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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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비경을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가장 싼값으로 훑어 볼 수 있는 교통수단은 버스이다. 단체로 여행할 경우에는 전세버스를 빌리는 게 좋고, 개인이나 소수로 여행할 경우에는 우산버스를 이용하거나, 여행사의 당일코스상품(1인당 1만 5천원)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울릉도 우산버스는 관광 성수기 때에는 도동에서 천부까지 매일 10회 왕복하고, 천부에서 나리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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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상 태하리는 태하 1리와 2리로 구분되어 있지만, 세 지역의 자연촌락 즉, 큰황토구미(태하동), 작은황토구미(학포), 서달영으로 분산되어 있다. 큰황토구미는 본래 황토가 많이 나는 곳이라 해서 큰황토구미로, 소황토구미는 황토가 많이 나지만 동리가 작다고 해서 불러진 지명으로 학포라 하기도 한다. 서달영은 태하동에서 700m 정도 깊은 골짜기에 ‘서달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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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에 속하는 마을. 골계[谷溪]란 비파산의 양쪽 산허리에 돌이 깨어져 골이 나 있는 것을 보고 ‘돌이 깨어져 골져 있는 곳’이라 하여, ‘골계’라 불렀다 한다. 그런데 골계만은 비파산이 쑥 나와 이를 사이에 두고 남·서로 골짜기가 둘이 있고, 두 골짜기에서 냇물이 흘러내리고 있어 다른 동리보다도 골짜기와 시내가 많다고 해서 골계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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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는 거의 바닷가가 식당이라, 문화시설 같은 게 딸리고, 기독교식으로 이야기 하면은 우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면서도 벌써 100여 년이 되가는 기독교사가 있는데, 울릉도 조그마하니까, 울릉도 폐쇄적인 게 있어요. 한 치 건너서 전부 다 친척이에요, 그런 면에서 그런지 복음이 많이 확장되는 그런 게 그런 이유가 있는 거 같아요. 그런 거 같고……. 그리고 서달 같은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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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서2리에 속하는 마을. 구암초등학교가 있던 곳의 바닷가 뱃자리 뒤에 산이 깎아지른 듯이 높이 솟아 있고 거기에는 수십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굴이 있다. 개척 때 사람들이 이곳에 와 보고 석산에 굴이 있다고 해서 굴바우라 부르게 되었고, 한자로는 굴암(窟岩)이라고 하던 것이 오늘에는 구암으로 표기하게 되었다. 1906년 지방 행정 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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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서1리에 속하는 마을. 개척민들이 이 곳에서 나팔을 불어 일꾼들을 모았다고도 하며, 또는 나팔 모양으로 생긴 등성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도수(島首) 배상삼(裵尙三)이 암살당하던 날, 이곳에서 나팔 소리가 여러 번 났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설 등도 있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1906년 지방 행정 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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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서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의 이름은 남양리의 서쪽이 되므로 남서리가 되었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1906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개 동과 북면의 태하·학포 등 2개 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설치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면과 구암을 병합하여 남서동[현 남서리]으로 개편하였다. 그 뒤 남서동을 2개 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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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서리에 속하는 행정리. 남서리는 남양리의 서쪽이라 하여 불렸는데, 남서천 서측의 대등[566.1m]을 넘어서면 남서2리가 된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1906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개동과 북면의 태하·학포 등 2개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설치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면과 구암을 병합하여 남서동[현 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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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에 속하는 행정리. 남양리는 원래 골계의 일부였으나 행정구역을 편제할 때 2개로 나누어 하나는 남양리라 하고, 하나는 남양리의 서쪽이라 하여 남서리라 하였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1906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개 동과 북면의 태하·학포 2개 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새로 설치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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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에 속하는 행정리. 남양리는 원래 골계의 일부였으나 행정구역을 편제할 때 2개로 나누어 하나는 남양리라 하고, 하나는 남양리의 서쪽이라 하여 남서리라 하였다. 그리고 석문동은 평지이면서 삼면이 성을 쌓아놓은 것과 같은 모양이다. 다만 입구에 서쪽으로 뻗어 있는 큰 바위가 문을 세워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석문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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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에 속하는 행정리. 남양리는 원래 골계의 일부였으나 행정구역을 편제할 때 2개로 나누어 하나는 남양리라 하고, 하나는 남양리의 서쪽이라 하여 남서리라 하였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1906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개 동과 북면의 태하·학포 2개 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새로 설치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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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한 마을이 단위가 되어 행하는 신앙 형태. 울릉도는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징과, 그리 크지 않은 면적에도 해발 984m의 성인봉이 있는 험준한 지형적 특징을 가진 지역이다. 거친 바다와 험준한 산은 마을 주민들의 생활 터전이었으며, 한편으로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을 것이다. 울릉 지역의 마을신앙은 이러한 두려움을 마을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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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2리에 속하는 마을. 개척 초기 전라도 사람들이 이곳에서 배를 만들 나무를 베기 위해서 막을 치고 있었다고 해서 막동(幕洞)이라 하였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1906년 지방 행정 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개 동과 북면의 태하·학포 등 2개 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설치하였고,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통구미·석문·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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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에 있는 전망대. 만 가지의 상이 보이는 절경이라 하여 만물상전망대라 불리고 있다. 학포(鶴圃)는 만물상전망대가 있는 마을로 작은황토구미라고도 한다. 작은황토구미는 황토가 많이 나는 울릉군 서면 태하리의 큰황토구미와 마찬가지로 황토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생긴 지명이지만, 큰황토구미 보다는 지역도 좁고 황토도 적다고 해서 작은황토구미라 불리고 있다. 학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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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2리에 속하는 마을. 말바우는 생김새가 말이 옆으로 비스듬하게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고, 물이 흘러내릴 때는 마치 말이 오줌을 누듯이 떨어진다고 해서 이와 같이 붙여진 이름이다. 1906년 지방 행정 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의 5개 동과 북면의 태하·학포의 2개 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새로 설치하였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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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사동리에 있는 운송 회사. 1984년 4월 28일 한일 여객[현 금아여행]에서 분리하여 우산 버스(于山버스)를 설립하였다. 2011년 7월 1일 민영 버스에서 공영 버스로 바뀌며 무릉 교통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운행 횟수를 늘렸다. ‘우산(于山)’과 ‘무릉(武陵)’이라는 사명은 모두 울릉도의 옛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무릉 교통은 도동항에서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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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서2리에 속하는 마을. 물이 높은 곳에서 흘러내릴 때 층층으로 물이 떨어지는 까닭에 이곳을 물칭칭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1917년의 「조선지형도」에는 수층동(水層洞)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이는 일제강점기에 새로 만들어진 지명이다. 지금은 수층이라고 한다. 성인봉을 거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타고 내려가서 태하령을 지나 태하리의 말바위와 남서리의 물칭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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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해 있는 행정구역. 석포동 남쪽 산등성이를 타고 남서쪽으로 올라가서 이 섬의 최고봉인 성인봉을 거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타고 내려가서 태하령과 노인봉을 지나 태하동, 말바위와 남서동 물칭칭 사이 산 끝까지를 경계로 하여 북쪽에 있다고 해서 북면이 되었다. 1900년 10월 25일 군제를 실시하면서 남면과 북면으로 나누어지고, 북면에는 석포·천부·신리·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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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리에 있는 북면 관할의 행정 기관.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의 행정과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00년 군제를 실시하면서 섬의 최고봉인 성인봉과 태하령을 중심으로 남쪽을 남면이라 하고, 그 북쪽을 북면이라 하였다. 당시 북면은 석포·천부·나리·평리·현포·태하·학포의 7개 동을 관할하였다. 1906년 행정구역이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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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비파산과 학포에 관련된 지명 이야기. 2007년 울릉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릉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울릉도를 우산국이라고 부르던 때에 우해왕이라는 훌륭한 왕이 있었다. 용맹이 뛰어나서 대마도까지 가서 대마도 왕의 항복을 받고 그의 셋째 딸을 데리고 와서 왕후로 삼았다. 왕후의 이름은 풍미녀였는데, 왕후가 되고부터는 사치가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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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전해 내려오는 산삼과 관련된 세 가지 이야기. 2007년 울릉군지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울릉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산삼은 아주 먼 옛날부터 불로장생의 약 또는 불사초 등으로 불렸으며, 그 약효는 실로 다른 약에 비할 바 못 되는 명약 중의 명약으로 자타(自他)가 이 약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해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울릉도에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산삼이 유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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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2리에 속하는 마을. 개척 당시 삼막골에는 괴목나무가 유난히도 많았는데, 일본 사람들이 배를 만들기 위해 이 곳에 막을 쳐 놓고 벌목을 했다고 하여 산막이라 하였다. 산삼을 캐기 위해 막을 쳤다고도 하고, 또 삼베옷을 만들기 위해 막을 쳐 놓고 삼을 많이 심었다고도 해서 삼막골이라고도 하였다. 태하리는 1882년 개척령이 반포되자 최초로 이주해 온 주민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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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1리에 속하는 마을. 예전에 이곳에 서달래(徐達來)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해서 그 이름을 따서 서달령이라고 하였고, 지금은 서들령이라 부르게 되었다. 태하리는 1882년 개척령이 반포되자 최초로 이주해 온 주민들의 본거지로 1902년까지 울릉도의 행정 중심지였고 울릉도에서는 본래의 토속적 모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1906년 지방 행정 구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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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해 있는 행정구역. 저동(苧洞) 와달리(臥達里) 북쪽 산등성이를 타고 남면 쪽으로 올라가서 최고봉인 성인봉을 거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타고 내려가서 태하령을 지나 태하동[현 태하리]의 말바위와 남서동[현 남서리]의 물칭칭 사이 산 끝까지를 경계로 하여 그 서쪽을 서면이라 하였다. 1906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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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에 있는 서면 관할의 행정 기관. 1906년 지방 행정 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의 5개동과 북면의 태하·학포의 2개 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새로 설치하였으며, 1914년 군면 통폐합에 의해 통구미·석문·남양과 남면의 장흥도 일부를 병합하였다. 1960년 8월에 태하동을 2개 동으로 개편하여 7개 행정동을 관할하였으며, 태하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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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2리에 속하는 마을. 이 곳은 평지이면서 삼면이 성을 쌓아놓은 것과 같은 모양인데, 다만 입구에 서쪽으로 뻗어 있는 큰 바위가 문을 세워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석문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1906년 지방 행정 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의 5개 동과 북면의 태하·학포의 2개 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새로 설치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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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이 동네 사람들이 줄어들어서. 어떻게든지 인구를 유입할 수 있는 그런 게 있어야 하는데……. 그런 아마, 관광계획을 해서라도 자꾸 끌어들이는 것을 만들어야……. 위에 학교터에다가 이규원 감찰사, 그리고 사택 옆에 팬션을 짓는다는데, 모르겠어요. 너무 가파른데 어떡할려나. 요기 학교에서부터 교회 앞으로 해서 사택 넘어가면 해신당 가는 길이 있는데, 요길 아마 길을 낼 거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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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회는 술 만드는 공장이었데요. 여기 학포에는 한 100가구 이상 살았는데, 배타고 해서 돈은 많이 벌고 하니, 술은 엄청……. 그런데 선교사님이 오셔서 이것을 샀어요. 술 만드는 공장 두 칸은 구입하셔서 교회로 만들었어요. 아주 초창기에 들어오셨는데. 울릉도는 침례교회가 18개소 있습니다. 여기서 5, 6살 때부터 다녔던 권사님도 나오고 계세요. 여기는 애들의 좋은 놀이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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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포의 마을 이름은 마을 뒷산이 학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학의 머리 부분에 해당되는 뒷산이 무너졌기 때문에, 이 마을에는 부자가 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광복 후 국회의원 선거가 한창일 때, 이 마을의 유권자 표를 전부 몰아 한 사람에게 던질 터이니 이 학머리를 다시 쌓아 재생시킬 수 없겠느냐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풍미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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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울릉도에 있었던 고대의 소국인 우산국과 관련하여 역사적으로 기록된 내용은 거의 없다. 246년(동천왕 20) 중국 위(魏)나라의 관구검(貫丘儉)이 고구려를 침략한 사실을 기록한 『위지(魏志)』에 “동해에 또 하나의 섬이 있으나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대목이 있는데 이것이 우산국을 추측할 수 있는 최초의 기록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 신라본기 지증마립간조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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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태하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가옥. 해안 마을인 태하2리 산막으로부터 학포로 넘어가는 일주 도로에서 동북쪽으로 30m 가량 올라가면 해발 155m의 산비탈에 있다. 이경백 가옥은 뒤편에 가파른 야산을 개간해 만든 밭이 있고, 전방은 시원하게 펼쳐진 동해가 바라다보이는 서북향이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뒷면을 제외한 삼면에는 우데기가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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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도 조건이 안 좋은 게 일주도로를 낼 때 천태종(삼도사) 이쪽으로 해서 학포를 거쳐가, 글로(그곳으로) 넘어가도록 설계하기로 했는데……. 거 뭐 또 군의원 7명도 마음이 안 맞았고, 그 당시 관군수가 하다 보니깐 굳이 신경 써서 옳게 안 했고, 요새처럼 지방자치단체장이 되면 자기 표를 의식해서 하는데, 그 당시에는 관군수가 막 눌러버린다고요. 그래 그 위에 길을 내는 거를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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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 1리에서 일주도로를 타고 학포마을로 진입하는 지하도로 내려가기 전 200m 지점의 왼편 계곡 옆에 위치하고 있다. 당집은 계곡 가파른 산비탈에 2단으로 석축을 쌓아 평탄지를 조성한 다음 상단에 단칸(2.9×2.7m) 규모의 목조집을 서향으로 앉혔다. 석축의 상·하단 중앙에는 돌계단을 만들어 오르내리기 쉽도록 하였다. 벽체는 네모기둥에 판자로 마감하였는데, 정면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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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곳에는 황토가 많이 났다고 한다. 지금도 현포 쪽 바닷가 산에 황토를 파낸 자취가 아직 남아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조선조 때는 이곳의 황토를 나라에 진상했다고 하며, 또 조정에서는 3년에 한 번씩 삼척영장을 이 섬에 순찰 보내어 그 순찰 여부를 알기 위해서 이곳의 황토와 향나무를 바치게 했다고도 한다. 개척 때 사람들이 이곳에 와 보니 바닷가 산에 황토를 파낸 구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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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리에 속하는 행정리. 울릉도 최초의 개척선이 와 닿은 항구가 있던 마을이다. 개척 초에는 ‘왜선창(倭船艙)’이라 불리던 것이 잘못 인식되어, 옛날의 선창 곧 옛 선창이란 뜻에서 예선창이라 부르다가 후에 한자식 표기를 할 때 현 천부동의 동명을 그대로 사용하여 천부(天府)라고도 하였다. 또한, 울릉도 개척 초 이곳에 살기 위해 온 사람들이 나무를 베어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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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리에 속하는 행정리. 울릉도 개척 초에 예선창에 내린 사람들 중에 덕산이씨(德山李氏)의 백산노인과 간성이씨(杆城李氏)의 철원노인 두 사람이 바닷가에 살 수가 없다고 하여 가족을 거느리고 이곳에 왔다. 와서 보니 아름드리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하늘을 찌르고, 갖가지 넝쿨이 엉켜 있는 운동장 남짓한 평지가 있어 만약 샘물만 있으면 살기에는 가장 좋은 곳인 듯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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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리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북면 지역인데, 1900년 10월 25일 군제를 실시하면서 석포·천부·신리·평리·현포·태하·학포의 7개 동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06년 행정구역을 다시 나누어 석포·천부·나리·현포·평리 5개 동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포동과 평리동을 병합하여 현포동으로, 천부동·석포동·나리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천부동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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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리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북면 지역인데, 1900년 10월 25일 군제를 실시하면서 석포·천부·신리·평리·현포·태하·학포의 7개 동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06년 행정구역을 다시 나누어 석포·천부·나리·현포·평리 5개 동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포동과 평리동을 병합하여 현포동으로, 천부동·석포동·나리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천부동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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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나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치 깎아 놓은 듯이 가파르다고 깍깨등이라 한다. 깎끼등, 깍깨뜽 혹은 추산깍깨등이라고도 한다. 송곳봉[錐山]이란 지명은 현 추산발전소 옆에 삼각형 산의 모양에서 유래한다. 산봉우리가 마치 송곳과 같이 뾰족하다고 해서 송곳산이라고도 한다. 한자식 지명으로 표기하면서 추산이라 하였다. 본래 북면 지역으로 이중식 화산의 분화구인데, 화산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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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1리에 속하는 마을. 원래 태하에는 황토가 많이 났다고 한다. 지금도 현포 쪽 바닷가 산에 보면 황토를 파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조선조 때는 이곳의 황토가 나라에 상납까지 되었다고 하고, 또 조정에서 3년에 한 번씩 삼척영장을 이 섬에 순찰을 보냈는데 그 순찰 여부를 알기 위해서 이곳의 황토와 향나무를 바치게 했다고도 한다.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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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에 속하는 행정리. 울릉도 개척 때 사람들이 현 태하리에 와 보니 바닷가 산에 황토를 파낸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큰황토구미라 하였던 것이다. 뒤에 한자식 지명으로 표기할 때 대하(臺霞)라 하다가 다시 태하(台霞)라 표기하였다. 본래 북면의 지역인데, 순종 원년에 서면에 편입되었다. 1906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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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에 속하는 행정리. 울릉도 개척 때 사람들이 현 태하리에 와 보니 바닷가 산에 황토를 파낸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큰황토구미라 하였던 것이다. 뒤에 한자식 지명으로 표기할 때 대하(臺霞)라 하다가 다시 태하(台霞)라 표기하였다. 본래 북면의 지역인데, 순종 원년에 서면에 편입되었다. 1906년 지방행정 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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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 태하리 398(학포) 일대, 태하2리 369-1번지 손모익 씨 가옥 앞쪽과 일주도로 위쪽 밭 일대부터 학포동으로 내려가는 길가의 유종수 씨 가옥 뒤편 일대에 위치한다. 이곳은 바다 쪽으로 뻗은 해발 120~160m에 이르는 비교적 가파른 산비탈로 현재 밭으로 개간된 상태이며, 전방으로는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고분은 태하리 손모익, 우한수 씨 공가 앞쪽 약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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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 태하리 401-1(학포) 일대, 고분군Ⅱ에서 북쪽 100m 지점에 위치한 해발 180~230m의 산비탈 및 밭 일대에 위치한다. 이곳은 비교적 경사가 급한 지대를 개간하여 만든 밭으로 지금은 경작하지 않은 지 오래된 듯 풀과 잡목이 우거져 있다. 고분군 앞쪽으로는 계곡과 바다가 한 눈에 잘 조망된다. 범위는 양쪽 계곡을 사이에 두고 남북간 약 250~300m, 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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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석문은 옛날 울릉도에서 이쪽(방파제 방향) 저쪽(황토구미 쪽)에 양쪽에 발파를 해가 없애버렸지만, 음각을 해가 수없이 있었어요. 이쪽저쪽 참 많이 있었는데, 발파를 해가 다 없애버렸어요. 이쪽(방파제 쪽) 한군데는 남아 있더라고. 저쪽은 다 도동항구 만든다고 발파를 해가, 한 20년 되었어요.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경사져 있었어요, 지금은 단애가 되어 있지만.”(제보자: 안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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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포동이 굉장히 고립된 지역이에요. 터널과 터널사이에 있거든요. 그리고 제가 보니깐 길도 제일 마지막으로 났더라구요, 여기가. 여기 있는 사람들이 고립된 지역의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면 폐쇄적이잖아요. 남에게 배타적이고 자기를 알아주기를 원하고, 이해받기 원하고, 자기만 사랑받기 원하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저변에 쫙 깔려 있어요. 아까 말한 거. 이쪽은 전부들 혈족이에요.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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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현포2리에 속하는 마을. 개척 당시 전라도 사람들이 나선을 타고 현포에 들어와 보니 조그마한 항구가 있었다. 배를 정박하기 적당한 듯하여 이곳에 내려 해변을 따라 현포 쪽으로 가보니 이미 몇 집이 살고 있었다. 다시 반대쪽을 살펴보니 경작할 수 있는 평지가 있어, 이 곳에 자리를 잡아 살면서 고기도 잡고 전라도에 내왕하기도 하였다. 이후에 이 곳 지명을 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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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을 작품 배경으로 한 대중가요. 「포구의 인사」는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이 겪었던 상실감, 비애, 이별의 고통 등의 감정을 대중적 정서로 상징화시킨 노래이다. 전체 3절 구성으로, 1절은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항과 그 주변, 2절은 학포와 그 주변, 3절은 울릉도를 공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 포구의 인사란 우는 게 인사러냐./ 죽변항 떠나가는 팔십 리 물결에/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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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우산국의 왕비. 남편은 우산국 우해(于海)왕이며, 딸을 하나 두었는데 별님이라 불렀다. 구체적 문헌은 남아있지 않지만, 전설에 의하면 우산국왕 우해(于海)가 대마도에서 도주의 셋째 딸 풍미녀(豊美女)를 데리고 와서 왕후로 삼았는데, 사치가 너무 심해서 결국 우산국을 멸망케 하였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풍미녀와 관련된 이야기는 사자바위, 비파산과 학포 등의 일부 지명과 관련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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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2리에 속하는 마을. 조선시대 이규원의 일기를 보면 마을 뒤편 학이 앉아 있는 형태의 바위가 있다고 하여 학포(鶴圃)라고 하였는데, 1958년경 학의 부리 부분이 바람에 떨어지고 몸통만 남았다고 한다. 이곳은 태하1리와 마찬가지로 황토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생긴 지명이나, 태하1리 보다 면적이 좁고 황토가 적다고 해서 작은 황토구미(黃土邱尾)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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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기를 떠났을 때를 생각해 봐요. 근데 내 고향은 도시라 애착감이 없어요. 대전 토박이거든요. 하지만, 여기는 정말 마음의 고향이 될 거 같애. 처음 부임지고 항상 떠올라요. 내가 다음에 나이 먹고 밖에 나가서 학포를 생각하면 그리워질 거 같애. 지금도 내가 모르죠. 늦게 까지 어떤 사역을 하고 싶은데, 나중에는 들어 와서 노후를 보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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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다 울릉도 분이에요. 예전에는 오징어 많이 나고 할 때 저동에서 오징어배 하고 하다가 여기 학포에 왔어요. 여기서도 배도 했는데 매미태풍 때에 파도가 다 쓸어가 버렸어요. 그래가 미역 따고 전부 자기 먹을라고 따개비 따고 그래요. 다른 것은 미역취하고 취나물 농사도 하고, 부지깽이도 하고 그거 먹고 고비도 하고 다해요. 취나물은 가을에 씨 뿌리고 채취하는 거는 4월말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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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의 관문인 도동에서 천부로 가려면 버스를 타고 일주도로를 약 1시간 남짓 달려야 한다. 도동에서 출발하여 천부에 이르는 길은 제법 멀다. 도동발~사동(5.6㎞)~통구미(8.7㎞)~남양(10.9㎞)~구암(14㎞)~학포(18.9㎞)~태하(21.9㎞)~현포(24.8㎞)~평리(29.0㎞)~추산(30.4㎞)~천부(32.4㎞) 버스 요금은 4,500원이다. 하루 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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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 태하 2리(학포, 작은 황토구미)의 산왕각은 태하리 임오명각석문에서 남쪽으로 약 80m 지점의 계곡 옆 암반 사이에 정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당집은 단칸(2.5×2.7m) 규모로 뒷벽은 바위에 의지하고 나머지 삼면은 돌로 벽체를 쌓아 올렸다. 당집 주변은 시멘트로 바닥을 정리하고 벤치를 놓아 마을쉼터로 조성하였다. 출입문은 계곡 쪽으로 쌍여닫이 판자문으로 달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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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현포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의 이름은 동쪽에 있는 촉대암(燭臺岩)의 그림자가 바다에 비치면 바닷물이 검게 보이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본래 북면 지역으로 1900년 10월 25일 군제를 실시하면서 석포·천부·신리·평리·현포·태하·학포의 7개 동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06년 행정구역 개편시 석포·천부·나리·현포·평리의 5개 동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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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현포리에 속하는 행정리. 현포(玄圃)라는 마을 이름은 동쪽에 있는 촉대암(燭臺岩)의 그림자가 바다에 비치면 바닷물이 검게 보이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본래 북면 지역으로 1900년 10월 25일 군제를 실시하면서 석포·천부·신리·평리·현포·태하·학포의 7개 동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06년 행정구역 개편시 석포·천부·나리·현포·평리의 5개 동을 관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