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1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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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家神信仰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집필자 | 김덕묵 |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 가정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성주, 삼신 등 집안의 신을 받들고 위하는 신앙.
[개설]
가신 신앙은 집안의 신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고사를 지내고 가족들의 안녕을 위해 빌고 받드는 민간 신앙이다. 가신 신앙의 제의는 중부 지역에서는 주로 주부가 맡아서 한다. 교회나 절에 가지 않고 집안에서 가족들을 위해 하는 가족의 자치적인 신앙으로, 제도적인 종교에 비하면 복잡하지 않으며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행할 수 있다. 고사를 끝내고 나면 넉넉하게 떡을 하여 이웃에 돌린다.
[인천 미추홀구의 가신 신앙]
오늘날 인천광역시가 도시화되면서 가신 신앙이 많이 소멸되어 조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의 경우에도 과거에는 다들 고사를 지내며 가신을 하였으나 마을이 도시화되면서부터는 많이 사라졌다. 물론 지금도 더러 고사를 지내며 가신을 모시는 집이 있지만, 그전처럼 떡을 많이 먹지 않게 되자 고사떡을 돌리는 풍속이 흔치 않아 이웃에서 고사를 지내도 서로 알지를 못한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서 태어나고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는 이상분에 의하면, 30여 년 전 시어머니가 작고하기 전까지는 고사를 지내며 가신을 모셨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73세에 돌아가셨는데 당시 가을 고사를 지냈다. 문학산 주변에서는 문학산 산신이신 안관 할아버지와 안관 할머니를 크게 위했기 때문에 고사를 지낼 때는 먼저 마당에 떡시루를 놓고 안관 할아버지와 안관 할머니를 위한 비손을 하고, 이어서 마루로 가서 성주를 위하며 그 밖에도 다락, 부뚜막 등지에 떡을 놓았다. 당시에도 터주가리를 없었다고 한다. 이상분은 시어머니가 작고한 후 가신을 위한 고사를 지내지 않고 강화도 전등사를 다녔으나 며느리가 들어온 후로는 그의 영향으로 교회를 다닌다고 한다.
경기도 수원 태생으로 인천에서 60년을 산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주민 김숙자에 의하면 과거 10월에 날을 잡아 고사를 지냈는데, 고사를 지낼 때는 보통 그냥 주부가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만신을 불러와서 지내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인천 미추홀구 가신 신앙의 약화 원인]
오늘날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지역의 가신 신앙은 일부 노년층에 의해서만 유지되고 있다. 가신 신앙의 약화는 기독교인의 증가와 불교의 영향을 들 수 있다. 주부들이 교회와 절에 다니면서 무속을 기반으로 한 가신 신앙은 더 이상 신앙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밖에 주택 신축, 농경 기반의 약화 등으로 인해 제례나 고사와 같은 가정에서의 종교적 의례가 축소된 것도 가신 신앙이 약화된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