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0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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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關東里 |
영어공식명칭 | Gwand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관동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문종안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관동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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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리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관동리 | |
성격 | 법정리 |
면적 | 4.7㎢ |
가구수 | 153가구 |
인구[남/여] | 284명[남자 143명|여자 141명]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관두산에 있는 봉수 모양이 사람이 상투를 쓰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하여 관머리산이라고 부르다가 마을이 산의 동쪽에 있다 하여 관동(館東)이라 불렀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한자 표기가 관동(關東)으로 바뀌었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성조리, 무학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화산면 관동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관동마을, 명설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관동마을은 바닷가 마을로, 무역항이 있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제주도를 비롯, 중국 남경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관두항에서 떠났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서 관두항은 해남현 남쪽 40리[약 15.70㎞]에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관두항이 개항된 시기에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동복오씨(同福吳氏)와 정씨가 처음 입향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1680년 경에 김해김씨 김충실(金忠實)이 들어왔다고 전한다. 명성마을은 관동마을에서 분리되어 새롭게 형성된 마을이다.
[자연환경]
관동리는 바다를 인접한 마을로서 마을 서남쪽에 관두산(館頭山)[177m]이 있고 동쪽으로 월호리와 경계를 짓는 봉황산[120m]이 있다. 남북으로 산이 우뚝 솟아있는 지형이며, 중앙에는 넓은 농토가 펼쳐져 있다.
[현황]
관동리(關東里)는 북으로 가좌리, 동으로 월호리, 남으로 평호리, 서쪽은 바다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4.7㎢이며, 관동리와 명성리의 2개 행정리에 153가구, 284명[남자 143명, 여자 141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주 소득원은 쌀이며, 특산물은 고구마이다.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다. 농업용수로는 화산면사무소 북쪽에 위치한 연화제 저수지를 사용하고 있다.
매년 음력 1월 2일 자시에 마을 뒷산에 위치하고 있는 산신 제각에서 산신제(山神祭)를 지내며, 마을의 평안과 풍년 그리고 건강을 기원한다. 장승 2기가 마을 서쪽과 동쪽 입구에 있으며, 관두산 밑자락에는 봉우사가 있다. 관두산 봉수지(館頭山烽燧址)가 관동마을 성좌동 해발 121m에 있는데, 관두산 봉수는 세종 대에 초축(初築)한 것으로서, 조선시대부터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설치한 주요 군사적 거점지였다. 2015년 6월 29일 해남군의 향토유적 제29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