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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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울릉도 개척령에 의해 본토로부터 울릉도에 이주해온 사람들. 1883년(고종 20) 울릉도 개척령이 내려진 후 수토(搜討) 정책이 폐기되고, 울릉도에 개척민이 이주했으며, 일본인들은 일본 정부에 의해 소환되었다. 1883년 울릉도 개척령에 의해 울릉도에 들어와 정착과 개간을 시작한 민호와 인구 상황에 관한 자료인 『광서구년칠월 일 강원도울릉도 신입민호인구 성명연세급전토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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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나리에 속하는 마을. 이곳은 알봉[538m] 안 쪽 깊숙이 자리하고 있어 멀다는 의미인 거물[거리다]에서 변한 이름이다. 울릉도 개척정책 이주민 중 가장 큰 집단은 북면의 나리에 터를 잡은 집단으로 93세대에 500여 명이 거주했다. 1906년 행정 구역을 성인봉 중심으로 북면 쪽 미륵산, 초봉을 거쳐 향목령 끝까지를 경계로 하여 그 북면이라 해서 석포·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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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흉년 등으로 식재료가 부족할 때 주식 대용으로 먹는 음식. 육지의 구황 음식이 봄에 집중된 반면 울릉도의 구황 음식은 계절의 구분이 없었다. 이는 무엇보다 울릉 지역의 농지가 턱없이 부족한데다 육지와의 교통도 불편하여 벼나 보리 등 식량으로 먹는 곡물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개척령 이후 울릉도로 입도한 주민들은 사면이 바다이지만 물고기를 잡는 기술이 부족하여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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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나리는 울릉도에서 지리적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성인봉에서 북쪽으로 약 1.5㎞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그리고 북면 천부리에서 성인봉으로 약 10여 리 올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큰 분지가 곧 나리이다. 이곳은 원래 옛 분화구의 화구원으로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울릉군 유일의 평원을 이루고 있다. 나리는 한자의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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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산막 가는 길은 산책로는 지금 하거든요. 그 입구에다가. 터가 8미터인데. 죽도 들어가는 것처럼 위에 달팽이 계단식으로 해가지고 위에 삼각형이라. 그래가 그 중간까지 가서, 거서 바로 계단 만들어서 넘어가고, 넘어서면 구름다리 놓고 산에 정자, 산책로 하기로 했거든요. 지금 착공해야 돼요. 용역회사가 측량하고 그러더라고요. 개인택시를 몰고 지금 영업을 한 몇 년 하고 있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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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계 외의 마을 조직으로 발전협의회라고 있습니다. 제가 겸직하고 있는데, 그거는 해상공원하고 내수전·섬목·저동간 도로관계 협의체입니다. 협의회 회원은 전 주민 대상입니다. 35명(천부1리)이네요. 회의는 어업인 복지회관에서 합니다. 집중적으로는 해상공원 개발이죠. 저기라도 해놓으면 버스라도 안대주겠나 이거죠. 실제 나리동(나리분지) 갔다가 여 대면 볼 거라도 있어야 관광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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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리의 옛 지명. 개척 초기 이곳에 이주해 온 사람들이 나무를 베어낸 뒤 막을 치고 사방을 살펴보니 빽빽이 둘러싼 나무들로 인해 주위에 보이는 것은 없고, 다만 나무를 베어 낸 곳으로 동그랗게 하늘만 보였기 때문에 천부(天府)라 하였다. 뒤에 예선창을 천부라고 하자 이 곳을 본래의 천부라는 뜻으로 본천부라고 하였다. 본래 북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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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해 있는 행정구역. 석포동 남쪽 산등성이를 타고 남서쪽으로 올라가서 이 섬의 최고봉인 성인봉을 거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타고 내려가서 태하령과 노인봉을 지나 태하동, 말바위와 남서동 물칭칭 사이 산 끝까지를 경계로 하여 북쪽에 있다고 해서 북면이 되었다. 1900년 10월 25일 군제를 실시하면서 남면과 북면으로 나누어지고, 북면에는 석포·천부·신리·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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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술도가 있는 집은 부자고. 아버지가 4형제 였어. 원래 나리동 구방에 밭이 있었는데 비만 오면 물이 채서 그 땅을 팔아버렸어. 그때 돈 5만원 주고 팔아버렸어. 땅하고 산하고 임야 대지 전부 한 덩어리로……. 저기 북중학교 운동장 터, 거 원래 우리 땅인데 운동장이 비좁아서 정환이 아버지인 큰 형님이 땅을 학교에 희사했어. 학교를 저쪽 현포서 땡겨간다 했거든. 큰 형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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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리에 있는 북면 관할의 행정 기관.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의 행정과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00년 군제를 실시하면서 섬의 최고봉인 성인봉과 태하령을 중심으로 남쪽을 남면이라 하고, 그 북쪽을 북면이라 하였다. 당시 북면은 석포·천부·나리·평리·현포·태하·학포의 7개 동을 관할하였다. 1906년 행정구역이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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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에 정착한 개척민들은 처음에 본천부, 혹은 나리동 등의 산중에 터를 잡았고, 점차 해안가로 내려온 것으로 개척민들의 후손들은 증언하고 있다. “나리동에 개척 당시에 180세대 정도 살았어요. 바닷가에 사는 것들은 아랫것들 하며…….(웃음) 그때 뭐 동학난이가 뭐 그라고 어떤 사람들은 여 뭐 자기가 띠지면(경작하면) 다 자기 땅이다 해가 온 사람도 있고. 우리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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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조부, 조모, 증조모까지 함께 이 집에서 살았죠. 할머니는 80살 정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면사무소 다니다가 나오셔서 사설 우체국한다고 하다가 사고로 돌아가셔서 그것을 하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넘겼죠. 누나 셋, 동생 있고. 할아버지 모시고 살아야 할 처지에 삼촌들은 외지에 가 있어서……. 중학교 나와 할 만한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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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일 년을 주기로 절기마다 행하는 전통과 관습. 우리나라는 오랜 옛날부터 농업이 주산업인 농본국으로서, 세시풍속 역시 농업의 생업력이 일정하게 투영되어 있다. 1960년대까지 울릉군에서는 어업보다는 농업 위주의 산업이 우선시되었으며, 이후 농업보다는 어업의 비중이 높아졌다. 이 때문에 어업의 세시풍속과 농촌의 세시풍속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정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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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지역에서 생육하고 있는 식물의 종류상으로 동물상에 대응하는 말. 식생(植生)은 어떤 지역을 차지하는 모든 식물적 생명체를 가리키는데 대하여 식물상은 그 곳에 생육하는 모든 식물의 종명(種名)을 동정(同定)하여 나타낸 것을 말한다. 따라서 한국의 식물상, 미국의 식물상과 같이 크게도 사용되고 한라산의 식물상, 울릉도의 식물상과 같이 국지적으로도 사용된다. 기존의 울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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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독특한 자연환경 및 주생활이 반영된 가옥의 외벽 설비. 울릉도의 민가에서 방설·방우·방풍 등을 위해 본채의 벽 바깥쪽에 기둥을 세우고 새나 옥수숫대 등을 엮어 친 외벽이다. 우데기는 울릉도에서 자생적으로 고안된 이중 외벽 설비이다. 울릉도 민가에서 설치된 우데기는 방설 및 방풍과 방우·차양 등의 기능과 더불어 몸채 위주의 자족적 공간 이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발생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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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나리에 있는 울릉국화와 섬백리향의 군락지. 나리분지에서 자생하고 있는 울릉국화와 섬백리향군락은 우리나라에서 울릉도에만 있는 울릉도 특산식물이다. 특산종의 자생지 보전을 위하여 1962년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보전되고 있다. 울릉국화는 우리나라의 자생 들국화의 일종이며 잎이 다른 야생국화인 쑥부쟁이, 구절초보다 많이 갈라지고 윗면이 반들반들하다.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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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동쪽 바다에 위치한 행정구역. 울릉군은 사면이 바다로 되어 있으며, 대체로 삼각형 형태를 하고 있다. 2009년 12월 현재 인구는 총 4,848세대에 10,398명[남자 5,449명, 여자 4,94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본래 우산국이었는데, 행정 구역의 변천 과정은 1910년 9월 30일 조선총독부 지방 관제로 종래 부군(府郡)의 하부 행정 단위를 면(面)으로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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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지역에서 주민 수 또는 인간집단. 인구란 한나라 또는 일정한 지역 안에 사는 사람의 수를 말하는 것으로 울릉군의 인구는 울릉군의 주민등록상 등록되어 있는 사람의 수로서 독도의 인구도 포함하고 있다. 울릉군의 인구는 1974년 29,810명을 최고 정점으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며, 2000년대에는 인구 감소 추세가 완화되기는 하였으나, 현재 9,000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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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에서 1945년까지 일본에 의한 식민 통치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울릉도 역사. 1910년 일본의 식민지가 된 우리나라에는 조선총독부가 설치되고, 헌병경찰제도가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울릉도의 경우 일본인 나카가와[中川]가 울도군주사로 와서 도민을 다스렸다. 1913년 4월 1일에 울릉도의 하부 행정 단위로 3개면[남면·서면·북면] 9개동[저동·도동·사동·남양동·남서동·태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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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가 선대 여 앞에 양조장 및 어업을 했어요. 하다가 막걸리도 잘 안되고 해서 치우고, 어업을 했어요. 유지인데, 아버지가 성격이 와일드해가 내가 군대 있을 때, 오징어잡이 2년 해가 돈을 다 띠어 버렸다니깐. 10원도 못 받고, 그래가 가정형편이 어려워 졌어요. 1년 사업해가 모아뒀다가 써야 되는데 그것을 한 푼도 못 받았으니, 그게 엄청났어요. 집이 어려워져서 어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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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3월 1일 일본 태정대신이 발급한 일본인의 울릉도 도항을 금지하는 문서. 일본에서 송도(松島)[竹島]라 부르고, 조선에서 울릉도(蔚陵島, 鬱陵島)라 부르는 곳에 일본인들의 도항(渡航)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각 지방관에게 하달(下達)하여 이를 준수토록 한 지령이다. 문서의 크기는 19.5×29.5㎝이다. 1882년 4월 조선 정부는 울릉도검찰사(鬱陵島檢察使) 이규원(李圭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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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선창은 천부리의 중심이다. ‘예(옛날)부터 선창’이라 하여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왜선들이 들어와 이곳에서 배를 만들고 고기를 잡고 귀목(느티나무)을 도벌하여 갔기 때문에 왜선창이라도 불렀다. 이규원 일기에는 ‘왜선창’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후 동명을 한자식으로 바꿀 때, ‘천부’라고 이름하였다. 시절이 하 수상하여 바다 건너 살 곳 찾아 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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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리에 속하는 행정리. 울릉도 최초의 개척선이 와 닿은 항구가 있던 마을이다. 개척 초에는 ‘왜선창(倭船艙)’이라 불리던 것이 잘못 인식되어, 옛날의 선창 곧 옛 선창이란 뜻에서 예선창이라 부르다가 후에 한자식 표기를 할 때 현 천부동의 동명을 그대로 사용하여 천부(天府)라고도 하였다. 또한, 울릉도 개척 초 이곳에 살기 위해 온 사람들이 나무를 베어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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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리에 속하는 행정리. 울릉도 개척 초에 예선창에 내린 사람들 중에 덕산이씨(德山李氏)의 백산노인과 간성이씨(杆城李氏)의 철원노인 두 사람이 바닷가에 살 수가 없다고 하여 가족을 거느리고 이곳에 왔다. 와서 보니 아름드리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하늘을 찌르고, 갖가지 넝쿨이 엉켜 있는 운동장 남짓한 평지가 있어 만약 샘물만 있으면 살기에는 가장 좋은 곳인 듯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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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리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북면 지역인데, 1900년 10월 25일 군제를 실시하면서 석포·천부·신리·평리·현포·태하·학포의 7개 동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06년 행정구역을 다시 나누어 석포·천부·나리·현포·평리 5개 동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포동과 평리동을 병합하여 현포동으로, 천부동·석포동·나리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천부동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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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리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북면 지역인데, 1900년 10월 25일 군제를 실시하면서 석포·천부·신리·평리·현포·태하·학포의 7개 동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06년 행정구역을 다시 나누어 석포·천부·나리·현포·평리 5개 동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포동과 평리동을 병합하여 현포동으로, 천부동·석포동·나리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천부동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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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나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치 깎아 놓은 듯이 가파르다고 깍깨등이라 한다. 깎끼등, 깍깨뜽 혹은 추산깍깨등이라고도 한다. 송곳봉[錐山]이란 지명은 현 추산발전소 옆에 삼각형 산의 모양에서 유래한다. 산봉우리가 마치 송곳과 같이 뾰족하다고 해서 송곳산이라고도 한다. 한자식 지명으로 표기하면서 추산이라 하였다. 본래 북면 지역으로 이중식 화산의 분화구인데, 화산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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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현포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의 이름은 동쪽에 있는 촉대암(燭臺岩)의 그림자가 바다에 비치면 바닷물이 검게 보이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본래 북면 지역으로 1900년 10월 25일 군제를 실시하면서 석포·천부·신리·평리·현포·태하·학포의 7개 동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06년 행정구역 개편시 석포·천부·나리·현포·평리의 5개 동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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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현포리에 속하는 행정리. 현포(玄圃)라는 마을 이름은 동쪽에 있는 촉대암(燭臺岩)의 그림자가 바다에 비치면 바닷물이 검게 보이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본래 북면 지역으로 1900년 10월 25일 군제를 실시하면서 석포·천부·신리·평리·현포·태하·학포의 7개 동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06년 행정구역 개편시 석포·천부·나리·현포·평리의 5개 동을 관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