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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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山里[花山面] |
영어공식명칭 | Songsan-ri Hwasan-myeon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송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문종안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송산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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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리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송산리 | |
성격 | 법정리 |
면적 | 4.5㎢ |
가구수 | 85가구 |
인구[남/여] | 총 139명[남자 68명|여자 71명]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소나무가 많은 산이 있다 하여 송산리(松山里)[화산면]라고 하였다.
[형성 및 변천]
본래 해남군 화일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삼치리, 과목리와 봉황리, 주천리, 갑길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화산면 송산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송산마을, 탄동마을, 시목마을, 주천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탄동마을은 1422년 원주이씨가 최초 입향하였다고 한다. 송산마을은 예전에는 솔매라고 불리었으며, 봉학리라고도 불렸다.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봉학리로 나온다. 송산마을은 1400년 무렵 장수황씨(長水黃氏)가 경기도 파주에서 장흥을 거쳐 이주하여 터를 잡았다고 한다. 1610년경에는 언양김씨(彦陽金氏)가 입주하였다고 하나 현재 언양김씨는 없다. 시목마을은 감나무가 많다 하여 감나무골, 감낭골이라 하다가 시목(柿木)이 되었다. 1840년경 강진군 군동리에서 해남윤씨(海南尹氏)가 최초 입향하였다고 한다. 주천마을은 마을의 물이 좋아 술을 빚으면 술맛이 좋다 하여 주천(酒泉)이라 하였다고 한다. 1846년경 송산마을에 살던 장수황씨가 처음 이주하였다고 한다.
[자연환경]
송산리[화산면]는 전체적인 지형으로 볼 때 산이 마을을 둘러싼 형태이다. 북으로 선은산[281m]이 있고, 중앙에는 송산저수지가 있다. 서쪽에는 넓은 농지가 있다. 남쪽에 서재골이 있다. 그리고 선은산에서 발원하여 송산저수지, 송산교 쪽으로 흐르는 송산천이 있다.
[현황]
송산리[화산면]는 북쪽으로 부길리, 동쪽으로 현산면 고현리, 남쪽으로 안호리, 서쪽으로 관동리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4.5㎢이며, 탄동리, 송산리, 시목리, 주천리의 4개 행정리에 85가구, 139명[남자 68명, 여자 7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며, 주 소득원은 쌀이다. 특작물로 고구마, 고추, 깨, 콩이 생산되며, 특산물로 무화과가 있다. 마을 서쪽에 국도 제77호선이 북에서 남으로 지나가고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송산리 효자 박필양지각(孝子朴弼養之閣)이 있다. 밀양박씨인 박필양은 병든 아버지가 겨울에 생선을 원하자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았으며, 별세한 후 상중에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분수를 지켰다. 이 내용이 조정에 알려져 1890년에 천거되었으며, 1892년 명정을 받아 건립되었다.
또한, 주천마을에는 추원당(追遠堂)이 있다. 송산리 주천마을 뒤편 산 중턱에 위치한 밀양박씨의 재실이다. 두륜산의 산자락인 선은산 아래로 세거(世居)한 밀양박씨 선현을 제향하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한 것이다. 추원당은 2층에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팔각지붕 건물이다. 상량문에 “大正 八年 乙未(대정 8년 을미)”라고 기록되어 있어 1919년에 건립된 것을 알 수 있다. 재실 안에는 현판과 ‘추원당기(追遠堂記)’ 편액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