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0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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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可座里 |
영어공식명칭 | Gajwa-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가좌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문종안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가좌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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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좌리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가좌리 | |
성격 | 법정리 |
면적 | 5㎢ |
가구수 | 101가구 |
인구[남/여] | 211명[남자 97명|여자 114명]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가좌(可座)마을은 기와를 굽는 터였다고 하여 ‘와등’, ‘왓등’, ‘와초’라고 불리었다가 가좌로 명칭이 변하였다.
[형성 및 변천]
본래 해남군 화이면 지역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지동리, 입암리와 무학리, 율동리, 관동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화산면 가좌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가좌마을, 무학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가좌마을은 박씨와 김씨가 입향하여 터를 마련하였고, 임씨가 살았다는 임텃골이 있다. 약 600여 전에 경주김씨와 한양조씨가 마을의 지세를 보고 화산면 월호리에서 정착하였다고 한다. 이후 본 마을인 입암의 지형이 용꼬리 형태여서 용꼬리가 비틀어지게 되면 가산이 탕진된다 하여 용머리 형태인 지금의 마을로 옮겨 왔다고 한다. 무학마을은 원주이씨가 입향조이고 1600년경 원주이씨 이하복과 광산김씨가 입향하였다고 한다.
[자연환경]
가좌리는 간척으로 농토가 생기기 전에는 어업이 중심이었던 마을이었다. 현재 지형을 보면 서쪽은 바다를 접하고 있고, 간척으로 인하여 크고 작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다. 마을의 중심에는 간척으로 넓은 농토가 펼쳐져 있어 쌀이 생산되고 있고, 가좌리회관 동쪽으로 저수지가 있어 농업용수로 사용되고 있다. 무학마을은 진도와 관두산이 인접하여 있다.
[현황]
가좌리는 북쪽으로 율동리, 동쪽으로 월호리, 남쪽으로 관동리와 부길리와 접하고 있고, 서쪽은 바다와 맞닿아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5㎢이며, 가좌리, 무학리 2개 행정리에 101가구, 211명[남자 97명, 여자 114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중앙에 국도 제77호선이 지나고 있다. 주 소득원은 쌀이며, 특작물로 고구마와 마늘이 재배되고 있다. 무학마을에서는 굴 양식과 꼬막 양식을 하고 있다. 1985년 1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시행한 고천암 간척지 조성사업 전에는 갯벌에서 조개류를 채취하고, 바다에서는 조기를 잡았으나 간척 후에는 경제가 농업으로 변하였다. 어업이 중심이었을 때는 정월 보름에 만선을 기원하는 풍어제를 지냈다고 한다.
문화유적으로는 장수황씨 열녀 비각(長水黃氏烈女碑閣)이 있다. 시대는 1944년으로서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문기둥 초석이 남아 있다. 황 부인은 장수황씨 황인배(黃仁培)의 자녀로 광산김씨(光山金氏) 김세동(金世東)의 처(妻)이다. 부인은 24세에 남편을 잃었고, 어린 두 아들과 딸이 있었는데, 재가의 권유를 거절하고 남매를 키웠다고 전해진다. 1944년 비를 세웠고, 비각은 1946년에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