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5004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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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鬱陵島開拓時船格糧米雜物容入假量成冊 |
영어의미역 | Documents of Ulleung Island Reclamation Buget in 1883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경상북도 울릉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1883년(고종 20) 4월 강원감영에서 울릉도 개척단 파견 당시, 개척에 소요될 인원 및 물자에 대한 예상명세서.
[개설]
울릉도는 조선 초 태종·세종 양대에 걸친 공도화(空島化) 정책으로 오랫동안 정부에 의해 방치되었다. 이로 인해 일본 어민들의 침탈 대상이 되다가‚ 조선 말기인 고종 연간에는 러시아까지 관련되어 국제적 분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이 무렵 조선에서는 울릉도의 영유권을 확보하고 영구화하기 위해‚ 종래의 공도화 정책을 버리고 개척단을 파견하게 되었다.
[편찬/발간경위]
울릉도 개척에 필요한 소요 물자 및 인원을 기록하고 추후 중앙 정부에 보고할 목적으로 강원감영에서 편찬하여 1883년(고종 20) 4월에 간행하였다.
[형태]
판본은 필사본이며 1책[2장]이다. 가로는 24.8㎝이고, 세로는 31.3㎝이며, 표제는 미상이다. 권수에는 "광서구년사월 일(光緖九年四月 日)"이라고 실려 있으며, 권말에 관찰사의 수결로 "강원도관찰사…원주목사남(江原道觀察使…原州牧使南)"이라 적혀 있다. 인기(印記)로 강원도관찰사의 도장이 찍혀 있다.
[구성/내용]
1883년(고종 20)에 울릉도 개척단을 파견할 당시‚ 개척에 소요될 인원 및 물자에 대해 기록한 예상 명세서이다. 개척단 인원은 30여 명[사격 40명 제외]에 이르며 일상의 생필품 이외에도 농경을 위한 대추와 밤[棗栗]·콩과 팥[豆太] 등의 종자와 자웅 1쌍의 소[耕牛]까지 망라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개척단의 규모와 소요 생필품 및 농사에 필요한 종자 등을 알 수 있으며, 초기 울릉 주민들의 주요 농업 생산물 등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