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58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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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食生活 |
영어공식명칭 | Dietary life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태선 |
[정의]
대구광역시에서 일대에서 행하여지는 식품과 음식에 관련된 모든 활동.
[개설]
식생활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섭취하는 식품과 음식을 포함하여 이것을 생산, 유통, 조리, 가공하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경상도의 중심에 위치한 대구광역시는 비슬산과 팔공산, 대덕산이 동, 남, 북 세 방향으로 둘러 싸고 있고 서쪽만이 트여 평지를 이루는 분지 지형을 하고 있어서, 비가 적고 건조하며, 여름은 무덥고 겨울은 추워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가 심하다. 국가하천인 낙동강과 금호강이 대구 외곽을 흐르고 있으며, 금호강의 지류인 신천이 대구 시가지 중앙을 흘러 풍부한 수량이 주위에 기름진 농토를 만들었다. 이런 자연조건을 반영하여 대구 지역에는 넉넉한 농산물과 풍부한 민물고기를 이용한 음식들이 발달하였다.
대구 지역의 식생활은 지역정서와 지리적 특성을 반영한다. 음식들은 멋을 내거나 사치스럽지 않고 투박하며 대체로 맵고 간이 센 편이라는 평을 받고 있지만 오랜 역사의 도시로 다양한 형태의 식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구 식생활의 변천]
대구 지역 식생활의 시작은 선사시대인 구석기부터 시작되었다. 구석기시대 유적으로 추정되는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 유적에서 2만 년에서 1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좀돌날과 좀돌날몸돌, 긁개, 세서기 등이 출토됨으로써 구석기시대부터 대구 지역에 사람이 살았음을 추정할 수 있게 한다. 구석기시대에는 식물 채집과 짐승 사냥을 통하여 식재료를 공급하였으며 동굴이나 바위 그늘에 막집을 지어 떠도는 생활을 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신석기시대의 대구 지역의 생활상은 상동 고인돌 유적을 시작으로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변동 취락유적, 대천동 유적, 대림동 유적 등지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 파편, 숯돌, 어망추, 화살촉 등의 유물과 유물이 출토된 위치로 미루어보아 신석기시대 대구 지역의 사람들은 하천 가까이에 집을 짓고 하천에서 물고기, 조개 등을 잡아 생활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수렵과 초기 농경을 통하여 공급된 식재료를 이용한 식생활이 이루어졌다고 추정된다.
민무늬토기와 땅을 파는 도구인 굴지구, 수확용 도구인 반달칼과 돌낫, 어로 도구인 그물추 등이 출토되고, 금호강, 신천 등을 중심으로 고인돌 분포도가 높은 것으로 보아 청동기시대의 대구 지역에서는 농경과 수렵, 어로, 채집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식재료를 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정착 생활이 이루어져 농경의 비중이 높아져 가는 특성을 볼 수 있다.
삼한시대의 대구 지역에서는 지금의 달성토성 주변에 달구벌이라 불리는 읍락 국가가 형성되었다. 달성토성 유적지에서 패각류, 뼈화살촉, 복숭아 씨앗, 각종 동물 뼈 등이 출토되어 수렵과 어로, 채집, 농경생활을 통하여 식재료가 공급되었으며, 복숭아가 재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대구 지역은 농업 중심 도시였다. 비옥한 평야지대를 중심으로 쌀과 보리 등 곡류의 생산량이 증대되었고, 특히 조선 후기에는 감자, 고구마, 고추 등 외래 농작물의 전래로 식재료가 다양하여져 식생활에 큰 변화가 있었다. 유교의 영향으로 규범과 격식을 중시하여 제례를 비롯한 의례를 중심으로 식생활의 변화가 있었으며, 각 가문의 종갓집을 중심으로 한 종가 음식들은 현재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전국에 약재를 공급하는 대구 약령시장의 다양한 약재들과 1677년 시행된 대동법으로 시장의 역할이 커지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둔 서문시장으로 인하여 식재료 구입이 쉬워지면서 대구 지역의 식생활은 다양해졌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대구 지역에서는 경제적 궁핍이 심화되어 식량 사정이 매우 어려웠다.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하여 구황작물과 산과 들에서 채취한 나물, 나무 껍질, 나무 열매 등을 이용하여 끼니를 마련하였는데, 국시기, 쑥버무리, 수제비, 칼국수, 호박죽, 시래기죽, 콩잎김치, 가죽장아찌, 산초장아찌 등은 대표적인 구황 음식이다.
해외동포의 귀환과 피난민들의 유입 등으로 다양한 지역의 식문화가 대구 지역의 식문화와 혼합되기 시작하였고, 1960년대 정부의 혼분식장려운동과 급격한 산업의 발달, 1970년대 초 통일벼 재배 성공은 식생활의 큰 변화를 가져 오게 되었다. 혼분식장려운동으로 인하여 납작만두, 누른국수, 다양한 분식 등은 대구를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산업의 발달로 농업 중심의 도시가 산업도시로 변모하면서 외식문화와 회식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하여 뭉티기, 막창, 곱창, 동인동찜갈비, 돼지국밥, 대구육개장 등의 음식이 발달하게 되었으며, 통일벼 재배로 풍부하여진 쌀은 주식 이외에도 쑥떡, 만경떡 등 여러 가지 식재료로 사용되었다.
[2000년 이후 대구 식생활]
2000년 이후의 대구 지역의 식생활에는 많은 변화가 있다. 교통의 발달로 타 도시와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외부 음식과 자연스럽게 희석되어 정체성을 찾기가 힘들어졌으며, 식생활의 간편화로 밥보다 빵을 선호하는 식습관과 간편식, 가공식품, 반조리 식품, 배달 식품이 발달하였고, 한식 중심의 식단에서 양식, 중식, 일식, 퓨전 음식 등으로 다양하여졌다. 또 맞벌이가정의 증가로 외식문화가 발달하였으며, 다양한 정보로 인하여 미각, 시각, 후각 등을 만족시키는 즐기는 식사로 식생활이 변화되고 있다.
[대구를 대표하는 음식과 대표적인 식재료 공급처]
대구광역시를 대표하는 음식으로는 대구10미를 들 수 있다. 대구10미는 대구광역시에서 관광상품 육성을 위하여 지역의 상품성, 향토성을 고려하여 2006년 선정한 10가지 음식이다. 대구육개장, 막창구이, 뭉티기, 동인동찜갈비, 논메기매운탕, 복어불고기, 누른국수, 무침회, 야끼우동, 납작만두가 대구10미인데, 모두 근현대에 등장한 향토음식이다.
산업도시인 대구 지역의 식재료는 대부분 시장이나 마트를 통하여 공급된다. 대구 지역의 대표적인 시장으로는 서문시장, 칠성시장, 농산물도매시장, 교동시장, 염매시장, 약전골목 등이 있다.
서문시장은 대구광역시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시장이다. 건어물과 해산물 등의 식재료가 풍부하다. 누른국수, 찹쌀수제비, 칼제비국수 등 다양한 먹거리가 있다. 야시장도 운영하고 있다.
칠성시장은 대구광역시에서 두 번째로 큰 시장이다. 해산물과 채소, 과일 등의 식재료가 풍부하다. 돼지골목이 따로 있어 족발, 돼지머리, 순대 등 다양한 종류의 돼지고기를 구할 수 있고 야시장도 운영 중이다.
대구 농산물도매시장은 대구광역시 북구 매천동에 위치한 시장으로 과일과 채소가 풍부하다. 대구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교동시장은 수입 식재료를 주로 취급하며 납작만두와 양념어묵 등의 먹거리로 유명하다.
염매시장은 ‘떡전골목’으로 불리는 규모가 작은 시장이지만 폐백 음식과 다양한 떡을 판매하고 있으며, 옛 약령시 자리에 위치한 약전골목은 다양한 한약재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