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0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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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豊里 |
영어공식명칭 | Geumpu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금풍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문종안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금풍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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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풍리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금풍리 | |
성격 | 법정리 |
면적 | 2.4㎢ |
가구수 | 90가구 |
인구[남/여] | 166명[남자 81명|여자 85명]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금풍리(金豊里)에는 자연마을로 명금(明今)마을과 신풍(新豊)마을이 있다. 명금과 신풍의 이름을 따서 금풍리(金豊里)라고 하였다. 명금마을은 마을을 감싸고 있는 금성산이 거문고 형태이며, 바로 옆 옥녀봉이 옥녀가 거문고를 타고 있는 형세라 하여 명금(鳴琴)이라 하였다가 일제강점기에 명금(明今)으로 바뀌었다. 신풍마을은 원래 큰맷골, 작은맷골이라고 불렀다가 조선 말에 땅이 새롭게 형성되어 사람이 옮겨 오면서 풍년이 들 땅이라 하여 신풍(新豊)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본래 해남군 화이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명금마을과 신풍마을의 일부를 병합하여 해남군 화산면 금풍리가 개설되었다. 현재 명금마을과 신풍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명금마을에는 1623년 창녕성씨 성준익(成峻翼)이 화산면 죽도(竹島)에서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전한다. 성준익은 인조반정 후 당쟁에 몰려 공주(公州)에서 살다가 죽도에 내려온 후 다시 명금마을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신풍마을은 1586년경에 경주이씨 이운암(李雲岩)이 나주에서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이운암은 산세가 좋은 명당을 찾아다니던 중 금성산 산세가 두륜산맥과 연결되어 물이 맑고 농사짓기 편한 지금의 신풍마을 자리로 옮겨 왔다고 한다.
[자연환경]
금풍리에는 서쪽으로 바람산[122m]이 있고, 남쪽으로 금성산[186m]이 솟아 있다. 북쪽에는 삼산면 두륜산에서 발원한 삼산천이 흐르고 있어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금풍리 위쪽은 원래 갯벌이었는데 고천암 간척사업으로 인해 간척되어 현재 농지로 사용하고 있다.
[현황]
금풍리 북쪽으로 삼산천 건너 해남읍 내사리가 있고, 동쪽으로는 해창리, 남쪽으로 연정리, 서쪽으로 연곡리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2.4㎢이며, 명금리, 신풍리의 2개 행정리에 90가구, 166명[남자 81명, 여자 8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주 소득원은 쌀이며, 특작물은 고구마와 배추, 고추가 생산되고 있다. 주변 갯벌에서 새우, 게, 낙지 등을 잡고 있다. 명금리에는 창녕성씨가 집성하여 창녕성씨 사당 금성사(琴城祠)[금성원(琴成院)]에서 창녕성씨 6현을 제향하였다. 금성원은 해남의 향유들과 창녕성씨 문중 중심으로 1922년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