을을 노략질 하는 일이 있으며, 울릉도·독도 지역에 머물러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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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이 환경상품을 판매할 수밖에 없는 그런 섬입니다. 최고의 상품은 환경입니다. 환경상품이 최고의 상품이라고 저희들이 생각하고 있는 범위 내에서는 지금 북면이 가장 좋은 상품을 가지고 있다라고 봐도 좋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일단 원시적으로 남아있는 죽도, 관음도, 강원도가 보이는 태하, 그리고 독도를 바로 조망할 수 있는 석포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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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배 타고 가시다 보면 노란색 칠한 배가 작업하는 거 있죠. 그게 각 어촌계 잠수선인데. 앞머리는 노랗고 뒤에 흰 배가 있고 배가 전체 노란 게 있거든요. 노란 배는 어촌계에서 관리하는 배고, 흰 배는 일반 사업자가 허가를 내가지고……. 흰색이면 자망 그물배에요. 항상 있는 게 아니라. 배가 떠 있는 게 아니라 자기들이 어망 깔아놓고 고기가 많이 들어오면 올리고, 없으면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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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토지를 이용하여 생산물을 얻는 활동. 울릉도에는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였다. 이들은 다른 선사 시대 사람들처럼 수렵과 어로로 생계를 유지해 나갔으며, 발달한 단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농업 활동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유물로서 갈돌과 갈판, 무문토기가 발견되고 있어 이러한 농업 활동을 추측할 수 있다. 울릉도는 산지가 많아 다른 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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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울릉도 도감을 울도군 군수(郡守)로 격상한 관제 개정. 1900년(고종 37) 10월 25일 반포된 칙령으로 이에 의거하여 울릉도는 독립된 군(郡)으로 격상되어 울릉도·죽도·독도를 관장하는 지방행정기관이 되었다. 이와 더불어 울릉도 도감(島監)은 울릉군 군수(郡守)로 격상되었으며, 울도군 초대 군수로는 배계주(裵季周)가 임명되었다. 1899년 울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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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에 있는 섬.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번지에 속한 법정 도서(島嶼)이다. 동도는 높이 98.6m이며, 서도는 높이 168.5m로 2개의 큰 섬 및 89개의 돌섬과 암초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나라 동쪽 끝에 위치한다. 512년(신라 지증왕 13) 하술라주 군주 이사부의 울릉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해상왕국 우산국 정벌로 신라에 귀속된 최초 기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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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수역(水域)에 살고 있는 동물의 모든 종류. 울릉군과 독도는 지리적으로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선포(EEZ)’에 따른 영해를 결정짓는 요충지가 된다. 또한, 동해의 심해 자연의 중심 해역에 위치하고 있는 비교적 청정 수역으로서 뛰어난 자연 경관과 풍부한 해양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천혜의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내륙과는 달리 해양성 기후를 갖고 있고 생물 지리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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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 서식하고 있는 쌍떡잎식물 진달래목 진달래과의 상록활엽관목. 만병초는 흔히 만가지 병에 효능이 있다고 하여, 약용으로 많이 사용되어 왔다. 울릉도 및 지리산, 강원도 이북 지역에서 자란다. 북부 고산지역에서 자라는 노랑만병초와 울릉도 지역에서 자라는 홍만병초, 그 외에 고산지역에서 자라는 만병초 등 크게 3종류가 자라고 있다. 산림청 희귀 및 멸종위기식물로 지정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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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자생하는 특산물. 명이는 백합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로 시베리아, 중국, 한국, 일본 등에 분포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오대산, 지리산, 설악산 등의 고산지나 울릉도의 숲속 또는 북부 지방에 자생하고 있다. 명이는 산마늘을 울릉도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아주 이른 봄에 눈 속에서 자라는 나물이다. 개척 당시에는 식량이 모자라 긴 겨울을 지나고 나면 굶주림에 시달리곤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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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때 경상북도 울릉군을 관할한 상부 지방행정구역. 고려 995년(성종 14)에 지방 제도를 처음 실시하면서 전국을 10도로 나누었을 때 영동과 영서 일대를 포함한 현재의 강원도에 해당하는 지역에 삭방도(朔方道)를 설치하였다. 삭방도는 1036년(정종 2)에 동계(東界), 1046년(문종 원년)에 동북면(東北面)으로 불렸다. 1178년(명종 8)에 삭방도를 폐하고 함경도와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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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과 1952년에 미국 공군 폭격대가 독도를 폭격한 사건. 해방 후 울릉도 및 강원도 어민들은 삶의 터전인 독도와 그 주변 해역에서 어로활동을 하였다. 그런데 미국은 대일 강화조약 이후 독도를 미국의 폭격 연습장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미군정은 이 사실을 주민들에게 전혀 알리지 않아, 결국 조업 중이던 한국 어민들은 미 공군의 독도 폭격 연습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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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전부 논농사 지었는데, 근데 바람 한 번씩 불어버리면 나락 다 떨어져 버리고, 동남풍이 불면 이 마을을 쓸어버리는 기라. 요새는 그런 농사를 안 지으니 농작물 피해는 없는데. 동남풍이 부는 시기는 3~4월, 그리고 9월초 주기적으로 불어요. 모내기 해놓고 한참 꽃 필 때 흔들어버리고, 고개 숙이고 있을때 서풍이 불어가 나락이 다 떨어져 버렸어요. 논이 많았어요. 나도 여서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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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서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가옥. 남양항으로 흘러드는 남양천과 남서천 사이의 골계마을에서 남서천 상류로 1.7㎞ 가량 떨어진 한국전력 남양리 발전소 하치장 앞에 있다. 박만진 가옥 뒤편의 가파른 산비탈에는 울릉 남서동 고분군[경상북도 기념물 제72호]이 있다. 고분군이 있는 동쪽 산비탈로 약 150m 떨어진 지점에는 윤성진 가옥이 있다. 박만진 가옥은 가파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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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울릉도에 사람이 거주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해금정책의 기초를 마련한 문신. 1400년(정종 2) 좌간의(左諫議)를 거쳐 1409년(태종 9) 우간의(右諫議)를 지냈다. 1411~1413년 강원도관찰사를 지내고, 이듬해 인녕부윤(仁寧府尹) 재직 당시에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호조판서로 재직하고 있던 1416년(태종 16) 박습은 태종에게 자신이 강원도관찰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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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예부터 쓰이는 토박이 언어. 1883년(고종 20)의 개척 당시 울릉 지역에는 주로 경상북도 지역 사람들이 이주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개척 초기에는 오히려 전라도와 강원도 지역 주민들이 많이 이주했다고 한다. 개척 초기 이들은 각각 본인들이 살다가 온 지역의 말을 주로 사용하며 생활했을 것이다. 그러나 울릉군의 지리학적인 측면이나 생활·환경적인 측면을 고려해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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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자생하는 뿔명이를 이용한 김치. 뿔명이는 잎이 다 퍼지지 않고 뿔처럼 올라온 명이나물의 어린 순을 두고 하는 말이다. 겨우내 눈 속에서 몸을 움츠리고 있던 명이나물은 4월 초가 되면 성인봉을 중심으로 울릉도 전역에 싹을 틔운다. 뿔명이지는 초봄 한철 자생하는 명이의 어린순을 오랫동안 먹기 위해 개발한 울릉도 지역의 저장식품 중 하나이다. 한 포기에서 한 줄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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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의 조직화된 집단. 울릉도는 그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삶 자체가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척박한 환경으로 식량 자급률이 매우 낮은데다 과거 육지와의 교통이 열악하여 식량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여름에는 태풍의 주요 이동 경로면서 겨울은 주요 폭설 지역으로 자연재해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1960년대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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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울릉도의 음식들은 무엇보다 신선한 식재료에서 나오는 음식 자체의 신선함을 으뜸으로 꼽는다. 그러나 울릉도 음식 하면 뭐니뭐니해도 소박하고 서민적인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험준한 자연환경에 맞서 삶터를 일군 개척민들의 근면성과 검약 정신이 고스란히 묻어난 울릉도의 향토음식들에는 어떤 기교나 모양새 없이 오직 식재료에서 나오는 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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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에 정착한 개척민들은 처음에 본천부, 혹은 나리동 등의 산중에 터를 잡았고, 점차 해안가로 내려온 것으로 개척민들의 후손들은 증언하고 있다. “나리동에 개척 당시에 180세대 정도 살았어요. 바닷가에 사는 것들은 아랫것들 하며…….(웃음) 그때 뭐 동학난이가 뭐 그라고 어떤 사람들은 여 뭐 자기가 띠지면(경작하면) 다 자기 땅이다 해가 온 사람도 있고. 우리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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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조부, 조모, 증조모까지 함께 이 집에서 살았죠. 할머니는 80살 정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면사무소 다니다가 나오셔서 사설 우체국한다고 하다가 사고로 돌아가셔서 그것을 하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넘겼죠. 누나 셋, 동생 있고. 할아버지 모시고 살아야 할 처지에 삼촌들은 외지에 가 있어서……. 중학교 나와 할 만한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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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떠나, 그는 강원도 묵호에서 한 동안 정착하였다. 처음에는 양복점을 하였고 그 뒤 탄광사업에 손을 대기도 했다. “묵호에서는 양복점을 하여 돈을 많이 벌었지. 당시 강원도 부자들은 탄광을 했는데, 나도 시작하게 된 거야. 철원 탄광이었는데……. 그때는 박정희(대통령)가 혁명을 일으켰을 때인데, (신청서가) 하루 늦어지는 바람에 들통이 났어. 대한석탄공사에 사업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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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기서 나서 여기서 삽니다. 선대는 우리 어른들은 강원도에서 오셨는데. 지금 24살 5살 때 울 아버지 돌아가셨는데. 그 어른들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재적부를 들춰보면. 할아버지 이름만 있지. 강원도에서 왔다는 말은 없거든요. 산소가 바로 여기 있어요. 산소 쓴지가 70, 80년 되거든요. 족보를 한번 보니까 옛날 한문 잘 모르지만 두루마리 편지도 있고. 태하군청에 온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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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설화는 신화와 전설, 민담 등 세 가지로 나누는 것이 세계적인 통례이다. 물론 이 셋 사이에 확연한 선을 긋는 것은 어려운데, 서로 넘나드는 경우도 있고, 성격이 서로 전환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울릉 지역에서 전해 오는 설화는 대부분 전설에 속하는 이야기들로서 편수도 그리 많지 않은데, 이는 울릉도에 본토인이 이주한 시기가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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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 서식하고 있는 외떡잎식물 백합목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백합과 식물 중의 하나로 말나리에 비해 꽃이 노랑색으로 피는 것이 다르고, 현재 산림청 지정 희귀 및 멸종위기 식물이자 우리나라 특산식물 중의 하나이다. 한국 특산종으로 강원도 금강산, 함경도 원산·무산령 등지와 만주·아무르·우수리 지방까지 분포한다. 일본에서는 관상용으로 건너간 것이 귀화하여 널리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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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 학포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민가. 서면 태하리의 산막마을에서 일주 도로를 타고 가면 서북쪽 500m 지점에 위치한 작은 해안 마을에 있다. 손모익 가옥은 일주 도로 밑 산비탈 일대에서 확인된 태하리 고분군② 내에 있다. 사람들이 대부분 이사를 하여 지금은 빈집만 남아 있다. 몸채 건립 이후에 마당 양쪽으로 헛간 2동을 증설했다. 그리고 우데기에 단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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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울릉도 거주민을 본토로 이주시킨 정책.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는 울릉도에 주민이 거주하면 울릉도를 침입한 왜구가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강원도 등을 침구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당시에는 울릉도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울릉도에 들어간 어민들로부터 조세 수취와 역역 동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조선 초기 연근해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왜구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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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울릉도에 남아 있는 고고학적 유적 중에 청동기시대의 표식적 유적으로 파악되는 고인돌 유적이 일부 지역에서 확인되고 있어 청동기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본격적인 고고학적 유적으로 포함되는 고분군의 경우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유적이 다수 발견됨으로써 울릉도 역시 이 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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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상북도 울릉군의 역사. 울릉도의 경우 일제강점기인 1917년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에 의해 처음 유물의 채집이 있은 이후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 등의 조사가 있었다. 해방 후 국립박물관에 의해 울릉도의 고고학적 조사가 실시되었다. 1947년과 1957년에 김원룡 등에 의해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졌고, 1963년에 김정기에 의해 보충 조사가 실시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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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의해 개칭된 경상북도 울릉군의 이름. 1899년 8월 울릉도에 대한 삼림 채벌권을 갖고 있었던 러시아는 일본과 대한제국에게 일본인들의 삼림 채벌에 대해 항의하였다. 그 처리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일본인들의 울릉도 침어와 삼림 채벌에 대한 항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일본인의 철수를 요구하였다. 그 해 12월 15일 우용정(禹用鼎)을 시찰 위원에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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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고종 37) 6월 우용정이 저술한 울릉도 조사 보고서. 우용정(禹用鼎)이 울릉도 시찰위원으로 임명된 후, 1900년 5월 25일 인천항을 향해 출발하여, 5월 27일에 일본 경부 1명을 태우고 인천을 출발, 부산항에 도착해서 5월 30일 감리서주사 김면수와 부산해관 세무사 라포트(E. Raporte, 羅保得) 및 봉판 김성원(金聲遠)과 일본 부영사보 아카쓰카 쇼스케[赤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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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에 있는 지방 자치 행정 기관. 울릉군청은 아름다운 국제 관광 휴양 섬 건설을 목표로 미래를 위한 지역 개발, 특색 있는 관광 명소, 신비의 섬 환경 보전, 정이 깃든 사회 복지, 발로 뛰는 현장 행정을 군정 구호로 정하고 업무에 임하고 있다. 경상북도 울릉군의 행정과 자치업무 등을 담당하기 위하여 설립된 기관이다. 1882년(고종 19) 이규원이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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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사동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울릉도의 생활상을 노래한 아리랑. 1980년대 울릉읍 사동리에 거주하는 김재조[60]가 구연한 것을 김연갑이 채록하였다. 연의 구분이 있는 분연체(分聯體)이며 모두 10연이다. 가창 방식은 후렴이 있는 선후창이고 율격은 급격한 느낌을 주는 2음보격을 기본으로 하며, 중간에 3음보격과 4음보격이 삽입되어 있다. 창파(滄波)에 배를 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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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고종 20) 이규원이 저술한 울릉도 검찰일기. 1881년(고종 18) 울릉도 수토관(搜討官)은 일본인들이 울릉도의 규목을 몰래 베어 가는 등 울릉도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강원감사에게 보고하였고, 강원감사는 이 사실을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에 보고하였다. 조정에서는 일본 정부에 항의 공문을 발송하게 하는 동시에 대책 마련을 위해 부호군 이규원(李奎遠)을 울릉도검찰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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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울릉도에 변장을 두고 경작하기를 상소한 유생. 1726년(영조 10) 강원도 유생 이승수는 영동(嶺東)의 아홉 군(郡)에 수영(水營)을 설치하여 방어하는 계책을 세우고, 울릉도(鬱陵島)에 변장(邊將) 1원(員)을 두고서 민간을 모집하여 경작하도록 조정에 상소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그전에 곤수(閫帥:병사나 수사를 예스럽게 부르는 말)가 없던 데에 새로 두기는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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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고종 17) 일본해로수로국에서 편찬한 공식 간행물. 수로지는 각 나라에서 해상의 기상·조류 등의 여러 현상 및 항로의 상황, 자국 연안의 지형, 항만의 상황과 시설 등을 상세히 기재한 문헌이다. 일본은 1880년 3월부터 전 세계를 대상으로 『환영수로지(寰瀛水路誌)』의 편찬을 시작하여, 1889년 3월 수로지 편찬을 중단하였다. 이후 일본 영해를 구별하기 위해서 『일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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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강점이 한창이던 1923년, 울릉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도동에서 생활해 온 마을주민 최헌식 씨는 당시 울릉도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이전에 (구(舊)한국 ; 대한제국) 강원도에서 울릉도를 관할하고 있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하도 일본 사람들이 많이 와가지고 해산물도 해가고 울릉도 나무를 캐 베어가고 하니까, 도경으로 파견 나와서 일 년에 한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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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다른 국내항간에 일정한 항로 및 일정표에 의하여 사람 또는 물건을 운송하거나 이에 수반되는 업무를 처리하는 선박. 정기 여객선은 주로 여객을 태워 나르는 선박으로 정기 객선이라고도 하는데, 「선박안전법」상 13인 이상의 여객을 태울 수 있는 선박을 여객선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배 안 공간의 70~80% 이상을 여객 설비에 충당한 배를 가리킨다. 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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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울릉도 역사. 울릉도는 고려 말 왜구 때문에 무인도가 되었으나, 조선 초 이래 육지의 백성들이 계속 건너가 살았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울진현(蔚珍縣)에 소속되었지만, 이곳이 왜구의 거점이 된다고 하여 조선 전기에는 쇄환정책(刷還政策), 조선 후기에는 수토정책(搜討政策)을 시행하였다. 그리하여 본토로부터 울릉도에 들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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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울릉도 수토를 정지해 줄 것을 조정에 요청한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계량(季良). 승지 조희보(趙希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예조판서 조형(趙珩)이고 아버지는 조상개(趙相槪), 어머니는 오상한(吳詳漢)의 딸이다. 경종이 승하하고 영조가 즉위한 뒤 응교(應敎)·사간(司諫)·교리(校理)를 지내면서 불합리한 조정 대신을 탄핵하기도 하였다. 1727년(영조 3)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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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전통적으로 전승되어 온 살림집의 형태와 기능 및 전반적인 생활의 모습들. 울릉군의 주도인 울릉도는 동해의 도서 중 가장 큰 섬으로, 바다 가운데 솟아난 거대한 화산의 정상부가 해면상에 노출되어 형성된 화산섬이다. 해수면에서부터 가파른 경사를 이루며, 하천은 절벽을 이루는 해안에 직각 또는 직선상으로 짧게 발달하여 급류를 이루는 지형적 특징이 있다. 연간 강수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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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곳에는 황토가 많이 났다고 한다. 지금도 현포 쪽 바닷가 산에 황토를 파낸 자취가 아직 남아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조선조 때는 이곳의 황토를 나라에 진상했다고 하며, 또 조정에서는 3년에 한 번씩 삼척영장을 이 섬에 순찰 보내어 그 순찰 여부를 알기 위해서 이곳의 황토와 향나무를 바치게 했다고도 한다. 개척 때 사람들이 이곳에 와 보니 바닷가 산에 황토를 파낸 구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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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는 매우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얼리지 않았다고 하여 생태, 얼리거나 겨울에 잡힌다 하여 동태, 겨울 덕장에서 추위와 더불어 말린 것을 황태, 그 색깔이 검은 것을 흑태, 반건조한 것을 코다리, 완전히 건조한 것은 북어 등. 매우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름 이외에 울릉도에서는 춘태라는 것이 있었다. 요즈음과 달리, 한때 울릉도에서 어획고가 높은 어종 가운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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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 서식하고 있는 외떡잎식물 백합목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연령초와 비슷하게 생긴 식물로 백합과에 속하며, 뿌리에 독이 있어 함부로 사용하면 안되는 식물이다. 환경부 멸종위기야생동식물 Ⅱ급에 해당하는 희귀식물 중 하나이다. 굵고 짧은 근경이 땅속 깊이 들어가며, 잎은 넓은 난형이고 줄기 끝에 3장이 돌려난다. 잎의 길이와 넓이는 7~17㎝ 정도이고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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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자연재해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이 바로 태풍이다. 1979년에 발생한 태풍 쥬디로 136명이 사망하고, 1987년에는 태풍 셀마로 345명이 사망·실종된 것을 비롯해 1991년에는 태풍 글래디스가 발생하여 103명, 1995년에는 태풍 제니스가 65명, 1999년에는 태풍 올가가 64명의 인명을 앗아 가는 등 막대한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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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통나무와 나무껍질로 짓는 전통 민가. 민가를 벽체 구조와 재료로 분류하자면 화통집과 투막집으로 나눈다. 화통집은 기둥 사이에 나뭇가지로 엮고 그 위에 흙을 발라 벽을 만든 집이고, 투막집은 통나무를 정(井)자로 쌓아 올려 벽을 만든 집을 말한다. 투막집은 일반적으로 귀틀집이라 호칭되나 지역에 따라 상이한 속칭이 있다. 태백산맥 산간 오지에는 투방집, 울릉도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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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개척 시기에 사용된 풍력을 이용한 배. 풍선은 선체 위에 세운 돛에 바람을 받게 해서 진행하는 배이다. 경상북도 울릉 지역에서는 개척 시기에 이주민들이 타고 온 나선[전라도 어선]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문헌에 따르면 풍선의 유래는 개척 시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82년 울릉도를 검찰한 이규원의 검찰일기를 보면 전라도와 강원도 사람들이 울릉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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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월송만호를 역임한 무신. 1791년(정조 15)에 수문장(守門將)을 역임하였으며, 이후 강원도 월송만호로 부임하였다. 월송만호 시절, 2년에 한 번 울릉도를 수토한다는 규정에 따라서 1794년(정조 18) 4월에 강원도 관찰사 심진현(沈晉賢)의 명으로 울릉도를 수토하였다. 이후 울릉도의 도형(圖形)을 작성하여 토산물과 함께 비변사에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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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지역에서 일정하게 흐르는 바닷물의 흐름. 동해 내에서 한국 동부 연안을 따라 이동하는 해류로는 대양의 아열대 및 아한대 순환의 서안경계류에 해당하는 동한난류와 북한한류가 존재하며 동해 북부 해역에서는 심층수가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동해에는 난수성 와류, 해류의 사행 등 중규모 해양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동한난류라 하는 것은 북한한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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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공권력을 배경으로 공공 정책의 합리적인 형성과 집행을 구체화하는 과정. 일반적으로 근대 국가 성립 이후 190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행정의 주된 역할과 기능은 국가의 질서 유지에 있었다. 그러나 19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국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질서 유지 기능뿐만 아니라 수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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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부터 1968년 화전정리법이 공포되기 전까지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행해진 농경 방식. 화전은 처녀지나 휴경지(休耕地)를 새로이 경작할 때 불을 놓아 야초와 잡목을 태워버리고 농경에 이용하던 땅이다. 화전 농업은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농경 방식으로 인정되고 있다. 중국의 화경(火耕)이나 일본의 야키바타[燒畑]도 화전과 같은 농경 방식이다. 화전을 개척하면 그 동안에 쌓였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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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울릉도 해금정책 확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문신. 본관은 장수(長水). 초명은 수로(壽老). 자는 구부(懼夫), 호는 방촌(尨村). 황석부(黃石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균비(黃均庇)이고 아버지는 자헌대부 판강릉대도호부사 황군서(黃君瑞)이며 어머니는 김우(金祐)의 딸이다. 개성 가조리(可助里)에서 출생하였다. 황희는 울릉도·독도 지역과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