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8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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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信仰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집필자 | 나경수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마을 주민들이 주관하여 마을의 신을 섬기는 신앙.
[개설]
마을 제사는 당제 또는 당산제라고 한다. 호남 일부에서 당제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화순군에서는 당산제라는 말을 주로 사용한다. 당산제를 지내는 시기는 매년 반복되는 세시이거나 특별히 날을 받는 때이다. 대부분의 마을 제사가 대보름을 전후로 정월에 이루어진다.
화순군에서 주로 모시는 마을신은 나무 형태이며 입석과 장승 등도 있다. 마을신은 천부지모(天父地母) 개념에 따라 당산 할아버지와 당산 할머니로 구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을 제사에 직접 관여하는 제관은 제사를 거행하기 전부터 선출되며 각 역할에 따라 세분화되어 있다. 엄격한 자격 조건을 따져 생기 복덕하고 유고 없는 사람을 시키려는 공통의 규칙이 있다. 마을 제사는 대부분이 유교식이며 전통적인 한문식 축문을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제물을 구입하기 위한 제비 마련은 마을 동답 수입금, 갹출, 마을 공동 자금 등의 방법을 쓴다.
마을 제사와 관련된 영험담은 당산 신이 도둑이나 전쟁 같은 재해에서 도움을 준 사례가 가장 많고 마을의 악재를 피하기 위해 마을 제사를 재개한 경우도 많다.
[제사의 이름과 제사 모시는 날짜]
흔히 호남 지역에서는 마을 단위로 모시는 동제를 당산제라고 부른다. 당산제라는 명칭은 경상남도 일부 지역까지 이르는 넓은 분포를 보인다. 반면에 호남 일부 지역에서는 당산제라는 말 대신에 당제라는 명칭을 보다 일반적으로 쓰기도 한다. 대개 도서 해안 지역이 그러하다. 당산제나 당제의 정확한 뜻은 아직 밝혀진 바 없다. 또한 마을에 따라서는 모시는 신격에 맞춰 보다 세분된 명칭이 사용되는 예도 있다. 예를 들면 철륭제, 산신제, 샘제, 천제, 장승제 등으로 부르는 마을도 보인다. 화순군에서는 당산제라는 말이 압도적으로 많이 쓰인다. 『화순군 마을굿』이 발간된 2007년을 기준으로 하여, 전승이 중단된 마을을 포함하여 89개의 마을을 대상으로 동제의 명칭을 조사한 바, 무려 91%에 이르는 81개 마을이 당산제를 동제의 통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로 볼 때 화순군은 호남 지역의 전형적인 전통 문화를 전승시켜온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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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신앙은 매년 반복적으로 수행되는 일종의 세시 풍속으로서, 제사를 지내는 날짜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대별된다. 하나는 매년 특정한 날이 제일로 고정되어 있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날받이를 하는 경우이다. 후자보다는 전자의 예가 많은 편이며, 특히 호남 지역에서 가장 일반적인 마을 신앙 날짜는 음력 정월 대보름이다. 화순군 역시 사정은 동일하다. 신화적 상상력과 자연 종교적 믿음 체계에 의거하여 최초의 만월은 가장 생력이 클 것으로 간주되며, 이러한 믿음의 근거 하에 대보름이 제사 날짜로 정해진 것으로 보인다. 대보름은 아니지만 대보름 전 정월 초에 동제를 모시는 마을도 있다. 정월을 벗어나 동제를 모시는 마을은 극히 희소한 편이다. 동제가 예축제적인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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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신앙이 연중행사이기는 하지만 정월 들어 마을에 좋지 못한 일이 생기면 다음 달로 미루기도 한다. 간혹 2월 1일에 당산제를 모시는 것이 이와 같은 경우이다. 그 달을 벗어나면 부정에 대해서 자연 정화가 되는 것으로 믿기 때문인데 이런 현상은 우리의 민간 신앙에 널리 퍼져 있는 일종의 상피 민속으로서, 신성 충돌 회피 원리(神聖衝突回避原理)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화순군 화순읍 세량 마을처럼 원래는 정월 대보름에 모시던 동제를 아예 2월 1일로 날짜를 옮겨 고정한 예도 있다.
[제사를 모시는 장소와 제사를 모시는 신]
제사를 모시는 장소는 마을 안 또는 마을과 인접한 곳에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도서 지역이나 해안 지역에서는 당집을 따로 지어 제사를 모시는 곳도 있다. 하지만 화순군의 현지 조사 결과 그러한 사례는 찾아지지 않았다.
화순군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당산신의 형태는 수목형이다. 주로 귀목나무가 많으며, 마을 숲의 구실을 하는 마을도 있다. 또 다른 유형으로는 입석을 당산 신으로 모시는 예이다. 입석은 대개 자연석을 세운 형태이다. 호남 지역의 경우 마을 수호신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입석을 만드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가장 일반적인 것으로 하나의 자연석을 세로로 세워 만드는 방식이다. 둘째는 돌을 원추형으로 쌓아두고 그 위에 다소 큰 돌을 역시 세로로 세우는 형태이다. 셋째는 자연석을 세우지만 약간의 가공을 해서 사람의 얼굴 형상을 아주 소박하게 새기는 방식이다. 이 같은 것을 마을에서 미륵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장승의 기법을 차용한 것으로 장승의 기능과 상통하는 예로 보인다.
두 번째의 예인 돌을 쌓아 입석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경우는 대개 마을에서 탑이라고 부르는 곳이 많다. 크게 보면 입석과 같은 기능을 하지만 형태적으로 보자면 탑석이라는 명칭이 어울릴 것이다. 이러한 탑석은 전라남도에서는 지리산 주변에 많다. 구례군, 곡성군, 순천시 등에 일반적으로 많이 보이며, 화순군에서도 그러한 예를 찾을 수 있다. 화순군 동복면 신율리의 경우 이러한 탑에 동제를 모시기 때문에 동제 자체를 ‘탑제’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해안 도서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또 신체로 믿어지는 것 중에 짐대[솟대], 장승, 바위, 우물 등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인물신은 찾아지지 않는다. 동복면 가수리 상가 마을에서는 매년 짐대를 새로 세우고 동제를 모시고 있는데 이를 짐대제라고 부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호남 지역에서 많은 마을들이 동제를 모시면서 짐대를 세웠던 것으로 조사되고 있지만, 현재는 그 수가 현격히 줄어들고 있다.
화순군 역시 마을신의 신격 구성은 매우 다양하여 일괄적으로 그 형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체로 가족원의 구성을 보이는 것이 두드러진다. 예의 당산 할아버지와 당산 할머니는 가장 일반적이지만 아들과 딸, 심지어는 며느리와 사위가 신격으로 믿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이며 주가 되는 당산신의 형태는 당산 할아버지와 당산 할머니이다. 이는 천부지모(天父地母)라는 신격 구성의 양식으로 보이며 부부, 남녀, 음양이라는 쌍분적 신관이 반영된 것이다. 특이한 형태로서는 동복면 천변리 천변 마을에서 매년 지내는 추모제 형태의 마을 제사가 있다. 마을에 살았던 할아버지 한 분과 할머니 한 분이 각각 마을에 토지를 기증하고 돌아가셨다. 이 마을에서는 본래 당산 나무에 동제를 모셔왔지만, 위 두 분을 추모하는 뜻으로 동제의 이름도 추모제로 고치고 나란히 비석을 세워 지금까지 제사를 두 신격에게 모셔오고 있다.
한편 최근 들어 제신의 수가 줄어들고 있는 양상도 눈에 띤다. 그러나 여기에도 하나의 무의식적 원칙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점점 없어지고 나서 최후 1위의 신격만 모실 경우에는 지금까지 조사된 사례로 보면 예외 없이 할머니 당산만 남은 것이다. 화순군의 마을 신앙 역시 농경문화를 기저로 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여신, 즉 지모신이 가지고 있는 생산력이 마지막 보루로 지켜지는 예로 보겠다. 또한 간편화된 예를 찾을 수도 있다.
[제사를 모시는 사람들]
제관은 마을 제사에 직접 관여하는 사람이다. 마을 신앙은 거의 제물을 갖추어 모시며 장만하는 과정이 매우 중시된다. 일반적으로 제사에 필요한 사람을 그 역할별로 나누면 제수를 준비하는 사람, 절을 하는 헌관, 축문을 낭독하는 축관, 절차를 돕는 집사나 유사 등이 있다. 또 뒷심부름을 맡을 사람을 따로 뽑기도 한다. 마을 신앙은 전형적으로 남성 중심으로 치러진다. 제물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일을 제외하고 여성들이 마을 제사에 참여하는 사례는 발견되지 않는다.
제관들 중에서도 제물을 장만하는 사람을 선정할 때 가장 엄격한 자격 요건을 따진다. 다른 역할을 맡은 사람들의 경우도 일반적으로 부정이 타지 않은 깨끗한 사람을 뽑지만, 특히 제물을 만드는 사람의 경우는 일진에 따른 생기 복덕을 보는 예가 많으며, 개인은 물론 집안에 유고가 있는 사람은 제외된다. 유고란 아직 상복을 입고 있는 상인인 경우, 집안에 산고가 든 경우, 정월 들어 개고기를 먹은 경우, 기우기간 동안 부인이나 가족 중에서 달거리가 있는 경우 등을 말한다. 또 어린 아이나 과년한 처녀가 있는 가정도 제외된다. 또 준비 과정에서도 가장 엄격한 금기 사항을 지켜야 한다. 소변을 보면 손발을 씻고, 대변을 보면 찬물에 목욕을 해야 한다. 그래서 식사를 줄이거나 아예 금식을 하는 사람도 있다. 또 부부 생활을 해서도 안 되고, 관습적으로 부정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만나서도 안 되며, 궂은 곳에 출입을 해서도 안 되고, 좋지 못한 말을 해서도 안 된다.
과거에는 그해 제관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마을 총회에서 결정되었다. 복을 받거나 공을 들이기 위해 과거에는 제관을 자청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지만 요즈음은 그런 예를 찾기 어렵다. 최근에는 마을 사람 거의가 제관이 되는 일을 기피하기 때문에 이장이나 마을의 지도자들이 제관을 겸하는 예가 많고, 또 마을 부녀 회원들이 마을 회관에서 제물을 준비하여 마을 신앙을 모시는 마을도 늘어가고 있다. 근래 들어 마을 신앙을 지내는 데 있어 주민들이 가장 어려운 일로 꼽는 것이 바로 제관의 선정이다. 마을 신앙을 모시고 나서 마을이 평온하면 그대로 넘어가지만 그렇지 않고 혹시 좋지 못한 일이 있는 경우 제관들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어 더욱 참여를 기피하게 된다.
화순군의 동제가 보여주는 특징 중 하나는 동제를 지내는 거의 모든 마을이 독축을 하며 그 축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새로 지은 한글식이 아니라 예전부터 내려온 한문으로 된 축문이며, 지금도 대부분의 마을에서 그것을 그대로 사용한다. 따라서 독축을 위해서 축관을 뽑는다. 물론 호남 지역 대부분의 마을이 유교식 제차에 따라 동제를 모시고 있기에 독축을 하는 곳이 많지만, 화순군은 유독 거의 모든 마을에서 전통적인 한문식 축문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전통적인 유교식의 보수성이 강하게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사 비용과 장만하는 제물]
제비는 마을 사람 모두를 마을 신앙과 연결 짓는 하나의 관행적 양식이다. 마을 신앙 행위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제비를 낸다는 것 자체가 마을신을 섬기는 뜻과 책임, 그리고 소속감이 실리는 일이다. 즉, 제비를 통해 마을 사람들 전체와 마을신이 연결되는 것이다.
제비를 마련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마을의 제토답(祭土畓) 등 마을 재산의 수입금으로 충당하는 경우, 갹출하는 방식, 그리고 요즈음 많이 하는 마을 공동 자금에서 할당하는 방식이다. 갹출을 할 때는 각각의 세대가 단위가 되는 호구전 또는 각 개인이 단위가 되는 인구전으로 걷는 방식이 있다. 근래에는 외지에 나가 사는 출향인 중에서 마을 신앙의 비용 일부를 부담하거나 제수를 직접 기부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이럴 경우 마을 신앙을 모시면서 특별히 그런 사람을 위해 소지를 따로 올려주는 것으로 답한다. 또 근래에는 행정 관청에서 전통 문화 사업 지원 차원에서 소정의 비용을 마을에 제공하기도 한다. 한편, 마을에 교회가 많이 들어서면서 제비로 인한 마을 사람들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곳도 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마을민이면서도 제사 비용의 분담을 거부하기 때문에 알력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마을 신앙과 관련된 요소 중에서 가장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예는 바로 제물이라 할 것이다. 마을 신앙의 준비는 구체적으로 제주를 앉히는 날로부터 시작한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제주를 만들어 썼던 시절에는 마을 신앙을 모시기 며칠 전에 제주를 먼저 앉히는데, 이를 위해 마을에서는 깨끗한 우물을 당샘으로 지정하여 금줄을 치고, 그 물을 길어 제주를 앉힌다. 다른 일반 가정에서는 마을 신앙이 끝날 동안 당샘을 사용하지 못한다.
마을 신앙을 위한 경비 중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제수 비용이다. 제물을 장만하면서 제상에 올릴 정도만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음복을 할 수 있도록 가능하면 넉넉하게 음식을 장만한다. 물론 제상에 올릴 제수와 음복 때 마을 사람들이 먹을 음식은 엄격히 구분해 둔다. 예전에 경제적 형편이 어려웠을 때는 마을 제사를 모시고 나서 준비한 음식을 마을 사람들이 모여 나누어 먹는 것이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마을 신앙 관련 영험담]
마을 신앙과 관련된 구비 전승으로 가장 흔한 것은 역시 영험담이다. 화순읍 세량리 세량 마을에는 도둑이 들어와 소를 끌고 밤새 도주를 하였으나 날이 새서 보니 당산 주위를 밤새 돌고 있어서 소를 놓아둔 채 도망을 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는 마을 신앙을 모시는 마을이면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또한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입석이나 장승과 관련된 이야기들도 전한다.
화순군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당산제의 영험담은 전쟁과 관련된 것이다. 특히 당산제를 잘 모셨던 마을들은 6·25 전쟁 때에도 큰 피해를 보지 않은 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그 덕은 모두 당산제를 잘 모셨기 때문이라도 한다. 이서면 야사리 마을에는 800여 년 된 은행나무가 당산 신으로 모셔지고 있는데, 나라에 큰일이 닥칠 때면 늘 나무가 울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6·25 전쟁이 일어날 때 당산 나무가 슬피 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또 다른 가장 흔한 영험담 중의 하나는 마을의 어느 사람이 자식이 없어 화주를 자원하여 몇 년 모시고 난 후 마을신이 점지해주어 자식을 보았다는 이야기이다. 마을 신앙을 폐지했다가 다시 모시게 되었다는 마을도 적지 않다. 이러한 지역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흔한 영험담은 마을 누군가의 꿈에 마을신이 현몽하여 제사를 모시라 했기 때문에 끊겼던 당산제를 다시 지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이다. 또 마을에 잦은 사고를 막아보고자 중지되었던 당산제를 다시 모시기 시작한 마을도 있다.
한편 특이하게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천운장 마을과 같이 근래에 동제를 새로 모시기 시작한 곳이 있는데, 25년 전부터 굴암제(屈巖祭)를 모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연유는 마을 가까이에 있는 광산에서 광부로 일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사고가 자주 일어났기 때문이다. 마을의 특정한 곳 바위 앞에서 제사를 모시면서부터는 사고가 많이 나지 않아 모두 동제의 덕택으로 여기고 있다.
마을 신앙과 관련된 영험담 중에는 마을 신앙에 관한 지식이나 금기 등이 구비 전승의 형태로 전해지는 예들도 많다. 예를 들어 초상집이나 산고가 든 집에 다녀온 사람이 동제에 참여했다가 죽었다는 구비 전승은 가장 일반적이며, 제물을 장만하던 사람이 부부 관계를 맺는 바람에 서로 몸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많다. 제물의 맛을 보았다가 입이 비뚤어졌다거나 또는 동제를 잘못 모셔서 그해 마을 사람들이 유독 많이 다치거나 죽은 일이 일어났다거나 하는 이야기 등 경험적 구체성을 띤 내용이 이야기 형식으로 많이 전한다.
동제의 신앙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서 동제에서 모시는 신체가 예조를 보이는 예도 많다. 예를 들면 당산 나무가 봄에 잎을 피우는 모습을 보고 풍흉을 점치는 것은 동제를 모시는 거의 모든 마을들에서 들을 수 있는 예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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