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울릉문화대전 > 울릉의 마을 이야기 > 태하마을 > 태하를 지키고 있는 이런사람, 저런사람 > 수산업에 매달려온 박해수
-
“할아버지가 울산에서 들어왔는데, 울산가면, 박상진 의사 알지요. 그 양반이 우리하고 촌수가 안 멀어요. 한 10몇 촌 되는데. 그 양반이 일본 순사한테 붙들려가 고초를 당하고 사형당한 후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된 기라. 우리 할아버지가 거 있어보니 일본 놈 때문에 도저히 못 살겠는 기라. 그러이, 집안에, 울산에 송촌병원 하던 그 양반 병원하고 우리 집안하고 몇 년간만 울산을 비웠...
-
“내가 이 마을에 온 게 60년 되었어요. 태생지는 북면 송곳산 물 솟아오르는 곳에 할아버지께서 사셨고, 거서 나가, 5살 먹어가 울산 나갔다가… 울산서 15살 먹고 울릉도 들어와가 정착해가 살고 있는데……. 여가 원래 울릉군 소재지라요. 그리고 각석문……. 처음에는 고려시대 때 사람이 살다가, 그러다가 이조시대 때 왜놈들이 하도 난잡하게 해가 공도정책을 써가 섬을 비웠다가, 고종...
-
“내가 처음 15살 먹고 와가 이 동네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 중에 속했어요. 부친은 그때 만주가고 없고. 모친하고 3남매 4명이 들어왔는데. 어디가가 일할 데가 있는교. 어리다고 일을 시켜주는교. 품도 못 팔지. 집이 있는 기도(것도), 토지가 있는 기도 아니고. 이래가 와가지고 나무 곁방에서 살고. 내가 장가 갈 때도 나무(다른 사람) 곁방에서 장가갔어요. 그래그래하다가 16살...
-
“저도 배를 처음에 3명 타는 0.5톤 되는 하나 하다가, 그 다음에 5톤 되는 배를 하다가, 그것도 해보니 한이 안 차가 그 다음에 30톤짜리를 지었다고. 작업을 해보니 울릉도에는 정박할 때가 없는 거라. 지금은 항구가 잘 되어 있지만, 그때는 드갈 자리가 없는 기라. 그래가 그 배를 타고 포항가가 작업을 하다가. 30톤 그거 가지고도 울릉도 왔다갔다 하다 보니, 파도에 막……....
-
“배 사업 하면서 하두 신경 쓰느라고 96년도에 위가 빵구 나버렸어. 늘 위에 신경성인지. 커피 한 잔 먹다가 쓰러졌는데, 천공이 되어 버렸어. 그래가, 부산 고신의료원 거 가니, 아 이거는 암이다. 천공이 되어버리니. 암 진단 조직검사하기 전에 수술을 먼저 해야 되니, 이건 암이다 이래가 다 짤라 내버리고 조금 붙여놓았어요. 그러니 밥을 먹을 수 있는교. 조금만 먹으면 올리고 했...
-
“바닷가에는 아들 안 데려가요. 내가 수산업을 해도 바닷가에 데려다 놓으면 또 수산업을 할까봐서 전부 바다도 없는 대구에 갔다 놨어요. 애들 다섯을 다 거 델구 나갔어요.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졸업하고, 5학년, 1~2학년 때 데리고 나갔어요. 아들 다 대구 데리고 나가가 나무 집에 세 얻어가 사니 돈이 무진장 들어가는 기라. 대학 들어가니 이거는 배 안 했으면 공부도 못 시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