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대마도사정관으로 활동한 일본인. 1693년(숙종 19) 안용복 등의 40여 명의 어부가 울릉도 해역에서 돗토리현의 어부들과 시비가 벌어졌고, 안용복 등은 일본의 오오야가[大谷家] 어부들에 의해 오키시마[隱岐島]로 납치되어 갔다. 이때 안용복은 그곳에서 울릉도와 자산도(子山島)[독도]가 조선의 땅임을 들어 구금 납치의 부당성을 도주(島主)에게 따졌다. 안용복의 항의를 받게...
조선 후기 대마도도주를 역임한 일본인. 대마도도주인 형 종의륜(宗義倫)이 죽자, 동생 종의진(宗義眞)이 대마도주가 되었으며, 종의진의 아들 종의방(宗義方)은 대를 이어 대마도도주가 되었다. 역대 대마도도주들은 조선과 일본 간의 외교를 담당하였는데, 종의진의 전대(前代) 도주인 종의륜은 죽도(竹島)[울릉도]의 영유권을 두고 조선에 강경한 외교정책을 견지하였다. 그러나 에도의 도쿠가와...
조선 전기의 대마도도주. 아들 종정성(宗貞盛)을 두었다. 1407년(태종 7)에 대마도수호(對馬島守護) 종정무(宗貞茂)가 다이라도오젠[平道全]을 파견하여 토물(土物)을 바치고, 왜구에게 잡혀갔던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또한 무릉도(武陵島)[현 울릉도]에 여러 촌락(村落)을 거느리고 가서 옮겨 살기를 청하였으나 태종으로부터 거절당하였다....
조선 말기 울릉도 삼림채벌권을 일본에게 준다는 한일의정서를 체결한 일본의 외교관. 울릉도에 대한 일본인의 침탈이 가중되던 시기, 대한제국이 울릉도에 거주하거나 허락 없이 어로행위를 한 일본인을 퇴거시킨 것에 대해 하야시 곤스케는 교묘하고 억지스러운 논리를 펴 비켜갔으며, 후에 일본인 순사의 울릉도 주재를 관철시키기까지 하였다. 하야시 곤스케는 1860년 3월 2일 일본에서 태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