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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관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1624
한자 安官祭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집필자 김덕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제사
의례시기/일시 정월 보름 안에 적당한 날을 선정
신당/신체 석조 건물/목조상
의례 장소 안관당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산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산 봉수대 밑에 있던 인천 부사 김민선(金敏善)의 사당에서 지내던 제례.

[개설]

예전에 문학산 봉수대 밑에 돌로 벽을 쌓은 안관당(安官堂)이라는 사당이 있었다. 이 안관당에는 나무로 깎아 새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목조상을 모시고 있었다. 이 할아버지·할머니의 목조상을 마을 사람들은 안관 할아버지·안관 할머니로 불렀고, 안관 할아버지를 문학산의 산신으로 믿어 매년 그 앞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이를 ‘안관제(安官祭)’라 부른다.

안관제 는 정월 보름 안에 지내는데, 제관은 깨끗하고 부정이 없는 사람을 마을 회의에서 뽑았으며 음식을 할 사람도 한 사람 지정해 놓아 제관 집에서 여러 명이 도와 음식을 만들었다.

안관당 밑에는 기우제 터도 있었는데 과거 비가 오지 않을 때는 동네의 남자들이 목욕재계를 하고 의복을 정제하고 마을에서 음식을 차려서 이곳에 가서 제를 지냈다. 기우제를 지낼 때는 며칠씩 단식을 하고 소나무 가지로 물을 끼얹는 주술 행위도 하였다. 또 동네 사람들이 아이를 낳고자 사당 앞에서 비손[두 손을 비비면서 신에게 병이 낫거나 소원을 이루게 해 달라고 비는 일]을 하기도 하였다.

한편 안관당 주변에는 우물이 있었으며 당 밑에 무당이 간이 초가집을 짓고 살면서 이곳을 관리하였다. 이 무당은 1980년 무렵 고령으로 작고하였다.

[연원 및 변천]

안관당은 임진왜란 때 옛 성을 수리하여 병사를 거느리고 왜병과 싸워 공을 세운 인천 부사 김민선의 혼령을 봉안한 사당이다. 임진왜란병자호란이 끝나고 몇십 년이 지난 후 인천에 사는 노인들의 꿈에 김민선이 나타나 역정을 내는 모습이 보였다. 당시 사또도 같은 꿈을 꾸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김민선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문학산에 사당을 세워 김민선 내외의 영정을 모셨다. 그리고 관리인으로 무당을 두고 춘추로 제사를 지냈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주민 김무웅에 의하면 과거에 안관당 밑에 무당이 거주하다가 고령으로 작고하였다고 한다. 또 천주교가 전파되면서 사람들이 천주교를 믿게 되고, 안관제를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안관당이 헐리고 말았다.

[신당/신체의 형태]

안관당은 돌로 벽을 쌓은 당집이었으며, 당 안에 나무로 깎아 새긴 할아버지·할머니의 목조상을 신체(神體)로 모시고 있었다.

[절차]

안관제 를 하기 위해서 동네에서 쌀과 먹을 것을 거두고, 제주(祭主)는 목욕재계를 하고 깨끗한 상태에서 음식을 한다. 제주는 밖에 나가지도 않고 부부 관계도 하지 않으며 피를 보아서는 안 된다. 또 초상집에 가서도 안 되며, 살생을 하거나 봐서도 안 된다. 제사 지내는 당일 삭힌 술로 제를 지내는데, 제의 절차는 일반적인 유교 제례이다.

[현황]

현재 안관당은 터만 남아 있다.

[참고문헌]
  • 『문학산의 역사와 문화 유적』 (인천광역시 남구, 2002)
  • 인터뷰(인천광역시 남구 문학동 주민 김무웅, 남, 1941년생)
  • 인터뷰(인천광역시 남구 문학동 주민 이상분, 여, 1925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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