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
-
“처음에 이주한 사람들은 육지에서 많이 왔기 때문에 농사밖에 몰랐죠. 그래서 울릉도 제일 처음에 오면 ‘깍치댕이’라고 했습니다. 섬의 제일 높은 곳, 북면도 그렇고 서면도 그렇고, 최고 높은 데로 올라가서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습니다. 거기서 화전을 일구며 살았어요. 여름에는 여기에 ‘깍새’라는 새가 많았는데, 높은데 올라가서 불을 피우고 연기를 피우면 새가 막 몰려들어 왔지요...
-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부부와 그 근친으로 구성된 혈연 공동체. 울릉군에는 1882년 울릉도 개척령 반포 이후 공식적인 이주민이 생겨났으며, 일제 시대에 어업 정책 활성화로 인구가 계속 증가하였고, 해방 이후에도 증가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1975년을 기점으로 점차 감소 추세를 보여 왔다. 그리하여 전체적으로 인구는 감소하고 있고 평균 가족 수는 2명 내외이다. 이는 젊은 층의 자녀...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사동3리에 속하는 마을. 울릉읍과 서면의 면계에 마치 큰 배의 앞부분을 엎어놓은 듯한 산이 바다에 솟아 있다. 이 동리는 신리나 죽영보다 더 산의 끝 쪽의 고개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갓영·갓령[邊嶺]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한자로 표기하면서 간령(間嶺)·간영이라 불리고 있다. 사동에는 개척 당시부터 옥과 같은 맑은 모래가 바닷가에 가로 놓여 있었기 때문에...
-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화·용역의 생산·분배·소비와 관련되는 활동 전반과 영역. 경제산업은 경제와 산업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경제는 인간이 공동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활동 전반을 의미한다. 산업은 이러한 활동 중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 전반이나 활동 영역으로서 대체로 농업, 공업, 수산업, 임업, 광업 등 유형물의 생산과 직...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에 속하는 마을. 골계[谷溪]란 비파산의 양쪽 산허리에 돌이 깨어져 골이 나 있는 것을 보고 ‘돌이 깨어져 골져 있는 곳’이라 하여, ‘골계’라 불렀다 한다. 그런데 골계만은 비파산이 쑥 나와 이를 사이에 두고 남·서로 골짜기가 둘이 있고, 두 골짜기에서 냇물이 흘러내리고 있어 다른 동리보다도 골짜기와 시내가 많다고 해서 골계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하고,...
-
경상북도 울릉군 지역에 있는 풍광이나 풍습 등을 보기 위한 여가 활동. 2005년 한국해운조합에서 실시한 전국 여객선 터미널에서 섬을 다녀온 여행객을 대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섬과 가장 가보고 싶은 섬을 조사한 결과 울릉도는 가장 기억에 남는 섬으로 20%가 응답해 제주도에 이어 2위를 했으며, 가장 가보고 싶은 섬으로는 34%로 1위를 하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섬으로 울릉도의...
-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광물을 채취하고 물건을 제조하는 산업. 울릉군의 광공업 활동은 공업이 주를 이루고 광업은 군 자체에서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공업 중에서도 특히 제조업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지고 있다. 울릉군의 광공업 사업체 수는 1993년에 3개소였으나 2007년에는 42개소로 크게 증가하였다. 월 평균 종사자 수도 1993년 20명에서 2007년 382명으로 증가 폭...
-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강이나 하천 또는 언덕과 언덕 사이에 건너다닐 수 있도록 구축물에 설치된 시설. 울릉군의 교량 수 및 총 연장은 도로 개폐에 따라 약간의 변동이 있는데, 1980년에는 40개소에 363m, 1990년에는 35개소에 490m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1992년에는 13개소에 273m로 줄어들고, 이후 증가하여 2009년 12월 현재 18개소에 427m이다. 199...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서2리에 속하는 마을. 구암초등학교가 있던 곳의 바닷가 뱃자리 뒤에 산이 깎아지른 듯이 높이 솟아 있고 거기에는 수십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굴이 있다. 개척 때 사람들이 이곳에 와 보고 석산에 굴이 있다고 해서 굴바우라 부르게 되었고, 한자로는 굴암(窟岩)이라고 하던 것이 오늘에는 구암으로 표기하게 되었다. 1906년 지방 행정 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서1리에 속하는 마을. 개척민들이 이 곳에서 나팔을 불어 일꾼들을 모았다고도 하며, 또는 나팔 모양으로 생긴 등성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도수(島首) 배상삼(裵尙三)이 암살당하던 날, 이곳에서 나팔 소리가 여러 번 났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설 등도 있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1906년 지방 행정 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서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의 이름은 남양리의 서쪽이 되므로 남서리가 되었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1906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개 동과 북면의 태하·학포 등 2개 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설치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면과 구암을 병합하여 남서동[현 남서리]으로 개편하였다. 그 뒤 남서동을 2개 구로...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서리에 속하는 행정리. 남서리는 남양리의 서쪽이라 하여 불렸는데, 남서천 서측의 대등[566.1m]을 넘어서면 남서2리가 된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1906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개동과 북면의 태하·학포 등 2개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설치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면과 구암을 병합하여 남서동[현 남서...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에 속하는 행정리. 남양리는 원래 골계의 일부였으나 행정구역을 편제할 때 2개로 나누어 하나는 남양리라 하고, 하나는 남양리의 서쪽이라 하여 남서리라 하였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1906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개 동과 북면의 태하·학포 2개 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새로 설치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에 속하는 행정리. 남양리는 원래 골계의 일부였으나 행정구역을 편제할 때 2개로 나누어 하나는 남양리라 하고, 하나는 남양리의 서쪽이라 하여 남서리라 하였다. 그리고 석문동은 평지이면서 삼면이 성을 쌓아놓은 것과 같은 모양이다. 다만 입구에 서쪽으로 뻗어 있는 큰 바위가 문을 세워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석문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에 속하는 행정리. 남양리는 원래 골계의 일부였으나 행정구역을 편제할 때 2개로 나누어 하나는 남양리라 하고, 하나는 남양리의 서쪽이라 하여 남서리라 하였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1906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개 동과 북면의 태하·학포 2개 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새로 설치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
“여 들어와가 내 손으로 배 많이 지었어요. 내 기술이 일류 기술이라. 울릉도에서 배를 지어도 학술적으로 배운 내 기술을 이길 사람이 없는 기라. 천부의 아무 거시기다 하면 여 다 알아요. 내가 그때 스물두 살 때인 기라. 새파란 젊은 놈이 그러이 놀라는 기라. 내가 들어왔을 때 다른 울릉도에 배 기술자들이 있었지만, 다 초짜배기들이지. 그 사람들은 3척을 지어도 다 다른 기라....
-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노동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의 총칭. 노동요는 농경생활 초기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노동을 효과적으로 진행시키고 집단으로 일을 할 때 행동을 통일하는 구령의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노래를 부름으로써 즐겁게 노동을 할 수 있게 하며, 노래를 통하여 노동의 내용이나 노동하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나타내게 한다. 일을 하면서 부른다고 하여 작업요라고도 부른다....
-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토지를 이용하여 생산물을 얻는 활동. 울릉도에는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였다. 이들은 다른 선사 시대 사람들처럼 수렵과 어로로 생계를 유지해 나갔으며, 발달한 단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농업 활동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유물로서 갈돌과 갈판, 무문토기가 발견되고 있어 이러한 농업 활동을 추측할 수 있다. 울릉도는 산지가 많아 다른 육지...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2리와 사동리를 연결하는 다리. 울릉주민들은 무릉교와 울릉대교를 포함하여 대원교를 ‘88다리’라 부르기도 한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 모양이 8자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원교는 울릉도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중 하나이다. 대원교의 명칭은 울릉읍 관모봉(冠帽峰)에 있는 대원사(大願寺)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교장 10.0m, 총폭 7.5m,...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2리에 속하는 마을. 개척 초기 전라도 사람들이 이곳에서 배를 만들 나무를 베기 위해서 막을 치고 있었다고 해서 막동(幕洞)이라 하였다. 본래 남면 지역인데, 1906년 지방 행정 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개 동과 북면의 태하·학포 등 2개 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설치하였고,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통구미·석문·골...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에 있는 전망대. 만 가지의 상이 보이는 절경이라 하여 만물상전망대라 불리고 있다. 학포(鶴圃)는 만물상전망대가 있는 마을로 작은황토구미라고도 한다. 작은황토구미는 황토가 많이 나는 울릉군 서면 태하리의 큰황토구미와 마찬가지로 황토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생긴 지명이지만, 큰황토구미 보다는 지역도 좁고 황토도 적다고 해서 작은황토구미라 불리고 있다. 학포란...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2리에 속하는 마을. 말바우는 생김새가 말이 옆으로 비스듬하게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고, 물이 흘러내릴 때는 마치 말이 오줌을 누듯이 떨어진다고 해서 이와 같이 붙여진 이름이다. 1906년 지방 행정 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의 5개 동과 북면의 태하·학포의 2개 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새로 설치하였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서2리에 속하는 마을. 물이 높은 곳에서 흘러내릴 때 층층으로 물이 떨어지는 까닭에 이곳을 물칭칭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1917년의 「조선지형도」에는 수층동(水層洞)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이는 일제강점기에 새로 만들어진 지명이다. 지금은 수층이라고 한다. 성인봉을 거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타고 내려가서 태하령을 지나 태하리의 말바위와 남서리의 물칭칭...
-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현포리에 있는 봉우리. 옛날 미륵산 근처에 살고 있던 한 노인이 어느 날 밭을 매다 가 갑자기 운무가 많이 깔려 한치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노인은 왠지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었는데 갑자기 풍악소리가 어디선가 들렸다. 이상하게 생각한 노인이 고개를 들어보니 황소를 닮았으나 황소보다 몇 배나 크며 발이 가마솥 뚜껑만한 짐승이 바로 앞에 서있었다. 기겁을 한 노...
-
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해 있는 행정구역. 석포동 남쪽 산등성이를 타고 남서쪽으로 올라가서 이 섬의 최고봉인 성인봉을 거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타고 내려가서 태하령과 노인봉을 지나 태하동, 말바위와 남서동 물칭칭 사이 산 끝까지를 경계로 하여 북쪽에 있다고 해서 북면이 되었다. 1900년 10월 25일 군제를 실시하면서 남면과 북면으로 나누어지고, 북면에는 석포·천부·신리·평리·...
-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천부리에 있는 북면 관할의 행정 기관.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의 행정과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00년 군제를 실시하면서 섬의 최고봉인 성인봉과 태하령을 중심으로 남쪽을 남면이라 하고, 그 북쪽을 북면이라 하였다. 당시 북면은 석포·천부·나리·평리·현포·태하·학포의 7개 동을 관할하였다. 1906년 행정구역이 다시...
-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나리에 있는 지명. 뺍쨍이등대는 성인봉에서 나리분지로 내려오는 능선 끝자락에서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지역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는 곳으로, 길경이가 많이 자라는 곳을 가리킨다. 울릉군 지역 방언에서 질경이는 잎사귀에 뼈처럼 느껴지는 흰 줄이 있다고 하여 ‘뺍쨍이’ ‘뺍사구’ 등으로 부른다. 그러므로 뺍쨍이등대란 질경이가 많이 자라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사동리에 속하는 행정리. 울릉읍과 서면의 면계에 마치 큰 배의 앞부분을 엎어놓은 듯한 산이 바다에 솟아 있다. 이 동리는 신리나 죽영보다 더 산의 끝 쪽의 고개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갓영·갓령[邊嶺]이라 불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에 한자로 표기하면서 간령(間嶺)·간영이라 불려지고 있다. 금강원 아래 마을에 사람들이 점차 많이 살게 되자 우복동 일부와...
-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의 조직화된 집단. 울릉도는 그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삶 자체가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척박한 환경으로 식량 자급률이 매우 낮은데다 과거 육지와의 교통이 열악하여 식량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여름에는 태풍의 주요 이동 경로면서 겨울은 주요 폭설 지역으로 자연재해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1960년대 산업...
-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시행되고 있는 국민의 생활 향상과 사회 보장을 위한 광범위한 사회 정책. 사회복지는 교육, 문화, 의료, 노동 등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 관계하는 조직적인 개념으로 「사회복지법」, 「생활보호법」, 「아동보호법」 등의 법률에 기초를 두고 이루어진다. 한국의 「사회보장기본법」에서는 사회복지의 범주를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복지 서비스, 관련 복지 제도로 대별하고...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2리에 속하는 마을. 개척 당시 삼막골에는 괴목나무가 유난히도 많았는데, 일본 사람들이 배를 만들기 위해 이 곳에 막을 쳐 놓고 벌목을 했다고 하여 산막이라 하였다. 산삼을 캐기 위해 막을 쳤다고도 하고, 또 삼베옷을 만들기 위해 막을 쳐 놓고 삼을 많이 심었다고도 해서 삼막골이라고도 하였다. 태하리는 1882년 개척령이 반포되자 최초로 이주해 온 주민들의...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1리에 속하는 마을. 예전에 이곳에 서달래(徐達來)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해서 그 이름을 따서 서달령이라고 하였고, 지금은 서들령이라 부르게 되었다. 태하리는 1882년 개척령이 반포되자 최초로 이주해 온 주민들의 본거지로 1902년까지 울릉도의 행정 중심지였고 울릉도에서는 본래의 토속적 모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1906년 지방 행정 구역을...
-
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해 있는 행정구역. 저동(苧洞) 와달리(臥達里) 북쪽 산등성이를 타고 남면 쪽으로 올라가서 최고봉인 성인봉을 거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타고 내려가서 태하령을 지나 태하동[현 태하리]의 말바위와 남서동[현 남서리]의 물칭칭 사이 산 끝까지를 경계로 하여 그 서쪽을 서면이라 하였다. 1906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개...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에 있는 서면 관할의 행정 기관. 1906년 지방 행정 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의 5개동과 북면의 태하·학포의 2개 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새로 설치하였으며, 1914년 군면 통폐합에 의해 통구미·석문·남양과 남면의 장흥도 일부를 병합하였다. 1960년 8월에 태하동을 2개 동으로 개편하여 7개 행정동을 관할하였으며, 태하1동·...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2리에 속하는 마을. 이 곳은 평지이면서 삼면이 성을 쌓아놓은 것과 같은 모양인데, 다만 입구에 서쪽으로 뻗어 있는 큰 바위가 문을 세워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석문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1906년 지방 행정 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의 5개 동과 북면의 태하·학포의 2개 동을 병합하여 서면을 새로 설치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
경상북도 울릉군에 살고 있는 동일 인물을 조상으로 하는 혈족 집단. 울릉도에서는 입향조를 내세울 만큼의 가계를 형성한 성씨는 없다. 2005년 현재 울릉군민들은 대부분 평균 60여 년 이내의 입도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1900년 초에 입도한 주민들의 후손들은 대부분 내륙으로 이주한 상황이다. 1883년(고종 20) 개척령 후 정식 이주시킨 정착민 호구가 16호에 54명으로, 이 중...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과 북면, 서면에 걸쳐 있는 봉우리. 울릉도의 주봉으로 섬 중앙부에 위치하며, 성인봉을 기점으로 뻗어나간 능선과 산맥을 기점으로 울릉군의 행정 구역이 구분되고 울릉도 지형의 골격을 이룬다. 산의 모양이 성스럽다고 하여 성인봉으로 불리기도하며, 다음과 같은 성인봉의 영험한 능력 때문에 성인봉이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원래 비가 많이 오기로 한 유명한 울릉도에 석...
-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이루어지는 화재의 진압 및 예방과 관련되는 활동. 소방은 기본적으로 화재를 예방·경계하고 진압하는 일로 정의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화재뿐만 아니라 수해, 지진 등의 재해나 그 밖의 위급한 상황에서 그 피해를 경감시키는 활동이나 구조·구급 활동을 통하여 국민의 신체 및 재산을 보호하는 일로 보다 넓게 정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관...
-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관광객들에게 숙박을 제공하는 시설. 1. 호텔 호텔은 주로 울릉읍 사동리와 도동리에 있다. 울릉읍 사동리 새각단 관광휴양시설지구 내에 위치한 울릉대아리조트은 150여 개의 객실과 커피숍·레스토랑·사우나·노래주점·수영장·야외극장 등의 편의시설을 갖춘 울릉도 유일의 종합 리조트이다. 사동리 골짜기의 울창한 상록수림에 둘러싸인 마리나관광호텔은 관광호텔로서 객실 수는...
-
“일곱 살 때, 울릉도에 들어와가 바로 천주교 나갔습니다. 왜 나갔냐 하면, 뭐 교나 알고 갔습니까? 살기 어려울 때니까 미국에서 원조 받아서 가져온 옷 같은 거, 사탕 같은 거, 빵 같은 거, 우유, 이런 것들을 천주교에서 선물로 많이 가져와요. 천주교에서 제일 많이 가져와요. 천주교에서 많이 노나 주는 기라요. 그거 얻으러 애들이 천주교 나간거지. 그래가 천주교 가서 세례를 받...
-
경상북도 울릉군에 있는 어촌의 자연마을 단위로 조직되는 자주적 협동 조직. 어촌계는 1962년 각령 제619호로 시행·공포된 「수산업협동조합법시행령」제4조에 근거하여 어촌계원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공동 사업의 실시를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어촌계원의 자격은 어촌계 정관과 실제와는 차이가 있다. 어촌계 정관에 의하면 계원의 자격은 그 계의 구역 내에 거주하는 자로 제한을 두고, 동일...
-
선사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경상북도 울릉군의 역사. 울릉도의 경우 일제강점기인 1917년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에 의해 처음 유물의 채집이 있은 이후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 등의 조사가 있었다. 해방 후 국립박물관에 의해 울릉도의 고고학적 조사가 실시되었다. 1947년과 1957년에 김원룡 등에 의해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졌고, 1963년에 김정기에 의해 보충 조사가 실시되어...
-
"울릉도, 그리고 태하에는 기독교가 일찍 들어왔어요. 교인은 서달은 100%입니다. 천부 같은 경우는 95%이고. 서달침례교회가 100년이 조금 넘었어요. 여기는 기독교문화가 빨리 정착이 되었습니다. 여기는 2대 3대 믿고 있어요. 그래서 산왕각과 같은 곳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게 되었어요. 지금도 교회는 존립하지만, 잘되라고 풍어 예배를 드리고 있어요. 얼마 전에 풍어 예배를 드렸...
-
울릉읍사무소 는 옛(일제강점기) 울릉군청사가 있던 곳에 자리잡고 있다. 1882년(고종19년)에 울릉도개척령이 반포됨에 따라 울릉도에서는 도장제(道場制)가 실시되었는데, 그 후 9년만인 1900년부터 군제(郡制)가 실시되면서 울릉도를 2개 구역으로 나누는 행정을 실시하였다. 저동 와달리의 북쪽 산등성이를 타고 남서쪽으로 올라가서 성인봉을 거쳐 산줄기를 타고 서쪽...
-
경상북도 동쪽 바다에 위치한 행정구역. 울릉군은 사면이 바다로 되어 있으며, 대체로 삼각형 형태를 하고 있다. 2009년 12월 현재 인구는 총 4,848세대에 10,398명[남자 5,449명, 여자 4,94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본래 우산국이었는데, 행정 구역의 변천 과정은 1910년 9월 30일 조선총독부 지방 관제로 종래 부군(府郡)의 하부 행정 단위를 면(面)으로 규정...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사동리에 있는 선거 관리 기관. 울릉군 선거관리위원회는 담당 선거구 지역에서 공정한 선거를 치르고 더욱 나은 선거 문화를 만들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63년 경상북도 울릉군 선거관리위원회가 조직되었으며, 1987년 11월 7일 「선거관리위원회법」과 「선관관리위원회법시행규칙」 제58호에 따라서 경상북도 울릉군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울릉군 선거관리위원회로 명칭이...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에 있는 지방 자치 행정 기관. 울릉군청은 아름다운 국제 관광 휴양 섬 건설을 목표로 미래를 위한 지역 개발, 특색 있는 관광 명소, 신비의 섬 환경 보전, 정이 깃든 사회 복지, 발로 뛰는 현장 행정을 군정 구호로 정하고 업무에 임하고 있다. 경상북도 울릉군의 행정과 자치업무 등을 담당하기 위하여 설립된 기관이다. 1882년(고종 19) 이규원이 검찰...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울릉군에 설립된 어업조합. 조선을 식민지화한 일제는 조선 어업에 대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지배를 확고히 하고자 조선해 연안 이주 어촌을 중심으로 어업 단체를 조직하여 지배 체제를 정비하기 위해 울릉도 어업조합을 설립하였다. 울릉도 어업조합은 당시 어업 단체의 핵심 조직으로서의 구실과 기능을 담당하였다. 1911년 조선총독부는 「어업령」 공포와 더불어 어업조합과...
-
“여기가 원래는 울릉도의 제2 도시였어요. 경제력……, 인물도 많이 배출되었어요. 북면이 서면이나 읍 쪽보다 먼저 개척되었어요. 서당도 먼저 생기고. 천부서당은 어디 있었는지 모르지만, 우리 마을(석포)에는 서당등대라고 마을이름이 있습니다. 거기 나온 사람이 교사도 하고 기관장도 하고…….”...
-
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해 있는 행정구역. 1882년(고종 19)에 울릉도 개척령이 반포되면서 도장제(島長制)를 실시하였고, 1900년 10월 25일에는 군제(郡制)를 실시하였다. 저동 와다리[臥達里] 북쪽 산등성이를 타고 남면 쪽으로 올라가서 최고봉인 성인봉을 거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타고 내려가서 태하령을 지나 태하동[현 태하리]의 말바위와 남서동[현 남서리]의 물칭칭 사이...
-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에 있는 지방자치 행정 기관. 경상북도 울릉군을 구성하고 있는 1개 읍[울릉읍] 2개 면[서면·북면] 중 울릉읍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00년 울릉도는 서면과 남면으로 구분되어 현재 울릉읍사무소에 해당하는 남면출장소가 도동, 저동, 사동,...
-
경상북도 울릉군 지역에서 주민 수 또는 인간집단. 인구란 한나라 또는 일정한 지역 안에 사는 사람의 수를 말하는 것으로 울릉군의 인구는 울릉군의 주민등록상 등록되어 있는 사람의 수로서 독도의 인구도 포함하고 있다. 울릉군의 인구는 1974년 29,810명을 최고 정점으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며, 2000년대에는 인구 감소 추세가 완화되기는 하였으나, 현재 9,000명을...
-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지표상의 인문적 요소를 분석 대상으로 지역의 의의를 일반적으로 고찰, 연구하는 학문 분야. 울릉군의 총 면적은 72.82㎢로 경상북도 전체면적 19,440.7㎢의 약 0.37%에 해당되고 우리 나라 군 중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군이다. 면적 중 경지 면적은 12.97㎢로 18%이고, 임야 면적은 55.48㎢로 76%이다. 각 읍·면별 크기는 서면이 27.20㎢로...
-
1910년에서 1945년까지 일본에 의한 식민 통치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울릉도 역사. 1910년 일본의 식민지가 된 우리나라에는 조선총독부가 설치되고, 헌병경찰제도가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울릉도의 경우 일본인 나카가와[中川]가 울도군주사로 와서 도민을 다스렸다. 1913년 4월 1일에 울릉도의 하부 행정 단위로 3개면[남면·서면·북면] 9개동[저동·도동·사동·남양동·남서동·태하동·...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양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울릉도 특유의 가옥. 서면사무소가 있는 해변 마을 골계연변에서 남양천을 따라 동북쪽 골짜기로 2㎞ 가량 가면 해발 220~225m 지점의 산간 고지대에 석문동마을이 있다. 이곳에 정초일 가옥이 있다. 정초일 가옥의 주향은 남서향이며 오랫동안 빈집으로 방치된 탓에 지붕, 벽체 등의 훼손이 심하다. 건립 연대는 잠실 천장의 고미받이 바닥...
-
원래 이곳에는 황토가 많이 났다고 한다. 지금도 현포 쪽 바닷가 산에 황토를 파낸 자취가 아직 남아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조선조 때는 이곳의 황토를 나라에 진상했다고 하며, 또 조정에서는 3년에 한 번씩 삼척영장을 이 섬에 순찰 보내어 그 순찰 여부를 알기 위해서 이곳의 황토와 향나무를 바치게 했다고도 한다. 개척 때 사람들이 이곳에 와 보니 바닷가 산에 황토를 파낸 구석이...
-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이루어지는 주민이 정치·행정에 스스로 참여하여 지역 현안을 결정·운영하는 제도. 지방자치는 일정한 구역의 주민들이 법률에 따라 일정한 권한을 갖는 지방자치 단체를 구성하여 중앙 정부로부터 상대적인 자율성을 가지고 그 단체를 구성하는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생활과 관련된 지방적인 사무, 즉 지방의 정치와 행정 사무를 주민들 스스로의 의사와 책임 아래 선임한 자치 기...
-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경제적 급부를 받아 생활을 지속해 나가는 활동 양식. 울릉군에서 경제 활동이 가능한 인구, 즉 경제적 급부를 받고 생활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 인구는 1994년 8,038명에서 2004년에는 6,308명으로 감소 추세이다. 1차 산업인 농업에서는 별로 차이가 없지만 농업 자체는 활발하게 활동하는 직업이라고는 볼 수 없다. 어업 종사자 역시 과거에 10개소에 23...
-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현포리에 있는 울릉도 특유의 가옥. 서면에서 비교적 큰 해안가 마을인 현포1리에서 남쪽으로 400m 가량 떨어진 지점에 무선 기지국이 있다. 이 무선 기지국 바로 뒤편의 밭 가운데 최수현 가옥이 있다. 1920년에 정지, 큰방, 작은방으로 꾸민 3칸 너와집으로 건립된 뒤 1960년경에 방 2칸을 도리 방향으로 증설하고 지붕을 함석으로 개량했다. 최수현이 8살...
-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나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치 깎아 놓은 듯이 가파르다고 깍깨등이라 한다. 깎끼등, 깍깨뜽 혹은 추산깍깨등이라고도 한다. 송곳봉[錐山]이란 지명은 현 추산발전소 옆에 삼각형 산의 모양에서 유래한다. 산봉우리가 마치 송곳과 같이 뾰족하다고 해서 송곳산이라고도 한다. 한자식 지명으로 표기하면서 추산이라 하였다. 본래 북면 지역으로 이중식 화산의 분화구인데, 화산회가...
-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가축을 길러 물질을 생산하는 산업. 울릉군의 경우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육지처럼 대규모의 축산이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다. 현재 한우·닭·토끼·염소·사슴 등 초식의 가축들이 주로 사육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한우에 대한 사육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해방 이후 울릉군의 자연 조건이 한우 사육에 적합하여 비육우조성단지(肥肉牛造成團地)를 만들어 적극 지원하기...
-
경상북도 울릉군에 있는 개신교의 한 교파. 울릉군 남면에 침례교가 들어온 것은 1910년 5월 경상북도 영천군 고경면 단포동에 살던 김두건의 가족이 울릉도에 입도하여 생활하던 중 편위익 선교사가 파송한 김종희(金鍾熙) 전도사가 와 김두건의 자택에서 예배를 본 것이 처음이었다. 북면에서는 최인희가 고향인 영천에서 입교한 뒤 1896년 울릉도에 와 북면 석포 지개골에서 화전을 개간하여...
-
2004년 8월 18일 발생하여 경상북도 울릉군에 큰 영향을 끼친 태풍. 메기는 2004년 8월 19일 울릉도에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큰 피해를 입히고, 울릉도 동북동쪽 약 110㎞ 부근 해상을 통과하여 동해로 빠져나가 소멸되었다. 태풍 메기는 태풍 중심 부근에서는 매우 강한 바람이 불고 6~8m의 높은 파도로 인해 울릉도에 많은 재산 피해를 발생시켰다. 이재민은 20명이었고, 총...
-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자연재해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이 바로 태풍이다. 1979년에 발생한 태풍 쥬디로 136명이 사망하고, 1987년에는 태풍 셀마로 345명이 사망·실종된 것을 비롯해 1991년에는 태풍 글래디스가 발생하여 103명, 1995년에는 태풍 제니스가 65명, 1999년에는 태풍 올가가 64명의 인명을 앗아 가는 등 막대한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입...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1리에 속하는 마을. 원래 태하에는 황토가 많이 났다고 한다. 지금도 현포 쪽 바닷가 산에 보면 황토를 파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조선조 때는 이곳의 황토가 나라에 상납까지 되었다고 하고, 또 조정에서 3년에 한 번씩 삼척영장을 이 섬에 순찰을 보냈는데 그 순찰 여부를 알기 위해서 이곳의 황토와 향나무를 바치게 했다고도 한다. 개척...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에 속하는 행정리. 울릉도 개척 때 사람들이 현 태하리에 와 보니 바닷가 산에 황토를 파낸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큰황토구미라 하였던 것이다. 뒤에 한자식 지명으로 표기할 때 대하(臺霞)라 하다가 다시 태하(台霞)라 표기하였다. 본래 북면의 지역인데, 순종 원년에 서면에 편입되었다. 1906년 행정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등 5...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에 속하는 행정리. 울릉도 개척 때 사람들이 현 태하리에 와 보니 바닷가 산에 황토를 파낸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큰황토구미라 하였던 것이다. 뒤에 한자식 지명으로 표기할 때 대하(臺霞)라 하다가 다시 태하(台霞)라 표기하였다. 본래 북면의 지역인데, 순종 원년에 서면에 편입되었다. 1906년 지방행정 구역을 정리하면서 남면의 남양·석문·통구미·남서·구암...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남서리에 있는 고개. 울릉군 서면 남서리의 구암마을과 태하리를 연결하는 능선일대로 육로가 개설되어 사람들이 왕래하였으나, 고개 길이가 길고 험준하여 주민들이 이용하기에 매우 힘들었다. 동쪽으로는 남서천, 그리고 서쪽에는 구암천이 남쪽 바다로 흐르고 있다. 태하령 일대에는 섬잣나무와 솔송나무 등이 우점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은 고비·족제비...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고분군. 고분군은 네 곳으로 구분된다. 태하리 고분군1은 태하리 507번지 일대로 태하초등학교와 울릉우체국 태하분국 뒤편 산 사면에 위치한다. 고분군은 마을 북쪽의 향미봉[해발 297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이 해발 100~200m에서 단애면을 이루고, 이 단애 밑쪽 해발 50~80m 지점의 완사면에 위치...
-
경상북도 울릉군 서면 태하2리에 속하는 마을. 조선시대 이규원의 일기를 보면 마을 뒤편 학이 앉아 있는 형태의 바위가 있다고 하여 학포(鶴圃)라고 하였는데, 1958년경 학의 부리 부분이 바람에 떨어지고 몸통만 남았다고 한다. 이곳은 태하1리와 마찬가지로 황토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생긴 지명이나, 태하1리 보다 면적이 좁고 황토가 적다고 해서 작은 황토구미(黃土邱尾)라고도 한다....
-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공권력을 배경으로 공공 정책의 합리적인 형성과 집행을 구체화하는 과정. 일반적으로 근대 국가 성립 이후 190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행정의 주된 역할과 기능은 국가의 질서 유지에 있었다. 그러나 19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국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질서 유지 기능뿐만 아니라 수도·전기...
-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나리에 있는 봉우리. 형제봉은 미륵봉과 나란히 있는데, 봉우리 2개가 나란히 있어 형제처럼 보인다고 하여 형제봉으로 불렀으며, 혹은 여인이 누워 있는 형태 같다고 하여 젖봉이라고도 한다. 속설에 가뭄이 심할 때 남자가 형제봉을 지나가면 비가 온다고도 한다. 주위에는 400~700m의 높은 산으로 되어 있으며, 남쪽에는 미륵봉이 있고, 서쪽 서면과의 경계에는 초...