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7017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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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새 연평 소리」,「나이나 타령」,「너나 나나 타령」,「너와 나와 타령」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
집필자 | 남동걸 |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및 인천 도서 지방 등에서 어촌 부녀자들이 주로 불렀던 여성 민요.
[개설]
「나나니 타령」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및 인천 도서 지방 등에서 어촌 부녀자들이 물장구[물을 담은 질자배기에 박 바가지를 엎어 놓고 손이나 나뭇가지 등을 이용하여 타악기처럼 때리는 것]로 반주하면서 불렀던 노래로 「새 연평 소리」, 「나이나 타령」, 「너나 나나 타령」, 「너와 나와 타령」 등으로도 불린다.
[채록/수집 상황]
이선주의 『한국의 민요』에 최보애 외 30여 명의 노래를 모아 정리한 노랫말이 수록되어 있으며, 남구 학산 문화원[현 미추홀 학산 문화원]에서 발간한 『구술 자서전, 남구 사람들의 삶과 일』에도 차영녀가 부른 노랫말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인천광역시사』 6권에도 가사의 일부가 수록되어 있다.
[구성 및 형식]
「나나니 타령」은 규칙적인 3소박 8박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메기고 받는 선후창 형식으로 불린다. 메기는 소리 4장단, 받는 소리 4장단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며, 물장구로 반주하며 노래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노랫말은 4자에서 6자가 한 장단에 붙는데 메기는 소리의 가사는 3·3조의 율격이 대부분이다. 가사는 3소박 8박자 가운데 앞의 네 박자에 붙고, 나머지 네 박자는 가사 없이 구음으로 이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황해도를 비롯한 서도 민요에 많이 사용되는 특징이나 황해도 지방보다는 박자가 빠르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나나니 타령」은 노랫말에 구애받지 않고 그때그때의 상황을 가사로 인용하기 때문에 노랫말의 수는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길다. 그러므로 창자에 따라 그 순서가 서로 뒤바뀌어 불리기도 하는 특징이 있다.
[내용]
(받는 소리)
나나나나 사니로다(산이로다)/아니 놀고 뭘 할소냐
(메기는 소리)
새연평 꼭대기 실 안개만 돌고요/내 문턱엔 정든 님만 돈다//새끼나 백발은 쓸 곳이 많고/인간의 백발은 쓸 곳이 없네//뒷강에 뜬 배는 낚시질 배요/앞강에 뜬 배는 나를 시를(실을) 배라//나를 실러 올 적엔 반돛을 달고/나를 실고 갈 적엔 꼬작끝 달아라//시집살이 못하면 단가살이 할망정/술 담배 아니 먹고는 나는 못살겠네//뒷동산의 할미꽃은 늙으나 젊으나/꼬부라만 졌네//바다의 물결은 때맞춰 일고/정든 님 생각은 때 없이 나네//아주까리 동백아 열리지 마라/이팔청춘 다 늙는다//우리네 서방은 명태잡이 갔는데/바람아 광풍아 석달 열흘만 불어라//천길 만길 뚝 떨어져 살아도/유정님 떨어져는 못살겠네//으스름 달밤에 머리 수건 쓴 년은/도둑년 아니면 화냥년이로구나//밥 먹기 싫은 건 두었다가 먹지만/임 보기 싫은 건 하루 일시도 보기 싫어//앞산 밭에다 깨를 한 줌 뿌렸더니/깬죽깬죽 시뉘잡년//시미잡년이 뒤지면/아랫목 차지는 내차지요//시아비 잡놈이 꺼꾸러지면/광 열쇠 몽땅 내차지//잘살고 못사는 건 내분 복이요/정들이고 못사는 건 화류계 여자//우리네 서방은 재간이 좋아서/게딱지 타고서 낚시질을 갔네//앞산 밭에다 외콩을 뿌렸더니/외틀비틀 시미잡년//뱃사람의 님은 못새겨 둘 거지/정들만하면 닻감아 매네//새연평 산은 칙산이요/연평산은 춤산이로다//장산곶 마루에 실안개 펄펄 돌고/우리집 문턱에 내 아들만 돈다//우리 부모님 뫼에는 홍두깨꽃이 피었는지/우리 삼동서 떼난봉 났구나//잘사는 시집살이 왜 못살게 하고/뒷감당 못할 걸 왜 시작했나//소대섭 색시들은 잔디풀 캐기가 일쑤구/육거첨 색시들은 배불림 하기가 예사라//강화의 색시는 시침떼기가 예사구/인천의 색시들은 삐죽거리기 일수라//가막개 색시는 얼마나 쩍쩍하던지/밥주걱 쥐고서 민어금치가 예사라//물먹고 싶은 건 참을 수나 있지/정든 님 생각은 끊일 날이 없네//일구나 월심에 그리던 임을/어느 시절에 다시 만나 하소연을 할까//네가 나만큼 사랑을 한다면/가시덩쿨 속에라도 날 찾아오게//사랑에 겨워서 등을 슬쩍 밀었더니/가고영절에 무소식이네//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싶어 지나/나를 두고 가시는 임은 가고싶어 가나//나비 없는 동산에 꽃은 피어 뭘하나/임 없는 방안에 불은 밝혀 뭘하나//심난심난 구심난한데/친정 오라버님 왜왔다 가나//오동나무 열매는 옹톨옹톨 하구요/처녀의 가슴은 몽실몽실 하네//답답한 안개는 꼈다가도 벗건만/답답한 내 속은 언제나 벗으랴//우수나 경칩에 대동강 풀리고/정든 님 말씀에 내 가슴이 풀리네//장독 밑에다 더덕을 한 줌 심었더니/더덕더덕 내 동생아//열라는 콩밭은 아니 열고/아주까리 동백은 왜 열리나//살림살이 할려니 바가지 한 짝이 없구요/도망질 할려니 가자는 일이 없구나//임이 죽고 내가 살면 열녀가 되느냐/고달파라 인생살이 한두 많으네//쓸쓸한 동풍에 궂은 비만 내리고/시하나 연풍에 임만나 노세//하느게(하늬) 사랑은 솔방울 사랑인지/정들만 하면 떨어지고 마네//산에나 올라가 옥을 캐니/이름이 좋아서 산옥이다//처녀마다 시집을 간다면/기생될 이가 어디 있느냐//들창 밖에 내리는 비는/가신 님들의 눈물이다//사랑사랑 하길래 무엇이 사랑인가 했더니/한 품에 들고 보니 요것이 사랑이더라//병신의 종자가 또 따로 있나/한팔 한팔 절면 병신의 종자지//이팔청춘 소년들아 백발보고 웃지 마라/나도 어제는 청춘이었는데 오늘은 백발이 되었네//아주까리 동백아 열지 마라/시골 큰애기 난봉난다//내 머리 석자 내 댕기 석자/이바우 저바우 다 뜯기네//살림살이는 될지 말지 한데/호박에 박넝쿨 울 넘어 드네//서산 낙조는 내일 아침 다시 뜨건만/한 번 가신 서방님은 언제 다시 오시려나//세월이 가겠으면 저 혼자 가지/우리 부모는 왜 다 데려가나//저 건너 계집이 얼마나 좋길래/날 두고 저렇게 바삐 가나//영출나오네 영출나오네/해산 밑으로 영출나오네//나는 몰랐네 나는 몰랐네/우리 둘이가 요렇게 좋을 줄 나는 몰랐네//네가 먼저 살자고 옆구리 쿡쿡 찔렀지/내가 먼저 살자고 옆구리 쿡쿡 찔렀나//날 데려 가려마 날 데려 가려무나/한양낭군아 날 데려 가려마//님이란 건 탄탄 남인데/밥 먹다 졸아도 정든 님 생각//으스름 달밤에 삿갓을 쓴 놈은/도적놈이 아니면 유부녀 볼 놈이로다//연평도 물이 마르면 말랐지/내 주머니 돈이 마르랴//나물캐러 간다더니 총각낭군 무덤에/삼오제만 지내네//새벽동자를 하라면 바가지 쌈만 붙이고/물 길러 가라면 엉덩이춤만 춘다//새연평 꼭대기 실안개 펄펄 돌고/우리네 문턱엔 정든 님만 돈다//오이밭의 웬수는 고슴도치가 웬수구/우리네 웬수는 백년이 웬수로다//백년을 살자고 백년초를 심었더니/백년초가 못되고 이별초가 되었네//잘 살라고 할 적에는 보리동냥을 갔는지/이 모양 이 꼴이 되었네//
[현황]
「나나니 타령」은 대부분의 갯벌이 없어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는 현재 거의 불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인천의 도서 지방에서는 지금도 부녀자들이 놀이나 잔칫집 같은 곳에서 놀이로 부르기도 한다. 「나나니 타령」은 「군음」과 더불어 1988년 12월 24일 인천광역시 지방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나나니 타령」은 고부 사이, 시누이와 올케, 모녀간, 동서간의 갈등 등 가족과의 갈등은 물론이거니와 이웃 부녀자들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는 노래로 알려져 있다. 「나나니 타령」을 부르면 시어머니, 며느리, 시누이, 딸 등의 구분 없이 여성으로의 일체감으로 묶이게 되기에 그동안 쌓였던 감정이 풀리게 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