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리
-
1977년 법주사에서 세계사를 복원해야 한다고 부탁을 받고 도반과 함께 당시 중원군 상모면 미륵리 세계사로 와서 겨울 한철을 지내면서 100일 기도를 끝냈을 때, 기부금 78,000원 정도 확보되었지만 이것으로는 도저히 복원이 불가하다고 판단하여 떠나기로 하였다고 한다. 당시는 버스가 들어오질 않아서 버스를 타려면 30리를 걸어 다녀야 하는 형편이었기에 복원한다는 자체가 무리라고...
-
굳이 ‘산이 그 곳에 있어 오른다’는 진부한 말을 들먹일 필요가 없다. 골짜기로 난 길을 걷다보면 계곡의 바위를 휘감아 치는 작은 폭포들이 마음을 유쾌하게 만드는데, 넓은 암반 위를 살그머니 적시며 미끄러져 내려가는 물줄기는 바라만 보아도 즐겁다. 산 나무들이 우거져 하늘을 가리고 있고 각기의 생명을 뽐내는 야생초들이 있어 상쾌해진다. 이름 모를 새들도 가끔 울어주는 덕에 더없이...
-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산줄기를 이루는 봉우리들 사이의 낮은 능선부. 한반도는 오랜 기간 동안 변성을 받거나 마그마의 관입으로 더욱 단단한 지각으로 구성된 안정 지괴에 속한다. 게다가 남동에서 북서로 미는 태평양판을 비롯하여 남쪽에서 밀려오는 필리핀판, 동쪽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쳐 온 동해 지각의 확장 등 다양한 방향의 횡압력을 직간접적으로 받아 왔다. 이...
-
충청북도 충주시 시민에게 개방되어 산책이나 야외 활동 및 운동을 할 수 있는 시설. 공원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자연공원법」과 「도시공원법」에 의하여 자연 경관의 보호와 주민의 휴양 및 정서 생활의 향상을 위하여 마련한 사회 시설이다. 자연공원은 관리 주체에 따라 국립공원·도립공원·군립공원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도시공원은 그 기능에 따라 근린공원·어린이공원·도시자연공원...
-
어디를 둘러보더라도 빼곡히 들어 찬 산자락에 겨우 자리한 마을 미륵리. 가진 것이라곤 웅장한 자태의 산과 그 안에 엎드린 계곡뿐이다. 농경지라고는 손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이고 논이 한필지도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어스렁한 돌밭을 일궈 가면서 고추, 콩 등을 재배하였으나 최근 농가 소득을 높이는 과수, 더덕, 옥수수 등 특용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올해는 백두대간 사업 지원...
-
미륵리 토박이 양재옥 씨(70세), 그는 끝끝내 고생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후회하는 빛은 전연 없다. 그저 담담하게 말한다. 수안보초등학교를 다녀야 했는데 너무 멀어서 거의 못 다녔다. 밥을 싸고 책을 짊어지고 집을 나서지만 어린 나이에 30리 길을 걷기란 용이한 일이 아니었기에 가다가 다리 아프면 학교를 안가고 놀았다고 한다. 대부분 부모들도 알고 있어...
-
관광지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는 억척스러움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곱상하기만 하고 여린 모습이다. 그럼에도 한겨울 손님이 없는 미륵가든을 닫지 않고 쉼 없이 움직이며 무언가를 한다. 서두름도 없고 요란스러움도 없이 그렇게 움직이며 미륵가든을 지키고 있었다. 약 20년 전에 ‘바깥 양반(정무후 씨)’의 사업체가 생기는 바람에 같이 들어 왔다가 눌러 앉았다는 이영숙 씨. 그 당시는 음식점...
-
미륵리 마을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것은 ‘미륵리도요지’ 보호 건물이다. 오름칸 가마와 계단식 가마가 절충된 가마터로 보존 가치가 높다고 판단하여 보호 건물을 지었다. 그러나 미륵리 주민이라면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저 산에 올라가면 널린 게 가마터여” 라고 한다. 어느 골이든 숯골이고 가마골이란다. 미륵리 마을 초입에서 우측으로 산길을 따라 2㎞ 정도...
-
문경 주흘산 밑에서 18살 되던 해 섣달 초이렛날(음력 11월 10일) 시집을 오는데 엄청 눈이 많이 왔단다. 새색시가 가마를 타고 새재를 지나 야문(동화원과 지릅재를 연결하는 고개로 성문이 있다)을 거쳐 미륵리로 오는데 가마꾼들이 술에 취해 자꾸 가마를 메다 꽂았단다. 그래서 가마 밑구녁이 빠지기도 하여 배행(陪行: 떠나는 사람을 일정한 곳까지 따라 감)하는 아저씨가...
-
간밤에 살포시 내린 비를 맞은 대지 위에 봄 햇살의 기운이 더해져서 한결 생명력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릅재와 하늘재를 사이에 두고 ‘빠꼼하게 하늘만 보이는 곳’ 미륵리 … 그 곳에 이상정 씨(47세) 가족이 산다. 이곳 미륵리에는 내세에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 부처님이 살고 있고, 풍수상으로는 인간의 모태가 되는 중심점인 배꼽 형상으로 최고의 길지로 꼽히는 곳이기에 미래의...
-
이한탁 씨, 그는 고생도 많이 했지만 몸 속에 숨겨진 끼를 버리지 못한 사람이다. 현재는 허리를 다쳐서 잠시 술을 끊고 있지만, 신명이 오르면 술 한잔에 노래가 나오고, 쇳소리(꽹가리)만 나면 몸이 근질거려 앉아 있지를 못한다고 했다. 미륵리 마을에서는 경북에서 상쇠를 모셔다가 풍물을 배웠다고 한다. 어렸을 적부터 마을에서 풍물을 배울라치면 여지없이 근처에서 맴돌며 흉내...
-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사람이나 차들이 다니는 비교적 큰 길. 통합 충주시의 고속국도, 국도, 지방도 등은 동서·남북의 축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고 군도는 국도와 지방도 등과 연결되어 있다. 통합 충주시의 도로의 노선은 2006년 12월 31일 현재 고속국도 1개 노선, 건설 중인 고속국도 1개 노선, 일반국도 4개 노선, 국가지원지방도 2개 노선, 지방도 9개 노선,...
-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토기나 자기를 굽던 가마터. 일반적으로 토기나 자기, 기와를 굽거나 숯을 만들고 철을 녹이던 시설을 통칭하여 가마[窯址]라고 한다. 도요지는 그 가운데 토기나 자기를 굽던 가마에 한정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의 연질 토기는 노천요(露天窯)라고 하는 원시 가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측된다. 노천요는 연료실과 적재실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
충청북도 충주시에 서식, 분포하고 있는 동물의 종류. 국제자연보호연맹에서는 ‘보호대상 생물 자료집 범주(red data book category)’로서 (1) 절멸종(Ex)은 야생적으로 이미 사라진 종, (2) 절멸 위기종(E)은 절멸의 위험에 빠져 있고 그 근원적인 요인이 계속 작용할 경우 생존이 어려운 종, (3) 위협받는 종(T)은 근원적인 원인이 계속된...
-
후덕한 인상의 조복천 이장을 처음 만난 곳은 미륵리 미륵가든이다. 미리 전화상으로 간략히 의도를 전달한 터이지만 만나자마자 협조를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의외로 선선히 협조를 해주신다고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주면 되느냐고 오히려 물어 온다. 당황스러웠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겠다는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그저 이장을 만나서 협조나 얻어놓자 하는 안일한 생각이었기에 당황만 하다...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마골재 봉수는 본래 연풍현 소속으로 남쪽으로는 문경의 탄항 봉수, 북쪽으로는 충주의 충주 주정산 봉수와 응하는데, 봉수대에는 별장 1명과 감관 5명, 봉군 25명, 보 75명이 소속되었다. 마골재 봉수는 계립령을 넘어 충주 연풍의 주정산을 연결하는 조선시대 제2거의 간봉이다. 직접적인 건립 경...
-
서울 토박이이며 한때는 노인을 위한 봉사단체인 은십자 운동본부의 사무국장과 본부장을 역임하셨다는 정무후 씨. 자신이 노인이 된다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도 않았는데 어느덧 자기가 노인네라며 껄껄 웃으시는 모습이 세련되면서도 중후한 멋을 풍긴다. 그의 고향은 두 군데라고 한다. 한 곳은 서울이고, 또 하나는 여기 미륵리라고 망설임없이 말한다.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서울에서...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서 미륵불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마의태자와 덕주공주」 이야기는 역사적 인물과 결부되고 있고, 수안보면 미륵리 미륵사 창건과 관련된 사찰연기담이다. 마의태자가 나라의 멸망을 서러워하여 이곳까지 와서 미륵불상을 만들고 개골산으로 들어갔으며, 그 여동생은 제천 덕주사 마애불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마의태자가 세운 미륵불상...
-
충청북도 충주시 안림동과 목벌동·종민동을 연결하는 고개. 마즈막재는 신라시대에 나무벌[木伐]과 같은 뜻인 깊은나무고개[心木峙]였다. 계명산 옛 이름인 심항산에서 따와 심항현이라 하였고, 심항현의 한자 뜻을 풀어 마수막재라고도 하였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마즈막재로 발음이 바뀌었다. 한편, 청풍과 단양의 죄수들이 사형 집행을 받기 위해 충주로 들어오려면 반드시 이...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서 말무덤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수안보면 미륵리의 수안보초등학교 미륵분교 앞에 큰 무덤이 있는데, 이를 흔히 ‘말무덤’이라고 한다. 고구려 온달(溫達)[?~590] 장군이 이곳에서 신라군과 싸우다 그가 타고 있던 말이 창에 맞아 죽자 이곳에 묻어 주었으며, 말의 무덤이라는 뜻에서 ‘말무더미’로 불렀다고 한다. 197...
-
자칭 살림살이는 그런대로 하는데 성격은 덜렁거린다는 노상심 씨. 점말 한옥마을에서 쑥 내려간, 방안이 어두운 집에서 살고 있다. 전혀 자신의 생활 모습에 주눅들지 않는 당당함이 몸에 배여 있다. 고생을 모르고 살아 온 아주머니처럼 첫 인상이 서글하면서도 웃음이 입가에 걸려 있는 모습이 천진스러웠다. 인상과는 달리 말은 괄괄하면서 활발하다. 1972년부터 1983년까지 미륵리 부녀회...
-
미륵리 흙베루에서 태어나고 옆집 아가씨와 결혼하여 열심히 살아 왔고 현재도 월악산 민박과 탁탁이네 집이란 상호의 토산품점을 운영하며 말없이 자기 일을 꾸리는 이한탁 씨. 자그마한 체구에 첫 보기에도 부지런함이 배여 나온다. 그는 6·25전쟁과 산간 오지에 살았던 까닭에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후 산을 좋아 한 그는 수정을 주워 팔기도 하였다. 그러던...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에 속하는 자연마을. 예전에 경상도 선비들이 문경새재를 넘어 한양으로 갈 때 연풍, 요골, 은행정을 거쳐 문이곡(門耳谷)에 다다르면 큰 밤나무 옆 서당에서 항상 글 읽는 소리가 들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실, 문의곡(文義谷) 등으로도 불린다. 문이곡이 속해 있는 안보리는 본래 연풍군 고사리면(古沙里面)에 속하였다....
-
야생꽃이 만발하는 계곡 안에 자연관찰로가 있다. 미륵사지에서 송계계곡을 타고 1㎞ 정도 내려가면 만수휴게소가 나타난다. 휴게소 앞에 작은 다리를 만수교라고 하는데 이를 경계로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와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만수계곡 역시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천시에 속하지만 개울 좌측 부분은 미륵리에 속하고 있다. 이럴 적에 구역 나눔의 무의미함을 절실하게 느끼...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에 속하는 법정리. 미륵리라는 명칭은 충주 미륵대원지에 있는 보물 제96호인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미륵리는 일명 미륵뎅이, 미륵댕이라고도 불린다. 미륵리는 연풍군 고사리면 미륵리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괴산군 상모면에 편입되었다. 196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중원군 상모면 미륵리...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고대 고분. 수안보면 미륵리는 해발 380m 내외의 고지대이다. 미륵리 고분은 지방도 597호선에 인접해 있으며, 맞은편에는 폐교된 수안보초등학교 석문분교가 있다. 미륵리 고분은 말무덤으로 불리는 고분으로 오랫동안 온달장군의 말무덤이라고 구전되어 왔으나 정식으로 발굴 조사되지 않았다. 현재 고분은 밑지름이 20...
-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미륵부처님이 오랜 시간을 말없이 서있는 그 곳을 가는 길은 가히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라고 할 수 있다. 수안보 방면으로 가는 길을 더듬어 본다. 충주에서 남으로 3번 도로를 타고 20여㎞를 달리면 그 유명한 수안보 온천이 나타난다. 예전에는 상모면이라고 불렸지만 2007년 수안보면으로 개칭되었다. 여기서 잠시 온천을 즐겨도 좋겠다....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쇠부리 만수골에 있는 고려시대 야철지 유적. 미륵리 만수계곡은 월악산의 서쪽 사면에 형성된 곳으로 송계계곡과 합류한다. 이곳은 충주 미륵대원지에서 충주쪽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이어 있는 지점이라 중요하다. 현재 월악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는 만수계곡 일대에 살아 숨쉬는 자연을 관찰할 수 있도록 자연탐방로를 조성하였다. 만수계곡 일대...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점말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가마터. 점말이라는 이름이 붙은 지역은 수공업을 주로 하던 곳으로 무쇠점·옹기점·가마점 등이 있었던 곳으로 주목된다. 미륵리 점말은 미륵대원이라는 관방과 사찰이 어우러진 지역이기는 하나, 오랫동안 농업과 임산가공업, 그릇 제작 판매 등이 주민 살림의 근본을 이루었다. 점말에는 충청북도 기념물 제100호...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고려시대 불상의 머리. 미륵리 불두는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사지에서 하늘재로 향하는 길가에 있다. 불신은 없고 머리 부분만 있는 불두이다. 2000년 9월에 도난당했다가 2003년 봄에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왔으며, 이후 새로 만든 불신 위에 불두를 올려놓았다. 높이 138㎝, 너비 118㎝로 불두만 보았을 때도 거대한...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형성되어 있는 분지. 수안보면 미륵리는 백두대간의 산지에 둘러싸여 있고, 미륵리 일대에 있어 미륵리 소분지라 부르게 되었다. 동서 길이 1.5㎞, 남북 1㎞ 정도 되는 삼각형 모양의 소규모 산간 분지이다. 행정구역은 달천 유역에 속하는 수안보면이지만, 이곳은 남한강 본류 충주호로 유입되는 동달천 최상류에 해당된다. 동달천을 따...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충주 미륵대원지 입구에 있는 고려 전기 당간지주. 충주 미륵대원지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敬順王)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가 멸망함에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에 창건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당시 누이인 덕주공주(德周公主)는 월악산에 덕주사(德周寺)를 창건하여 남향한 암벽에 마애불을 조성하였으며, 태자는 석굴을 창건하여 불상...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점말에 있는 고려시대 야철지 유적. 수안보면은 주민들의 뜻에 따라 상모면을 개정하여 이루어진 명칭이다. 수안보면에서 가장 유적이 많은 곳은 미륵리이다. 미륵리에는 충주 미륵대원지를 비롯하여 충주 미륵리 요지, 하늘재 등 많은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다. 미륵리의 점말은 지릅재를 넘어 미륵리로 들어오는 입구에 있는 마을이다. 점말이...
-
미륵리 사람이 아니면서도 미륵리 사람 못지않게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 반현숙 씨. 2002년부터 7년째 미륵사지 한귀퉁이에 옹색하게 만든 안내소에서 자기의 갑갑함보다는 안내도의 오류가 안타깝고 찾아오는 이에게 안내책자가 줄 수 없어 미안하다며 쩔쩔매는 사람. 그녀는 오늘도 생활 한복을 곱게 입고 미륵사지를 찾는 이들에게 열심히 설명한다. 나이 쉰아홉이 어울리지 않게 얼...
-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서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만수교를 중심으로 행정구역상으로는 분명히 구분되고 있지만, 자연적으로는 월악산을 껴안는 송계계곡으로 인위적 구분은 할 수 없는 지역이다. 시의 경계는 안내되어 있어도 누구 하나 의식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냥 계곡으로 이어진 아름다운 곳일 뿐이다. 가끔 보이지도 않는 선으로 금을 그어 놓고 내 땅, 네 땅, 구분짓는 사...
-
미륵부처님을 감싸고 있는 석실 앞, 좌측 귀퉁이에 누구의 눈도 의식치 않고 의자에 조용히 앉아 바람을 쐬고 있는 보살님이 있다. 왼발을 수직으로 세우고 오른발은 왼쪽으로 구부린 형태이며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저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사각형의 평평한 돌에 돋을새김으로 새겼다. 모양으로 미루어 석굴 내의 장식 일부이거나 석실을 구성하는 넓적한 돌(판석)일 것으로 짐작된다. 바람을...
-
해발 400m의 고지로 월악산을 비롯, 박쥐봉, 월항삼봉, 포암산, 만수봉 등으로 둘러싸인 산골 분지 미륵리. 그곳에 미륵리 사람들의 꿈이 커지고 있다. 소나무 숲이 울창하여 공기가 좋고 수정 광맥을 타고 흐르는 물이 좋으니 그러한 환경 속에 자라는 식물은 최고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릅재를 넘어 미륵리가 가까워지면 검은 차광막을 씌운 비닐하우스 3동이 내리막길 옆에...
-
미륵사 절터에는 세월에 찌들어 누워버린 석재들이 눈에 띤다. 특히 절터 입구에 가지런히 모아놓은 3개의 돌덩어리들은 사람들에게 좋은 구경거리를 제공한다. 원래 석재는 당간지주였다. 당간지주란 절집에서 기도나 법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사원의 깃발을 꽂기 위하여 장대를 세우는데 이 장대를 고정하기 위하여 돌로 만든 지주를 말한다. 3m 크기의 당간지주 중간에 크고 예쁜 연...
-
겨울동안 칩거하였다가 봄볕에 끌려 산으로 향할 적에는 가능한 단거리이면서 봄 내음이 물씬 풍기는 산이 제격일 것이다. 더불어 약간의 긴장을 줄 수 있는 암벽이 울퉁불퉁한 곳이면 더욱 아기자기한 산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쥐봉, 정상 부근 동굴 속에 박쥐 떼가 살고 있어 붙여졌다고 한다. 최근 산의 남쪽 계곡 명칭을 따서 연내봉이라고도 부른다. 수안보에서 석문동을 거쳐...
-
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시에 분포하는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수단과 시설. 봉수는 가락국의 수로왕 설화에서 보이듯이 삼국시대부터 실시되었으며, 고려시대 1149년(의종 3) 조진약(曺晋若)의 건의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정비되었다. 조선시대 세종대에는 봉수대 시설, 봉군(烽軍)의 신분, 봉화 홰(炬)의 수를 다시 정하고, 봉수의 노선을 구분하여 봉수제도의 근간을 마련하였다. 1894년...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사문리와 제천시 한수면에 걸쳐 있는 산. 충청북도에서 선정한 충청북도의 명산 30곳 중의 하나로서 월악산국립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북바위산은 월악산[1,093m]에서 남쪽으로 만수봉[983m]까지 이어지는 암릉 서쪽에서 남에서 북으로 패어져 내린 송계계곡의 중간 지점에 자리를 잡고 있다. 북바위산은 지릅재[630m]에서...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대사리(大寺里)와 석문동(石門洞)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사문리(寺門里)라 하였다. ‘대사’는 큰 절을 뜻하는 순우리말인 ‘한절’의 한자 표기로, 예전에 큰 절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석문은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왜군을 막으려고 이곳에 성을 쌓고 돌로 문을 만든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사문리 대사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충주시 수안보면 사문리 대사는 원래 ‘한절’이라고 하였는데 ‘큰 절’이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안보리 선권에서 미륵리로 향하는 도로 오른쪽에 형성된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는 오래전부터 매년 음력 11월 1일이 되면 마을 남쪽 자루봉 정상에서 산신제를 올리고, 마...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사문리 석문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충주시 수안보면 사문리 석문은 사문리 대사(한절)마을에서 미륵리 쪽으로 올라오다가 지릅재 전에 형성된 마을이다. 지릅재 정상에서 남쪽 능선을 따라가면 마패봉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에 돌로 쌓은 성과 성문이 있어서 마을 이름이 ‘석문’이 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사문리 석문동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야철지 유적. 수안보면 사문리 석문마을은 수안보에서 월악산의 충주 미륵대원지로 들어가는 길의 중간 부분에 해당한다. 대안보마을에서 월악산 충주 미륵대원지로 가려면 최근 마을 숲에 아담하게 지은 미륵사를 지나게 된다. 이곳에서 대사리를 지나 다시 사문리 석문마을을 지나고 지릅재를 넘으면...
-
미륵리는 월악산 국립공원의 들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월악산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산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칠하고 백두대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대체적으로 산이 험악하고 골산(骨山)이라 밋밋함이 없다. 그만치 절경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안에는 골짜기도 많다. 송계계곡, 만수계곡, 하늘재계곡 등… 골짜기! 왠지 모르게 사람들에게 안온함을 주는 공간이 된다....
-
‘터진 데’는 다 지냈단다. 미륵리의 동제(洞祭)는 사방 미륵리로 들어오는 길목마다 다 지냈다고 했다. 밤, 대추, 밤, 백설기, 그리고 돼지머리를 준비해서 제관들이 마을 곳곳에서 지냈다고 했다. 마골점 봉수대에서 우선 지낸 다음 암말에서는 미륵사지 앞 200여m 지점의 서낭당과 당시 마을에서 약 200여m 하늘재 방향으로 올라가서 나무에 ‘검줄(금줄)’을 치고 지냈고, 점말에서는...
-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는 ‘깡촌’이다. 그야말로 손바닥만한 하늘만 빤히 보이는 분지다. 월악산이 있고 포암산, 부봉, 월항삼봉, 북바위산 등으로 둘러 싸여 있다.경지가 풍부한 곳은 더더욱 아니다. 경로당에 모인 분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결론은 ‘먹을 게 없어서 뜯어먹던’ 것이 산나물이라고 한다. 각자 나물들이 갖고 있는 풍취나 향기가 좋은지 그리고 어떠한 것이 얼마나 몸...
-
현 수안보면 미륵리 노인회장을 맡고 계신 양재옥 씨, 그는 과거와 현재의 미륵리 교육 환경에 대하여 별로 서운한 것 없다고 하였다. 그저 그 시절에는 으레껏 그려러니 하고 있었다. 그의 말을 빌리면 미륵리에서 자란 아이들이 6·25전쟁 전에는 산길 30리를 걸어야 하는 수안보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었다. 어린 아이들은 거리가 너무 멀어서 학교를 가다말다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어른들도...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사문리 석문마을에서 발원하여 수회리를 지나, 중산리에서 흐르는 오주천에 합류되는 하천. 수안보면 사문리 석문마을에서 발원하므로 석문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길이 약 15㎞의 소하천이며, 소백산지 본줄기 북서부를 개석하며 깊은 골짜기를 이루고 있다. 최상류의 미륵리에는 충주 미륵대원지와 미륵리 소분지와 경계를 이루는 지름재 부근에서 발원하...
-
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충주시의 남동단에 위치한 수안보면은 고구려식의 상모(上芼)라는 지역 명을 쓰다가 2005년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진 수안보라는 명칭으로 개편하였다. 수안보온천으로 유명한 고장이며, 월악산국립공원과 사조스키장, 충주호와 중원 문화를 살필 수 있는 문화재 등이 주변에 산재한 천혜의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지형적으로 소백산맥의...
-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수안보면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충청북도 충주시를 구성하고 있는 1개 읍[주덕읍], 12개 면[살미면·수안보면·대소원면·신니면·노은면·앙성면·중앙탑면·금가면·동량면·산척면·엄정면·소태면], 12개 행정동[성내/충인동·교현/안림동·교현 2동·용산동·지현동·문화동·호암/직동·달천동·봉방동·칠금/금릉동·연수동·목행/용탄동] 중 수안보면의 행정...
-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식생, 분포하고 있는 식물의 종류. 충주 시가지는 북서로는 남한강 및 달천 등의 하천과 경계를 이루고 있고 동으로는 광대한 충주호와 접하고 있으며 그 안쪽에 마즈막재를 사이에 두고 남산[636m], 계명산[774m] 등이 병풍처럼 시가지를 둘러싸고 있어 동서저고의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충주시의 경계와 인접하고 있는 지역에는 신선봉[967m...
-
어렵게 뵈었다. 미륵세계사 주지스님 방안에서 차 한잔의 향기 속에 서로 마주 앉았을 때, 너무 젊어서 놀랐다. 하심(下心)으로 자꾸 스님 자신을 낮추어 ‘얼굴을 내밀 존재’가 아니라는 이유로 동영상은 물론 사진도 찍을 수 없었다. ‘기왕에 여기까지 어렵게 왔으니 차나 한잔 하고 가시라’ 하였다. 그래도 무언가 흔적은 남겨야겠기에 MP3를 녹음 상태로 해서 슬그머니 앞에 놓았더니 빙...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사문리와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에 걸쳐 있는 산. 수안보온천에서 동남쪽으로 5㎞ 지점에 우뚝 솟아 있으며, 기암절벽과 암괴들이 수려한 경관을 이루는 산이다. 미륵리의 포암산[961.7m], 북쪽의 월악산[1094m]과 함께 백악기에 암석을 뚫고 들어간 흑운모화강암 지대로, 석산(石山)으로 발달하는 전형적인 화강암 산지 경관을 보인다. 예...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충주시 수안보면 안보리는 수안보에서 박석고개를 넘어 옛날 영남대로 양쪽에 형성된 마을이다. 미륵리로 가는 도로를 접어들면 마당숲이 나오는데 그 안에 서낭당이 있다. 이 서낭당에서 음력 7월 보름날 서낭제를 올려 안보리에 속한 대안보, 뇌곡, 복계, 선권의 수호를 기원하였...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수회리에 있는 들. 기러기가 날면서 올뱅이(다슬기)를 잡아먹는 형국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남쪽으로는 오산이, 남동쪽으로는 첩푸산이 높이 솟아 있고, 이 사이를 미륵리에서 발원한 석문천이 북쪽 방향으로 흘러 수회리에서 석문천과 중산천이 합수되어 달천으로 합류되고 있다. 마을 주변 마당바위 아래의 석문천에는 안비들보가 있어 이곳 안비들에 농...
-
1930년생이신 김도진 씨. 미륵리에서 태어나 미륵리에서 늙어 가시는 분이다. 김도진 씨는 요즘 사람들의 나물먹는 행태나 나물을 뜯어 판다는 개념을 이해 못하고 있는 분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이라고 했을 때의 ‘예전’이란 언제를 말하는 것인지 대뜸 구분하기 어렵지만 대체로 1960년대 이전으로 파악하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훨씬 그 이전이나 혹 그 이후의 이야기가 될 수도...
-
지릅재 를 힘들게 올라서서 심호흡 한번 한 후, 나무로 둘러싸인 고갯길을 천천히 내려오면 높은 산 밑에 웅크리고 있는 마을이 보인다. 아늑하다. 참 고요하다. 특히 겨울의 미륵리 입구는 적막하다. 마치 돌을 던지면 잔잔한 물결이 퍼질 것 같은 고요함이다. 그 입구 좌측의 조그만 뒷동산 밑으로 ‘중원미륵리도요지’라는 간판이 있는 건물이 있다. 이것은 또 다른 차원...
-
옛날부터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자장가삼아 듣던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이야기, 그 이야기의 한 축이 수안보면 미륵리 미륵사지 한켠에 자리하고 있다.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로 북주(北周)[삼국사기에는 後周라 하였다]의 무제가 침입 시에 선봉장으로 활약한 온달은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 여세를 몰아 계립령과 죽령 서쪽의 옛 고구려 영토를 회복하겠다는 결의를 하고 남하하였지만...
-
‘월악산’은 항상 등산을 좋아하는 이들의 목표가 된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던가? 깊은 골짜기가 갖은 애교를 부리며 산 오는 이를 반긴다. 행정구역으로는 제천시에 자리 잡고 있는 월악산과 송계계곡이다. 언뜻 미륵리와 관계없을 듯 하지만 실제로 계곡은 흐르는 개울을 경계로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와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로 나누어진다. 동은 제천시, 서는 충주시. 그러나 계곡을...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구장 이교성의 위령비. 미륵리 병자(丙子) 수해 당시 미륵리 구장이었던 이교성(李敎性)이 주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사망하자 그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하여 미륵리 주민들이 세웠다고 전한다. 다만 병자년(丙子年)에 대하여는 의견이 분분하여 1876년(고종 13) 설과 1936년 설이 있...
-
민박이란 말을 들을 때에는 후덕한 인심이 풍기는 뉘앙스가 있다. 단순히 저가의 숙박 제공이 아닌 그 지역의 고유문화와 풍습, 인심을 맛보는 곳이란 선입견도 이젠 옛말일 듯하다. 이상정 씨가 부인 오혜련 씨와 함께 운영하는 송림민박도 처음 건축하였을 때는 새집이어서 많은(?) 손님들이 찾는 곳이었으나 지금은 건물의 노후 뿐 아니라 새로운 서양식 펜션이라는 주택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남으...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수회리, 온천리, 고운리, 중산리에 걸쳐 있는 산. 적보산은 일명 직포산, 적포산(積抱山), 첩보산, 첩푸산, 구봉산 등으로도 부르고 있다. 산 중턱에 약 100m 간격으로 아홉 개의 소봉이 등고선을 따라 솟아 있어 구봉산(九峰山)이라고도 하는데 구봉 아래에는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활만인지지(活萬人之地)의 명당이 있다고 하는데 현재...
-
이한탁 씨, 그는 배움에 대한 미련은 별로 없어 보인다. 6·25 후 수안보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석 달을 다녔지만, 너무 거리가 멀어 다니다 말았다고 한다. 하기야 산길 왕복 60리 길을 다닌다는 것은 사실 어린아이에게 무리였을 것이다. 그 뒤에 미륵사지의 집 한 채에서 가마니 깔고 글 아는 동네 사람이 가르쳐 주었고 다시 수안보초등학교 김창진 선생님이 ‘정식으로 와서’...
-
봉수(烽燧)는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가장 빨리 변방의 소식을 중앙으로 전달하던 통신 수단이었다. 30여 리를 기준으로 서로 잘 보이는 산봉우리에 봉수대를 쌓고 횃불과 연기를 올리는 중요한 시설이었다. 봉수제도가 처음 시작된 것은 삼국시대부터 실시되었지만 고려시대에 와서 체계적으로 정비되었고 조선 세종 때에 봉수대 시설과 봉군의 신분, 봉수의 노선을 구분하여 조선 봉수의 근...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 사문리에서 미륵리로 넘어가는 고개. 1891년에 편찬된 『연풍현읍지(延豊縣邑誌)』에서는 마골산[640m]의 마골점 봉수(麻骨岾 烽燧)[일명 마골봉수]는 연풍현 북쪽 40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지릅재 남쪽에 마골산 봉수가 있어 마골점(麻骨岾)이라고도 불렸고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 계립령(鷄立嶺)의 별칭으로 지릅재라는 명칭이...
-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나타나는 땅의 기복과 형태. 충주는 동부 태백산지, 남동부 소백산지, 서부 차령산지로 둘러싸인 내륙의 산간 분지이다. 이곳은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자리에 형성된 침식 분지로서, 남한강이 좁은 골짜기로 이루어진 상류 유역을 흐르다가 처음으로 하곡이 넓어지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 구체적인 지점이 바로 충주댐 부근이다. 달천 또한 속리산에서 보...
-
“아, 나 못해. 할 말두 읎구 …” 토산품 공동판매장 할매집을 찾아 갔을 때 처음 보인 반응이다. 머리를 깨끗하게 뒤로 벗어 넘겨서인지 깔끔하면서도 인상이 강하다. 짐작했던 성격대로다. 누구 앞에서도 당당할 자세이다. 허나 조금 얘기를 나누다 보니 참 여리다. 마음이 곱다. 억지로 감추려다 보니 강해 보일 뿐이었다. 최재희 씨는 본래 안동이 본가란다. 자세한 얘기는 피...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점말에 있는 조선 후기에서 조선 말기에 이르는 백자가마터. 가마는 토기나 자기·기와·항아리 등을 굽는 시설이다. 초기에는 노천에서 구웠기 때문에 굽는 온도가 낮아 그릇이 무르고 거칠며 붉은 색을 띠었다. 그후 점차 기술이 발전하여 야산의 야트막한 경사면을 이용하여 여러 칸의 굴 모양으로 만든 오름칸 가마[등요(登窯)]가 등장하였다. 오름칸...
-
양연학 씨는 토산품 판매장 내 탁탁이네 집 주인이면서 미륵리 부녀회장 직을 맡아 보고 있다. 미륵리 토박이로 이한탁 씨와 옆집에서 성장해서 그냥 결혼했다고 한다. 칡동동주와 도토리묵이 이 판매장에서 잘 팔리는가 하는 질문에 대표 음식이란다. 토산품 판매장 내에서 도토리묵과 칡동동주를 만들어 파는 가게가 5집 정도 된다고 한다. 비법을 물어 보았다. 비법이랄 것...
-
한겨울, 어설픈 장승이 지키고 있는 토산품점을 기웃거렸을 때 손님을 맞이하는 것은 손바닥만한 아크릴판뿐이었다. 누가 훔쳐갈세라 가게 앞의 들마루는 녹색 두꺼운 비닐로 덮어 놓고 꽁꽁 단단히도 묶었다. 가게 문도 전부 닫혀있다. 내다보는 사람도 없다. 상호도 간신히 유리창에 조그맣게 써 놓았다. 조용하다. 아니 스산하기까지 하다. 이제 봄이 오고, 학생들의 방학이 있는 여름이면 제법...
-
계립령(鷄立嶺), 겨릅산, 대원령(大院嶺), 한훤령(寒喧嶺) 등으로 불리는 하늘재는 영남과 기호를 연결하는 최초의 교통로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 권2 신라본기에 의하면 제8대 아달라(阿達羅)이사금 3년(156)에 개통시킨 교통로임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통로인 죽령(竹嶺)보다 2년 앞서 개통된 길이다. 이 길을 발판으로 한강 유역 진출이 가능하였고 고구려의 남하도...
-
미륵리의 절터에는 2개의 석등이 있다. 시대가 앞선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석등은 8각 석등으로 미륵부처님과 5층석탑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균형이 잡힌 우수한 석등으로 평가된다. 또 하나는 4각 석등으로 5층석탑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본래 자리가 아닌 것으로 보여 지며 다소 투박한 감이 있고 8각 석등보다 연대가 내려가는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비록 제작 시...
-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하늘만 빼꼼이 열린 그 곳에는 돌부처가 산다. 6조각의 몸은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묻어 거무스름하지만, 하얀 얼굴은 슬그머니 웃음 지으며 그렇게 살고 있다. 머리에는 큰 갓을 쓴, 인체의 비례도 맞지 않는, 부처님을 묘사한 수법도 정밀하지 못한, 그래도 웃음 지으며 천년을 서있는 부처님이 산다. 왔다가는 숱한 사람들이 부처님을 향해 입방아를 찧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