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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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연변 (해변)에 위치한 해신당에서 황토구미로 가기 전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고 다소 경사진 좁은길이 나온다. 자칫 스쳐 지나기 쉽다. 비가 와서 조금 미끄러웠으나 조금 올라가니 울창한 소나무 숲속으로 오솔길이 나타났다. 그리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소나무 숲을 넘어 동백나무, 후박나무, 단풍나무로 우거진 길을 따라 30여 분 걸으면 태하등대까지 갈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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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울릉도 개척령에 의해 본토로부터 울릉도에 이주해온 사람들. 1883년(고종 20) 울릉도 개척령이 내려진 후 수토(搜討) 정책이 폐기되고, 울릉도에 개척민이 이주했으며, 일본인들은 일본 정부에 의해 소환되었다. 1883년 울릉도 개척령에 의해 울릉도에 들어와 정착과 개간을 시작한 민호와 인구 상황에 관한 자료인 『광서구년칠월 일 강원도울릉도 신입민호인구 성명연세급전토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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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개척령에 의해 울릉도에 들어와 정착한 후 개간을 시작한 민호와 인구 상황에 관한 구체적 자료 “광서구년칠월 일 강원도울릉도 신입민호인구 성명연세급전토기간 수효성책(光緖九年七月 日 江原道鬱陵島 新入民戶人口 姓名年歲及田土起墾 數爻成冊)”이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도서로 남아 전한다. 그 가운데, 태하에 정착한 사람들은 장적래, 김연태, 이회영, 황수만 등이다. 그러나 이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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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 개척 당시 관청이 태하에 있고, 도동은 자연항구가 되가 태풍의 피해가 없어요. 북서풍 남서풍 다 피하고. 그래가 자연항구가 좋단 말이죠. 그런데 이곳 천부는 거센 파도가 심해요. 한때 관광선 정박시킬려고 노력한 적 있어요. 관광회사에서는 정박시키고 싶어도 선장들은 여 항구 여건이 나쁘다보니 위험부담이 있어가 흐지부지되고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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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비경을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가장 싼값으로 훑어 볼 수 있는 교통수단은 버스이다. 단체로 여행할 경우에는 전세버스를 빌리는 게 좋고, 개인이나 소수로 여행할 경우에는 우산버스를 이용하거나, 여행사의 당일코스상품(1인당 1만 5천원)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울릉도 우산버스는 관광 성수기 때에는 도동에서 천부까지 매일 10회 왕복하고, 천부에서 나리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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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상 태하리는 태하 1리와 2리로 구분되어 있지만, 세 지역의 자연촌락 즉, 큰황토구미(태하동), 작은황토구미(학포), 서달영으로 분산되어 있다. 큰황토구미는 본래 황토가 많이 나는 곳이라 해서 큰황토구미로, 소황토구미는 황토가 많이 나지만 동리가 작다고 해서 불러진 지명으로 학포라 하기도 한다. 서달영은 태하동에서 700m 정도 깊은 골짜기에 ‘서달네’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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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에 속하는 마을. 골계[谷溪]란 비파산의 양쪽 산허리에 돌이 깨어져 골이 나 있는 것을 보고 ‘돌이 깨어져 골져 있는 곳’이라 하여, ‘골계’라 불렀다 한다. 그런데 골계만은 비파산이 쑥 나와 이를 사이에 두고 남·서로 골짜기가 둘이 있고, 두 골짜기에서 냇물이 흘러내리고 있어 다른 동리보다도 골짜기와 시내가 많다고 해서 골계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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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는 거의 바닷가가 식당이라, 문화시설 같은 게 딸리고, 기독교식으로 이야기 하면은 우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면서도 벌써 100여 년이 되가는 기독교사가 있는데, 울릉도 조그마하니까, 울릉도 폐쇄적인 게 있어요. 한 치 건너서 전부 다 친척이에요, 그런 면에서 그런지 복음이 많이 확장되는 그런 게 그런 이유가 있는 거 같아요. 그런 거 같고……. 그리고 서달 같은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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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2005년 나비태풍 때 무슨 일이 있었냐면 귀가 안 들리는 노인들이, 연세 87세 되시는, 그분들이 역사의 증인들이신데, 밤8시부터 여기 장난이 아니었어요. 다 내려앉고. 저도 영화에서는 봤거든요. 8시부터 새벽 3시 40분까지 지속되었는데, 그분들 올라오시라니깐, 나 여기서 죽겠다 해서 안 올러오는 거에요. 12시 넘어 1시쯤 되어 제 남편이 젊잖아요. 이분들 죽으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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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기가 울릉도 학포에 들어와 생일파티를 처음 했어요. 전교생이 4명이니깐. 다 불러라 해서 우리가 데려오고 데려주고. 보라색 입은 아이가 우리 딸인데, 하늘이라고 불러요. 본명은 예은이에요. 어느날 자기가 하늘이라고 하겠다고 해서 지금까지 애칭이 하늘이입니다. 와서는 7살 때인데 친구도 없고 해서 계속 연변에 가서 이렇게 서있고, 개 데리고 놀고, 염소와 놀고……. 얘는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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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서2리에 속하는 마을. 구암초등학교가 있던 곳의 바닷가 뱃자리 뒤에 산이 깎아지른 듯이 높이 솟아 있고 거기에는 수십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굴이 있다. 개척 때 사람들이 이곳에 와 보고 석산에 굴이 있다고 해서 굴바우라 부르게 되었고, 한자로는 굴암(窟岩)이라고 하던 것이 오늘에는 구암으로 표기하게 되었다. 1906년 지방 행정 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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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중간에 이 마을에 아주 참 못 살았어요. 일거리도 없고. 일거리 해봐야 오징어 잡는 것밖에 없는데. 오징어를 6개월 잡아가 일년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 생활고 하고는 말도 못하고. 봄 되면 전부 산에 올라가가 나물 해먹고. 그랬어요. 그 뒤에 우리가 젊을 때 우리가 동네를 한 번 일받아 보자 해가(일으켜 보자 해서), 다른 동네보다 한 30년 뒤떨어졌다 이랬는데. 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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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는 들이 넓으니 처음 군청이 여기 있었죠. 군청관사가 어디에 있었냐면 냉동공장 뒤에 보면 돌담집 있는데 올라가시다 보면은 오렌지 색깔 컨테이너박스 하나 있습니다. 거기가 군청관사인데……. 우리가 알기로는 그때 일본 사람들 있을 때 학교까지 축항한다고 준설해 낸다고 그랬다더라고요. 그래가 자연항구 만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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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이 환경상품을 판매할 수밖에 없는 그런 섬입니다. 최고의 상품은 환경입니다. 환경상품이 최고의 상품이라고 저희들이 생각하고 있는 범위 내에서는 지금 북면이 가장 좋은 상품을 가지고 있다라고 봐도 좋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일단 원시적으로 남아있는 죽도, 관음도, 강원도가 보이는 태하, 그리고 독도를 바로 조망할 수 있는 석포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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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서1리에 속하는 마을. 개척민들이 이 곳에서 나팔을 불어 일꾼들을 모았다고도 하며, 또는 나팔 모양으로 생긴 등성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도수(島首) 배상삼(裵尙三)이 암살당하던 날, 이곳에서 나팔 소리가 여러 번 났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설 등도 있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1906년 지방 행정 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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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서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의 이름은 남양리의 서쪽이 되므로 남서리가 되었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1906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개 동과 북면의 태하·학포 등 2개 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설치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면과 구암을 병합하여 남서동[현 남서리]으로 개편하였다. 그 뒤 남서동을 2개 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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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서리에 속하는 행정리. 남서리는 남양리의 서쪽이라 하여 불렸는데, 남서천 서측의 대등[566.1m]을 넘어서면 남서2리가 된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1906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개동과 북면의 태하·학포 등 2개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설치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면과 구암을 병합하여 남서동[현 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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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에 속하는 행정리. 남양리는 원래 골계의 일부였으나 행정구역을 편제할 때 2개로 나누어 하나는 남양리라 하고, 하나는 남양리의 서쪽이라 하여 남서리라 하였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1906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개 동과 북면의 태하·학포 2개 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새로 설치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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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에 속하는 행정리. 남양리는 원래 골계의 일부였으나 행정구역을 편제할 때 2개로 나누어 하나는 남양리라 하고, 하나는 남양리의 서쪽이라 하여 남서리라 하였다. 그리고 석문동은 평지이면서 삼면이 성을 쌓아놓은 것과 같은 모양이다. 다만 입구에 서쪽으로 뻗어 있는 큰 바위가 문을 세워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석문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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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에 속하는 행정리. 남양리는 원래 골계의 일부였으나 행정구역을 편제할 때 2개로 나누어 하나는 남양리라 하고, 하나는 남양리의 서쪽이라 하여 남서리라 하였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1906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개 동과 북면의 태하·학포 2개 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새로 설치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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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들어와가 내 손으로 배 많이 지었어요. 내 기술이 일류 기술이라. 울릉도에서 배를 지어도 학술적으로 배운 내 기술을 이길 사람이 없는 기라. 천부의 아무 거시기다 하면 여 다 알아요. 내가 그때 스물두 살 때인 기라. 새파란 젊은 놈이 그러이 놀라는 기라. 내가 들어왔을 때 다른 울릉도에 배 기술자들이 있었지만, 다 초짜배기들이지. 그 사람들은 3척을 지어도 다 다른 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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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궁은 내 제대하고 와가 내 친구 손익찬이가 처음 가져왔어요. 1972년도부터 했는데 그기 울릉도에 다 퍼졌어요. 특히 태하, 서달 쪽에 많이 했죠. 그기 10~15년 했다고. 그 이후에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미역취로 넘어갔지. 모든 작물이 오래하니 안 돼. 서달 쪽에는 되는데. 미역취 그게 본토에서 가져온 게 아니고 산에서 캐온 거 재배한 거야. 지금 고비같은 거 산나물같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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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울릉도 들어와가 왜 태하에 왔냐면. 도동에 턱 내려보니. 그때 통통배를 타고 울릉도 들어오는데 두 달 걸렸어요. 포항서 날 좋은 날 받는다고 1달 기달리고. 그 다음에 포항에서 바로 울릉도로 못 들어오고, 울릉도 가까운 데로 해가 온다고 죽변으로 올라왔다고. 죽변 와가 날씨가 안 좋아 25일 걸렸다고. 그래가 울릉도(도동)에 도착해보니. 이거는 깎아지는 절벽이 이리 올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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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부 농사지었지. 양조장도 했고. 양조장은 큰아버지가 하시다가 돌아가시고, 우리가 인수해서 우리가 계속 했지. 우리가 나기 전에 그러니까 우리가 65세니까 한 70년. 그때부터 하다가 몇 년 전에 치웠지. 직원은 없고 우리가 다 했어. 내가 군대 제대 맞고 와가 내가 우리 집에서 제일 막내인데, 내가 스물다섯살 제대하고 와가 그 길로 양조장 술하고 내가 다 했어. 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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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1882년(고종 19)에 울릉도 개척령이 반포되면서 주민이 입도하기 시작하여 이곳에 자치지휘소를 설치하고 도방청이라 불렀다. 그 이후 이규원의 일기에서도 도동을 도방청포구(道方廳浦口)라 기록하고 있으며, 도방청은 번화한 곳을 가리켰으며, 이후 도방청의 도(道)자를 따서 도동(道洞)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태하에 있던 군청이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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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1882년(고종 19)에 울릉도 개척령이 반포되면서 주민이 입도하기 시작하여 이곳에 자치지휘소를 설치하고 도방청이라 불렀다. 그 이후 이규원의 일기에서도 도동을 도방청포구(道方廳浦口)라 기록하고 있으며, 도방청은 번화한 곳을 가리켰으며, 이후 도방청의 도(道)자를 따서 도동(道洞)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 때에 태하에 있던 군청이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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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1882년(고종 19)에 울릉도 개척령이 반포되면서 주민이 입도하기 시작하여 이곳에 자치 지휘소를 설치하고 도방청이라 불렀다. 그 이후 이규원의 일기에서도 도동을 도방청포구(道方廳浦口)라 기록하고 있으며, 도방청은 번화한 곳을 가리켰으며, 이후 도방청의 도(道)자를 따서 도동(道洞)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 때에 태하에 있던 군청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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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 개설되어 사람과 차량이 통행할 수 있게 만든 길. 울릉도의 특징 중의 하나는 경사가 급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로를 내기 어려워 대부분의 길이 좁다. 그래서 도동 거리는 일방통행인 곳이 많다. 또한 울릉도는 조면암·안산암 및 응회암으로 형성된 종상화산체로 사면 경사가 매우 급하다. 따라서 택시도 사륜구동의 지프가 보편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울릉도의 해변 도로는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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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방청은 사람이 많이 살며 번화한 곳이란 뜻이다. 고종(高宗) 19년(1882) 울릉도에 개척령을 발포(發布)하면서 울릉도 개척민에게는 세금을 면제해주었다. 이로 인하여 고종 21년(1884)부터 점차 사람들이 울릉도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울릉도에 도착해 보니 본동(本洞)에는 이미 일본 사람들이 살고 있고, 제법 시가(市街)의 모습을 이루고 있으므로 이를 ‘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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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2리에 속하는 마을. 소를 잡는 도축장이 있었던 동네라 도치장 또는 도축장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태하에 있던 군청이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저동과 사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도동이라 하여 남면에 편입되었다. 이 마을 앞에는 작은 개천이 흐르고, 뒤쪽은 보루산의 자락과 닿아 있다. 도동 선착장에서 울릉초등학교와 KT울릉지점을 지나 사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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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2리에 속하는 마을. 개척 초기 전라도 사람들이 이곳에서 배를 만들 나무를 베기 위해서 막을 치고 있었다고 해서 막동(幕洞)이라 하였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1906년 지방 행정 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개 동과 북면의 태하·학포 등 2개 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설치하였고,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통구미·석문·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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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2리에 속하는 마을. 말바우는 생김새가 말이 옆으로 비스듬하게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고, 물이 흘러내릴 때는 마치 말이 오줌을 누듯이 떨어진다고 해서 이와 같이 붙여진 이름이다. 1906년 지방 행정 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의 5개 동과 북면의 태하·학포의 2개 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새로 설치하였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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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문화원 은 1966년 3월 설립되어 울릉군의 문화 산실의 모태로서 울릉전통문화를 계승·발굴하고, 지역문화 창달을 위해 많은 사업을 해오다가 1994년 지역문화 진흥법에 의거 공익 법인단체로 재설립되어, 지역주민들의 문화욕구 충족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울릉문화원은 사단법원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 65년도, 포항과 별도로 돼 있다가 합쳐졌는데, 경북 2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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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은 모든 조건을 봐가 도동은 따시고, 남향 쪽이다 보니깐 사람이 많이 몰렸고. 여는 추우니까 북면 천부·태하·현포 이런데 춥잖아요. 사람들이 적게 살고 겨울철에 배라던가, 다니기 힘들고. 남향은 좀 낫습니다. 인구가 따시한 걸 찾다 보니깐 이쪽으로 오는 수가 적지요. 울릉군청이 겨울에 북서풍 계절풍에 못 견디고 춥고 이러다 보니깐 도동으로 넘어가 버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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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해 있는 행정구역. 석포동 남쪽 산등성이를 타고 남서쪽으로 올라가서 이 섬의 최고봉인 성인봉을 거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타고 내려가서 태하령과 노인봉을 지나 태하동, 말바위와 남서동 물칭칭 사이 산 끝까지를 경계로 하여 북쪽에 있다고 해서 북면이 되었다. 1900년 10월 25일 군제를 실시하면서 남면과 북면으로 나누어지고, 북면에는 석포·천부·신리·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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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리에 있는 북면 관할의 행정 기관.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의 행정과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00년 군제를 실시하면서 섬의 최고봉인 성인봉과 태하령을 중심으로 남쪽을 남면이라 하고, 그 북쪽을 북면이라 하였다. 당시 북면은 석포·천부·나리·평리·현포·태하·학포의 7개 동을 관할하였다. 1906년 행정구역이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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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2리에 속하는 마을. 개척 당시 삼막골에는 괴목나무가 유난히도 많았는데, 일본 사람들이 배를 만들기 위해 이 곳에 막을 쳐 놓고 벌목을 했다고 하여 산막이라 하였다. 산삼을 캐기 위해 막을 쳤다고도 하고, 또 삼베옷을 만들기 위해 막을 쳐 놓고 삼을 많이 심었다고도 해서 삼막골이라고도 하였다. 태하리는 1882년 개척령이 반포되자 최초로 이주해 온 주민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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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1리에 속하는 마을. 예전에 이곳에 서달래(徐達來)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해서 그 이름을 따서 서달령이라고 하였고, 지금은 서들령이라 부르게 되었다. 태하리는 1882년 개척령이 반포되자 최초로 이주해 온 주민들의 본거지로 1902년까지 울릉도의 행정 중심지였고 울릉도에서는 본래의 토속적 모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1906년 지방 행정 구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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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해 있는 행정구역. 저동(苧洞) 와달리(臥達里) 북쪽 산등성이를 타고 남면 쪽으로 올라가서 최고봉인 성인봉을 거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타고 내려가서 태하령을 지나 태하동[현 태하리]의 말바위와 남서동[현 남서리]의 물칭칭 사이 산 끝까지를 경계로 하여 그 서쪽을 서면이라 하였다. 1906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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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에 있는 서면 관할의 행정 기관. 1906년 지방 행정 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의 5개동과 북면의 태하·학포의 2개 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새로 설치하였으며, 1914년 군면 통폐합에 의해 통구미·석문·남양과 남면의 장흥도 일부를 병합하였다. 1960년 8월에 태하동을 2개 동으로 개편하여 7개 행정동을 관할하였으며, 태하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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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2리에 속하는 마을. 이 곳은 평지이면서 삼면이 성을 쌓아놓은 것과 같은 모양인데, 다만 입구에 서쪽으로 뻗어 있는 큰 바위가 문을 세워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석문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1906년 지방 행정 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의 5개 동과 북면의 태하·학포의 2개 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새로 설치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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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담수나 해수에서 자라는 생물을 인간생활에 유용하도록 이용, 개발하는 산업 섬으로 이루어진 울릉도에서는 일찍이 어업이 이루어졌다.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지역인 만큼 다양한 종의 수산물이 있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이것이 울릉도민의 좋은 식량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울릉 어민들의 수산업 활동에 대해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개척령 이후부터이다. 18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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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영장 등 조선 후기 울릉도를 수토하러 온 관리와 검찰사 등은 이곳 태하로 주로 들어왔다. 그 흔적이 각석문으로 남아 있다. 바로 태하리의 각석문과 1936년 도동항 수축공사지에서 발견된 각석을 들 수 있다. 앞의 각석문은 영조 11년(1735)에 수토관 삼척영장 구억(具億) 군관(軍官) 최린(崔燐) 왜학(倭學) 김선의(金善義)가 순찰한 기록이고, 뒤의 각석문에는 수토관인 절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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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때, 울릉도에 들어와가 바로 천주교 나갔습니다. 왜 나갔냐 하면, 뭐 교나 알고 갔습니까? 살기 어려울 때니까 미국에서 원조 받아서 가져온 옷 같은 거, 사탕 같은 거, 빵 같은 거, 우유, 이런 것들을 천주교에서 선물로 많이 가져와요. 천주교에서 제일 많이 가져와요. 천주교에서 많이 노나 주는 기라요. 그거 얻으러 애들이 천주교 나간거지. 그래가 천주교 가서 세례를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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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지역에서 주민의 대다수가 어업을 생업(生業)으로 하는 촌락. 대부분이 해변가에 분포하고 있으나 큰 호소나 하천 연안에도 분포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임해 지역인 연안이나 도서 지방에서 수산 동·식물을 채취·포획·양식·가공·제조하는 등 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울릉도는 전형적인 농·어촌 지역으로써 지리적으로 임해 지역과 연안을 중심으로 한 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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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그리고 태하에는 기독교가 일찍 들어왔어요. 교인은 서달은 100%입니다. 천부 같은 경우는 95%이고. 서달침례교회가 100년이 조금 넘었어요. 여기는 기독교문화가 빨리 정착이 되었습니다. 여기는 2대 3대 믿고 있어요. 그래서 산왕각과 같은 곳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게 되었어요. 지금도 교회는 존립하지만, 잘되라고 풍어 예배를 드리고 있어요. 얼마 전에 풍어 예배를 드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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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의 아름다운 자연을 작품 배경으로 한 대중가요. 울릉도의 여러 명승지를 작품 속에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울릉도의 아름다움을 극찬하는 내용을 담은 노래이다. 「우산팔경」은 전체 4절 구성으로 각 절마다 후렴구가 붙어서 반복된다. 이 작품에 나타나는 울릉도의 명승지는 도동의 배, 저동의 낚시 불, 장흥의 달, 추산의 물, 나리의 단풍, 알봉의 낙엽, 태하의 낙조, 남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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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사동1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의 교회. 1938년 10월 16일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사동리의 이종운(李鍾雲)과 울릉군 북면 현포리의 허경(許埛)이 당시 허담(許擔) 목사의 주례로 장로 장립을 받아 당시 6개의 장흥·저동·도동·현포·태하·천부 교회를 도중당회로 조직하였다. 1943년 9월 이종운 장로의 가정이 만주 용화촌 태양동교회로 이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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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생산되는 호박을 원료로 만든 기호식품. 호박은 남아메리카 원산으로 남과, 월과, 호과, 왜과라고도 하며 우리나라에는 16세기에 기록이 등장한다. 호박은 전 세계에 걸쳐 자생 및 재배되고 있으며 식용 및 약용으로 널리 이용되어 왔다. 울릉도를 개척할 당시의 일이다. 당시 태하의 서달령 고개를 중심으로, 15~16가구가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었다. 그 중 한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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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에는 현재 유인등대가 있다. 이 등대 아래 ‘대풍령’이라는 고개가 있다. 이 고개 밑에는 시퍼런 바다가 출렁이고 있다. 이곳에는 옛날부터 배가 많이 드나들었는데, 배를 메어두기 위해 이곳에 구멍을 뚫었다고 하며, 돛단배들이 이곳에 정박하면서 출항할 바람을 기다린다고 해서 ‘대풍령’이라고 불렀다. 이 고개에는 작은 구멍뿐만이 아니고 큰 굴이 있었는데, 이 굴이 옛날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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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4월) 27일 평해읍(平海邑)에서 10리쯤 떨어진 구산포(邱山浦)에서 바람을 기다리다가 29일에 순풍(順風)을 만나 중추원도사(中樞院都事) 심의완(沈宜琬)과 군관출신(軍官出身) 서상학(徐相鶴), 전수문장(前守門將) 고종팔(高宗八), 차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 유연호(劉淵祜)와 사공, 격군 등 82명, 포수(砲手) 20명을 3선(船)에 나누어 싣고 당일 오전 8시쯤에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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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지역에서 주민 수 또는 인간집단. 인구란 한나라 또는 일정한 지역 안에 사는 사람의 수를 말하는 것으로 울릉군의 인구는 울릉군의 주민등록상 등록되어 있는 사람의 수로서 독도의 인구도 포함하고 있다. 울릉군의 인구는 1974년 29,810명을 최고 정점으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며, 2000년대에는 인구 감소 추세가 완화되기는 하였으나, 현재 9,000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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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지표상의 인문적 요소를 분석 대상으로 지역의 의의를 일반적으로 고찰, 연구하는 학문 분야. 울릉군의 총 면적은 72.82㎢로 경상북도 전체면적 19,440.7㎢의 약 0.37%에 해당되고 우리 나라 군 중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군이다. 면적 중 경지 면적은 12.97㎢로 18%이고, 임야 면적은 55.48㎢로 76%이다. 각 읍·면별 크기는 서면이 27.20㎢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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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도 조건이 안 좋은 게 일주도로를 낼 때 천태종(삼도사) 이쪽으로 해서 학포를 거쳐가, 글로(그곳으로) 넘어가도록 설계하기로 했는데……. 거 뭐 또 군의원 7명도 마음이 안 맞았고, 그 당시 관군수가 하다 보니깐 굳이 신경 써서 옳게 안 했고, 요새처럼 지방자치단체장이 되면 자기 표를 의식해서 하는데, 그 당시에는 관군수가 막 눌러버린다고요. 그래 그 위에 길을 내는 거를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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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실시간으로 기상 요소를 관측하는 장비. 자동 기상관측 장비는 수동식 관측 방법을 자동화로 전환하면서 추진된 것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기상지원용으로 AWS(Atomatic Weather System) 15대를 도입하여 운용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90년에서 1994년까지 방재용 AWS 400대를 설치 완료하였다. 울릉도에는 1987년 강우 강도 관측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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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에 도동에 살았지요. 저동에 온 지는 한 14년 됐습니다. 늙어가 아무것도 못하고 살고 있죠. 저동에 헌집이라도 하나 있어서 이리 왔습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시아버지는 할아버지가 경주에서 부사까지 했답니다. 시아버지가 세살 때 엄마가 돌아가셔서 재혼을 했는데, 아들 하나 있는 사람을 재혼을 했는가 봐요. 할아버지가 그렇게 사시다가 편찮아지셔서 병이 들어 돌아가시게 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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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가 다른 데보다는 건조법이 좋아요. 왜냐면 바람이 세서 오징어를 잘 말릴 수 있는 조건이 되죠. 그런 것에 대조적으로는 울릉군청이 겨울에 북서풍 계절풍에 못 견디고 춥고 이러다 보니깐 도동으로 넘어가 버렸거든요. 그게 우리가 생각하기로 오징어 건조와 바꾼 격인 거라요. 근데 오징어는 전국적으로 태하가 제일 알아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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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2리에 속하는 마을. 이곳에는 대원사라는 절이 있는데, 절이 있는 골짜기라는 의미로 절골 또는 절골짝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태하에 있던 군청이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도동으로 옮겨졌다. 당시 군수는 군, 행정, 경찰 등 업무를 총괄하는 막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도동은 단시간에 울릉의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중 절골에는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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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곳에는 황토가 많이 났다고 한다. 지금도 현포 쪽 바닷가 산에 황토를 파낸 자취가 아직 남아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조선조 때는 이곳의 황토를 나라에 진상했다고 하며, 또 조정에서는 3년에 한 번씩 삼척영장을 이 섬에 순찰 보내어 그 순찰 여부를 알기 위해서 이곳의 황토와 향나무를 바치게 했다고도 한다. 개척 때 사람들이 이곳에 와 보니 바닷가 산에 황토를 파낸 구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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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새로 만든 배를 처음 물에 띄울 때 하는 의식. 진수식은 일반적으로 배를 처음 물에 띄우기 전에 하는 의식 또는 행사로서 비교적 오랜 옛날부터 세계 각지에서 전해 오는 풍습이기도 하다. 나라나 지방마다 방법에서 차이는 있지만, 예측할 수 없는 바다 날씨에 대한 안전성과 풍어 등을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울릉 지역에서는 원래 울릉 지역에서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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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리에 속하는 행정리. 울릉도 최초의 개척선이 와 닿은 항구가 있던 마을이다. 개척 초에는 ‘왜선창(倭船艙)’이라 불리던 것이 잘못 인식되어, 옛날의 선창 곧 옛 선창이란 뜻에서 예선창이라 부르다가 후에 한자식 표기를 할 때 현 천부동의 동명을 그대로 사용하여 천부(天府)라고도 하였다. 또한, 울릉도 개척 초 이곳에 살기 위해 온 사람들이 나무를 베어낸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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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리에 속하는 행정리. 울릉도 개척 초에 예선창에 내린 사람들 중에 덕산이씨(德山李氏)의 백산노인과 간성이씨(杆城李氏)의 철원노인 두 사람이 바닷가에 살 수가 없다고 하여 가족을 거느리고 이곳에 왔다. 와서 보니 아름드리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하늘을 찌르고, 갖가지 넝쿨이 엉켜 있는 운동장 남짓한 평지가 있어 만약 샘물만 있으면 살기에는 가장 좋은 곳인 듯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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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리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북면 지역인데, 1900년 10월 25일 군제를 실시하면서 석포·천부·신리·평리·현포·태하·학포의 7개 동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06년 행정구역을 다시 나누어 석포·천부·나리·현포·평리 5개 동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포동과 평리동을 병합하여 현포동으로, 천부동·석포동·나리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천부동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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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리에 속하는 행정리. 본래 북면 지역인데, 1900년 10월 25일 군제를 실시하면서 석포·천부·신리·평리·현포·태하·학포의 7개 동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06년 행정구역을 다시 나누어 석포·천부·나리·현포·평리 5개 동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현포동과 평리동을 병합하여 현포동으로, 천부동·석포동·나리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천부동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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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관문인 도동항에서 섬 일주도로를 따라 한 시간 남짓 버스를 타고 가면 북면의 천부마을에 도착한다. 천부마을은 섬목에서 내수전까지 완공되지 않은 4.4km 구간의 미완성 울릉도 일주도로 때문에 가장 오지로 인식되고 있다. 또 천부마을은 최고 관광지인 나리분지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나, 택시나 관광버스 위주의 관광 관행으로 인해 관광객들이 천부마을을 스쳐지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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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나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치 깎아 놓은 듯이 가파르다고 깍깨등이라 한다. 깎끼등, 깍깨뜽 혹은 추산깍깨등이라고도 한다. 송곳봉[錐山]이란 지명은 현 추산발전소 옆에 삼각형 산의 모양에서 유래한다. 산봉우리가 마치 송곳과 같이 뾰족하다고 해서 송곳산이라고도 한다. 한자식 지명으로 표기하면서 추산이라 하였다. 본래 북면 지역으로 이중식 화산의 분화구인데, 화산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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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台霞) 근처에 형제봉이 있고, 그 형제봉에는 미륵굴이 있다. 하루는 태하동의 농부가 이 미륵굴 근처의 밭에서 김을 매고 있는데, 거기서 큰 미르(용)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륵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말이 전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이 굴에서 큰 지네가 들락날락거리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하기도 한다. 이 미륵굴에 빠지는 날이면 여간해서는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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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1리에 속하는 마을. 원래 태하에는 황토가 많이 났다고 한다. 지금도 현포 쪽 바닷가 산에 보면 황토를 파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조선조 때는 이곳의 황토가 나라에 상납까지 되었다고 하고, 또 조정에서 3년에 한 번씩 삼척영장을 이 섬에 순찰을 보냈는데 그 순찰 여부를 알기 위해서 이곳의 황토와 향나무를 바치게 했다고도 한다.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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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에 속하는 행정리. 울릉도 개척 때 사람들이 현 태하리에 와 보니 바닷가 산에 황토를 파낸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큰황토구미라 하였던 것이다. 뒤에 한자식 지명으로 표기할 때 대하(臺霞)라 하다가 다시 태하(台霞)라 표기하였다. 본래 북면의 지역인데, 순종 원년에 서면에 편입되었다. 1906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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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에 속하는 행정리. 울릉도 개척 때 사람들이 현 태하리에 와 보니 바닷가 산에 황토를 파낸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큰황토구미라 하였던 것이다. 뒤에 한자식 지명으로 표기할 때 대하(臺霞)라 하다가 다시 태하(台霞)라 표기하였다. 본래 북면의 지역인데, 순종 원년에 서면에 편입되었다. 1906년 지방행정 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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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 태하에서 택시를 해요. 그런데 택시가 지금 많이 불경기라요. 지금 개인택시가 울릉도에 35대, 법인 19대인데, 법인도 하루 지입금이 7만5천원 이래 되니까. 기름값 하고 한 3만원. 하루 10만원 이래 되니까 기사가 없어요. 개인택시도 5~6만원 벌어도 기름값 빼면 없어요. 육지 손님 오셔가지고 아다리 되면은 몇 만원 벌어지는데 단체로 와서 하니까. 그래 저는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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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마을, 옛날에는 황토구미라고 불렀던 곳이다. 조선 태종~세종조 우산무릉등처 안무사 김인우를 시작으로, 조선후기의 삼척 영장, 월송 만호 등의 수토관, 그리고 1882년 이규원 검찰사가 울릉도에 첫발을 내디딘 곳이 태하마을이었다. 그들이 울릉도를 다녀간 흔적들이 바위에 새겨져 남아 있다. 태하마을은 울릉도 수호신을 모시는 성하신당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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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의 미륵산과 태하령 등에서 발원하여 태하교를 지나 태하항으로 흐르는 하천. 미륵봉[900.8m] 서남쪽에 위치한 복호폭포(伏虎瀑布)의 물줄기가 서들영·중리·태하1리 마을과 해변으로 흐르며 형성된 하천이다. 원래 태하에는 황토가 많이 났다고 하며, 조선 전기 때는 이곳의 황토를 나라에 진상했다고 한다. 조정에서는 3년에 한 번씩 삼척영장을 이 섬[울릉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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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포동이 굉장히 고립된 지역이에요. 터널과 터널사이에 있거든요. 그리고 제가 보니깐 길도 제일 마지막으로 났더라구요, 여기가. 여기 있는 사람들이 고립된 지역의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면 폐쇄적이잖아요. 남에게 배타적이고 자기를 알아주기를 원하고, 이해받기 원하고, 자기만 사랑받기 원하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저변에 쫙 깔려 있어요. 아까 말한 거. 이쪽은 전부들 혈족이에요.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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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현포2리에 속하는 마을. 개척 당시 전라도 사람들이 나선을 타고 현포에 들어와 보니 조그마한 항구가 있었다. 배를 정박하기 적당한 듯하여 이곳에 내려 해변을 따라 현포 쪽으로 가보니 이미 몇 집이 살고 있었다. 다시 반대쪽을 살펴보니 경작할 수 있는 평지가 있어, 이 곳에 자리를 잡아 살면서 고기도 잡고 전라도에 내왕하기도 하였다. 이후에 이 곳 지명을 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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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2리에 속하는 마을. 조선시대 이규원의 일기를 보면 마을 뒤편 학이 앉아 있는 형태의 바위가 있다고 하여 학포(鶴圃)라고 하였는데, 1958년경 학의 부리 부분이 바람에 떨어지고 몸통만 남았다고 한다. 이곳은 태하1리와 마찬가지로 황토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생긴 지명이나, 태하1리 보다 면적이 좁고 황토가 적다고 해서 작은 황토구미(黃土邱尾)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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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의 관문인 도동에서 천부로 가려면 버스를 타고 일주도로를 약 1시간 남짓 달려야 한다. 도동에서 출발하여 천부에 이르는 길은 제법 멀다. 도동발~사동(5.6㎞)~통구미(8.7㎞)~남양(10.9㎞)~구암(14㎞)~학포(18.9㎞)~태하(21.9㎞)~현포(24.8㎞)~평리(29.0㎞)~추산(30.4㎞)~천부(32.4㎞) 버스 요금은 4,500원이다. 하루 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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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현포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의 이름은 동쪽에 있는 촉대암(燭臺岩)의 그림자가 바다에 비치면 바닷물이 검게 보이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본래 북면 지역으로 1900년 10월 25일 군제를 실시하면서 석포·천부·신리·평리·현포·태하·학포의 7개 동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06년 행정구역 개편시 석포·천부·나리·현포·평리의 5개 동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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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현포리에 속하는 행정리. 현포(玄圃)라는 마을 이름은 동쪽에 있는 촉대암(燭臺岩)의 그림자가 바다에 비치면 바닷물이 검게 보이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본래 북면 지역으로 1900년 10월 25일 군제를 실시하면서 석포·천부·신리·평리·현포·태하·학포의 7개 동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1906년 행정구역 개편시 석포·천부·나리·현포·평리의 5개 동을 관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