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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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湖里 |
영어공식명칭 | Pyeongho-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평호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문종안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평호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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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호리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평호리 | |
성격 | 법정리 |
면적 | 4.2㎢ |
가구수 | 218가구 |
인구[남/여] | 513명[남자 248명|여자 265명]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평호리(平湖里)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자연마을들이 통합되어 해남군 화산면 평호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사포(沙浦)마을, 평발(平發)마을, 구성(九星)마을, 송평(松平)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사포마을은 1680년경 밀양박씨들이 진도에서 나와 살기 좋은 터라고 하여 정착하였고 한다. 사포마을은 살포리, 색금이라고 불리었고 모래와 포구가 있어 사포(沙浦)라고 하였다고 한다. 평발마을은 1536년경 나주임씨가 최초로 입향하였다고 한다. 평발(平發)마을은 당시 입향조가 결혼을 하지 않는 상태여서 평할 평(平) 자와 필 발(發) 자를 썼다고 전한다. 구성마을은 처음에 산자락에 사람이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송평마을은 조선 철종 때 전주이씨 이건철(李建喆)이 강진에서 들어와 마을을 형성하고 동구버덩이에 소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동그란 버덩 안에 마을이 생겼다 하여 동구버덩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후 순조 때에 전주이씨 이상만(李象萬)이 들어오고, 김해김씨가 진도에서 삼마(三馬)를 거쳐 분가하였다고 한다.
[자연환경]
평호리는 동쪽을 제외하면 3면이 바다인 마을이다. 평호리는 간척된 땅을 제외하고는 크고 작은 산지로 이루어졌다. 3면이 바다로 이루어져서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병행하고 있다.
[현황]
평호리는 동쪽으로 석호리와 안호리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4.2㎢이고, 사포리, 평발리, 구성리, 송평리의 4개 행정리에 218가구, 513명[남자 248명, 여자 265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국도 제77호선이 평호리 송평마을에서 끝이 난다. 주 소득원 중 농업은 쌀이고, 특작물로 고구마, 배추, 마늘 등을 생산하고 있다. 어업은 주로 김 양식을 하고 있다. 김은 인근 김 가공 공장에서 마른김으로 가공되어 판매되고 있다. 갯벌에서는 꼬막과 낙지, 주꾸미, 바지락을 채취하고 있다. 사포마을에 삼호보건진료소가 있다. 평호리 서쪽 해안가 송평해변은 해변드라이브코스가 조성되어 있고, 송평해수욕장이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평호리 평발마을에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遺物散包地)가 있다. 평발마을 서쪽 구릉 경사면에 있으며, 패각과 마제석부류 9점을 밭을 경작하던 주민 이춘수가 발견하였다. 유물은 현재 목포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평호리 구성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15일에 용왕제(龍王祭)를 지낸다. 해질녘 마을 앞 선창가에서 바다에서의 무사고와 소득증대를 기원하며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